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촌놈들' 모내기에 도전하다

[대안학교 이야기] 원경고, 단체노작 모내기 체험

등록 2004.06.05 19:30수정 2004.06.0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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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에서 6월 5일, 학교 농사 실습 '논에서 모내기'를 진행하였습니다. 매년 원경고는 모내기철을 맞이하면 전 교직원과 학생들 모두 두 발을 걷어올리고 손 모를 심습니다. 300평 남짓 되는 작은 논이라 기계 모를 심으면 몇 분 되지 않아 손쉽게 끝날 수 있겠지만 학생들의 노작 체험을 위하여 손으로 직접 심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모내기를 공고해 놓았더니, 투덜대는 목소리들이 많았습니다. 기계로 심으면 금방 되는데 무엇 하러 손으로 심느냐는 둥, 거머리 때문에 논에 못 들어간다는 둥, 왜 우리가 그런 걸 해야 하느냐는 둥, 선생님들의 의지를 시험하기도 하였습니다만, 예정된 날에는 교장 선생님을 비롯하여 모든 학생들이 다 나와서 일제히 모내기를 했습니다.

a 못줄에 맞추어 일제히 모를 심는 원경고 아이들

못줄에 맞추어 일제히 모를 심는 원경고 아이들 ⓒ 정일관

사실 아이들이 마음 내기가 쉬운 일이 아닌 줄 선생님들은 알고 있습니다. 원경고 학생들의 대부분이 도시 출신들이라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논물에 발을 담가 보지 못 한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에게 농사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노작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농부님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알게 하기 위하여 그런 여러 가지 불만 속에서도 아이들을 논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오전 9시에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먼저, 농업 선생님이 모내기할 때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모내기 시범을 보여준 뒤, 곧바로 학교 뒤에 있는 논으로 갔습니다. 논물은 이미 채워두었고, 어린 모를 담은 모판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a 비록 어설픈 모습이지만

비록 어설픈 모습이지만 ⓒ 정일관

논을 보자 아이들은 모두 탄식하였습니다. 나름대로 한 마디씩의 탄성을 질러대었습니다. 논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가지가지였습니다. 툼벙툼벙 들어가는 아이도 있고, 잔뜩 몸을 도사리는 아이, 논물에 발을 들이밀면서 소리를 지르는 아이, 논바닥 흙의 미끈거리는 느낌이 이상하다고 얼굴을 찡그리는 아이, 신조차 벗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아이, 핑계를 대고 안 들어가려는 아이 등.

그러나 선생님들과 3학년들이 중심이 되어 자리를 잡자 아이들은 마침내 일렬로 늘어섰고, 선생님 두 분이 못줄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모심는 아이들 뒤에서 모판의 어린 모를 뜯어 분배해주는 아이들도 배치를 하였습니다.

a 모내기 하다 허리 펴고

모내기 하다 허리 펴고 ⓒ 정일관

못줄에 맞추어 일제히 모를 심고 다 심으면 허리 펴고, "주∼울, 줄!" 하면서 못줄을 옮기고 다시 허리를 굽혀 일제히 모를 심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참으로 어설펐습니다. 모를 심는 양도 다르고, 제대로 심지 못해 뜬 모도 많았으며, 줄도 엉망이었고, 어떤 아이는 장난으로 한 부분을 비워두기도 하여 도대체 저 어린 모들이 논바닥 속으로 발을 뻗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답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아이들의 손놀림이 익숙해질 즈음, 찌는 날씨 속에 붉어진 얼굴로 모심기를 마쳤습니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논을 벗어나 발을 씻고, 학교 안의 조그만 야외 수영장(이라기보다 물놀이장)에 뛰어들어 더위를 식혔습니다. 이윽고 샤워를 하고 난 아이들의 모습에서 이제 또 어떤 일 하나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엿보였습니다. 그것은 막 심어진 모들의 안도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a 아유, 힘들어

아유, 힘들어 ⓒ 정일관

아이들과 함께 심은 모는 우리 모두의 일 년치 꿈이기도 합니다. 나락이 여물고 가을걷이를 하면 햅쌀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밥상공동체를 이루고, 3학년 수능시험 보기 전에 기도떡을 만들어 다함께 공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모가 잘 자라도록 피를 뽑아주고 아껴주는 정성을 기울일 것입니다.


기존 지식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체험학습을 준비하고 있는 대안학교에서 노작체험학습이 주는 의미는 큽니다. 하기 싫은 노동을 하면서 자신을 단련시키는 일이니까요. 수행자들이 반농 반선(半農半禪)을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겠지요.

따뜻한 선생님들의 친절과 사랑, 체험학습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교육, 문화예술을 가까이 하여 삶을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교육, 이것이 공부는 제대로 못해도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a 뜬 모를 주워 교장 선생님께서 마무리

뜬 모를 주워 교장 선생님께서 마무리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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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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