왜 결혼하려고 해요?

브루스 피셔, 로버트 앨버터 지음 <다시, Rebuilding>

등록 2004.06.04 12:08수정 2004.06.12 16:50
0
원고료로 응원


이혼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당사자에게 또는 알 만한 이에게 묻지요. 왜 이혼했어요? 왜 이혼했대요? 하지만 결혼을 하려는 사람에겐 통 묻지 않습니다. 왜 결혼하려고 해요? 이런 질문은 하지 않지요. 되려 이렇게 묻거나 질책을 합니다. 넌 왜 결혼을 아직도 안 하고 있니? 또는 결혼을 기정사실로 치고 언제 결혼할 것이냐고 곧장 시점을 물어버리지요.


아마도 결혼은 정상적인 결론이고 이혼은 비정상적인 일탈이라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 결혼은 행복의 하이라이트고 이혼은 불행의 빨간 신호등이라는 우리들의 보편화된 감수성 때문이겠지요. 해서 결혼 앞에선 이유를 묻지 않는 채 앞만 보고 질주하게 되고 이혼 뒤에는 자꾸 과거를 돌아보며 이유를 캐묻게 되는가 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질문하는 법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왜냐하면 '왜 이혼했어요?'하고 뒤늦게 묻는 것보다 '왜 결혼하려고 해요?'하고 앞서 묻는 것이 훨씬 현명한 질문이자 유익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그리고 이혼한 친구에게는 '왜 이혼했니?' 하고 묻기보다는 이 책을 건네면서 "두려워하지 마. 이제야 비로소 너 자신에 대해서, 너의 미래에 대해서 너의 생각을 갖게 될 거야"라고 말하기로 했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이혼 전문 심리치료사인 브루스 피셔입니다. 그는 수천 명의 내담자들과 진행한 이혼 워크숍의 학습안을 바탕으로 1981년에 초판을 선보였더군요. 저자는 또 미국의 대표적인 결혼과 가족 심리치료사인 버지니아 새티어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더군요.

버지니어 새티어는 이 책의 초판 머리글을 썼지요. 두 사람은 모두 이승을 마감했답니다. 한국어판은 또다른 가족 심리치료사인 로버트 앨버티가 저자의 요청을 받고 작업해서 저자의 사후에 발간한 2000년도 3판 개정본을 번역한 것이지요.

한 마디로 이 책은 결혼과 이혼 그리고 가족에 대해 평생에 걸쳐 상담해 온 저명한 심리 치료사 3명의 혼이 깃든 역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게다가 저자의 의도대로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분석과 같은 이론서 분위기를 말끔히 걷어내고 철저하게 이혼한 사람들이 자신을 치유할 수 있도록 짠 실용서랍니다. 그것도 이혼을 겪은 사람들의 수없이 많은 사례를 거듭 검증한 정직한 책이지요.


이렇게 해서 도출한 것이 이혼한 사람이 겪게 되는 19단계의 리빌딩 블록(Rebuilding bloc)입니다. 이 각각의 블록은 이혼과 함께 찾아오는 고통의 감정과 적응의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지요. 첫째 블록 '부인'(이런 일이 생기다니 믿을 수 없어!)부터 열아홉째 블록 '자유'(애벌레에서 나비로!)까지 자신의 속내를 낱낱이 꺼내놓고 읽다보니 이 책은 어느새 자아 재발견과 발전의 길로 이끄는 역동적인 성장의 보고서로 변해 있더군요.

이런 개인적 평가는 비록 적잖은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저의 이혼 경험을 투영해 본 결과라서요, 이혼을 겪었거나 고민 중인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소신을 갖고 권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삶의 위기를 겪고 있는 어느 때든지, 특히 결혼을 생각하며 행복한 미래에 부풀어 있을 때에 '나는 왜 결혼하려고 하는가?'하는 자문과 자답을 통해 자기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도록 안내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적절한 이유로 결혼을 한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불행한 부모에게서 벗어나려고, 누구나 결혼하니까, 결혼 상대를 못 찾은 '패배자'만이 독신 생활을 하므로, 부모가 되고 싶어서,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싶어서, 임신해서, '사랑에 빠져서' 등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마음으로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반드시 이 책을 먼저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결혼은 끝내 유지되더라도 '자아 결핍의 무의식적 은폐'가 되어 결혼으로 만들어가야 할 진정하고도 소박한 삶의 희열과는 동떨어진 것이 되기 쉬우니까요.

이혼은 결혼에 투사된 나의 환상이 끝나는 고통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부적절한 이유'인줄 모르고 결혼에 빠져 비롯된 불행을 자각하고 수정하는 새로운 출발이기도 하답니다. 이 사실을 결혼하기 전에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겠지요.

"진정한 이혼 과정이란 '독신이 되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다. 사람들 대다수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결혼한다. 부모 밑에 있다가 곧바로 결혼 생활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독신이 되지 못하면 다른 관계로 숨어들기가 쉽다. … 혼자서 삶에 직면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는 역설 속에 진리가 있다."

두려움·적응·외로움·우정·비애·분노·자존감·전환·솔직함·신뢰 등 리빌딩 블록의 상당 부분은 17단계의 '독신' 블록에 도달하기까지 전부 '독신이 되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의 또다른 이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스스로 나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이 출발하는 모든 결혼이 이혼을 잠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 이혼을 감행하든 망설이든 혹은 만족한 결혼이라고 믿는 그/그녀는 여전히 '결혼할 준비'가 덜 된 것이겠지요.

이렇듯 자신을 모르고 있다면 결혼해야 할 이유도 알지 못할 테고, 그런 상태에서 빠져든 결혼이라면 관계를 통한 자아 성장의 기쁨과도 무관하게 돌아갈 테지요.

'결혼할 준비'의 핵심은 한 마디로 나의 내면에 자리잡은 원가족(자신이 태어나 자란 가족, 주로 부모)의 영향력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내가 아닌 내 안의 부모가 나 대신 결혼하려는 것을 발견하고 멈추는 일이랍니다. 결혼은 내가 하는 것이니까요.

"껍데기 단계에서는 해야 할 것을 하고 반항 단계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만, 사랑의 단계에 이르면 하고자 하는 것을 한다. 사랑의 단계에서 보이는 행동이 껍데기 단계의 행동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뒤에 숨은 동기는 완전히 다르다. 껍데기 단계처럼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열둘째 리빌딩 블록 '전환'(깨달음을 얻어 찌꺼기를 버리고 있어)은 이처럼 자기 자신의 성장 과정을 재발견하고 자아 정체성(나의 이야기)을 성찰하는 전환점이지요. 내가 나 자신과 솔직하게 대면하는 시간이지요.

나는 지금 '해야 할 것' 때문에 결혼했는지,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이끌려 결혼했는지, 아니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결혼했는지를 분별하게 된답니다. 이로써 자신이 맺어 가는 애정 관계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게 되고, 그것이 '하고 싶은 것'을 향해 움직이도록 자아를 사랑의 단계로 옮겨놓게 되겠지요.

리빌딩 블록의 마지막 2개에 해당하는 '목표'와 '자유' 바로 직전에, 그리고 16개의 리빌딩 블록을 착실하게 통과해서 도달하는 '섹슈얼리티' 바로 직후에 '독신'이 자리잡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독신이 되는 것은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갈무리해주더군요.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은 아이에서 내가 나 자신이 되는 것, 스스로 어른이 되는 것을 저자는 독신, 즉 내가 나를 사랑하는 단계라고 부르고 있지요.

여기까지 와야 이혼한 사람은 비로소 독신과 재혼의 선택 앞에서 '목표'를 갖고 '자유'롭게 행동하게 되고, 결혼을 앞둔 이라면 자신이 무슨 목표를 위해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인지 깨닫게 된답니다. 그렇지 못한 이혼 과정의 수렁이나 결혼 생활의 환상은 모두 같은 뿌리라는 것, 바람직하지 못한 결혼을 예방하고 바람직한 이혼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이 독자에게 제공하는 선물이지요.

이 책이 갖는 또하나의 장점은 매 장마다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리빌딩 블록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책 마지막에 부록으로 '아이들을 위한 리빌딩'을 다시 한번 요약해 놓았지요.

저자에 따르면 아이 역시 부모와 똑같이 이혼을 겪으면서 고통과 적응의 과정을 밟아나간다고 하네요.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슈퍼 부모가 되어 보상하려고 하기보다는 부모 스스로 리빌딩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고, 아이와 있는 그대로 대화하는 자세라고 하는군요.

"나(저자)는 십대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부모의 이혼이라고 생각했다. … 내가 이혼하고 나서야 이혼 가정에 대한 편견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어려움에 빠뜨리는 주요 요인은 이혼이 아니라 종종 이혼으로 끝나는 역기능적인 가정이었다. … 부모가 이혼을 겪어 나갈 때 아이가 감당해야 할 어려운 적응 과정을 최소화하고 싶지는 않다. 겪어야 할 것은 다 겪어 내야 한다는 말이다."

10주간의 이혼 워크숍 과정에 해당하는 이 책을 덮으면서, 저는 자신에게 조용히 다시 물어보게 됩니다. 이혼 뒤든 결혼 앞이든 무엇보다 먼저 내가 내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혼했어? 왜 결혼했어? 왜 결혼하려고 해? 너는 너를 알고 있니? 너는 너를 사랑하면서 목표와 자유를 갖고 있니?

리빌딩 RE-BUILDING - 다시 시작하는 부자의 꿈

조준행 지음,
한티미디어, 201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4. 4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5. 5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