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방한 당시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연합뉴스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현지시간으로 5일 오후 2시께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타계소식이 전해지자 각국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성명이 쏟아졌다. 미국내에서도 이같은 애도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레이건은 재임시는 물론,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인기좋은 대통령으로 남아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2001년 대통령 취임시 "나도 레이건 대통령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다.
레이건은 대중을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언제나 미소짓는 표정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그는 아주 복잡한 일도 단순하고 과감하게 처리했으며 큰 틀만 직접 관장하고 세세한 것은 부하들에게 믿고 맡겼다.
대중적 인기와 함께 '강한 미국'의 상징
레이건 시대는 영화 '람보'가 상징한다. 지난 1983년 개봉된 영화 람보는 근육질 영화배우 실베스타 스텔론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그린베레 출신 존 람보로 등장, 혼자 수백 수천명의 적을 해치우는 액션 영화다.
당시 '미국적인 영웅'을 열망하던 대중의 정서와 맞물려 큰 인기를 끌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람보로 등장하는 패러디 영화 포스터가 유행했던 것과 이와 관련이 있다. 그는 대중적 인기와 함께 '강한 미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 | | 노 대통령, 낸시 여사-부시 대통령에 '조전' | | | | 노무현 대통령은 6일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타계에 즈음해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낸시 레이건 여사와 부시 미 대통령에게 조전을 발송한다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조전을 통해 부시 대통령과 유가족 그리고 미 국민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고, 고인의 대통령 재직시 동서냉전의 극복을 위해 노력하였고, 특히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많은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한․미 동맹관계 강화의 굳건한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음을 높이 평가하고, 이를 우리 국민들이 기억할 것이라고 언급할 예정이다.
한편 조문사절 파견에 관해서는 내일(현지 시간은 6일) 있을 예정인 장례 주최측의 발표와 우리 정부의 관행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윤 대변인은 밝혔다.
94년 닉슨 전 대통령 장례식에는 정원식 특사(전 총리)가 조문사절로 참가했다. / 김당 기자 | | | | |
레이건이 지난 1980년 대선에서 카터를 꺾고 등장하기 직전 미국민들의 자존심은 형편없이 떨어졌었다. 베트남 전 패배의 악몽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도하차한 사건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이란 인질 사건도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구겼다.
1979년 11월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의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팔레비 정권이 무너졌다. 과격파 학생들은 테헤란의 미 대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을 인질로 잡았다. 1980년 4월 미 특수부대가 인질구출 작전을 펼쳤으나 헬리콥터가 사막에서 서로 충돌해 추락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 '강한 미국'을 역설하며 등장한 게 레이건이다.
부시 대통령은 레이건의 사망에 "미국으로서 슬픈 날"이라며 "레이건 치하에 "미국은 분열과 의혹의 시대를 종식했으며 그의 지도력하에 전 세계는 두려움과 독재의 시기에 종말을 고했다"고 평가했다. 미 민주당 대선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은 "레이건 전 대통령의 조국애는 전염과 그 영향력이 강력하다"고 말했다.
1980년대 레이건과 굳건한 영·미 보수동맹을 구축해 이념적·정치적 친분을 같이했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그는 진정 위대한 아메리칸 히어로였다"고 애도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그는 위대한 통치자였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과 신념의 힘으로 역사에 깊은 자취를 남길 인물"이라고 애도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레이건의 유산
영국 로이터 통신은 '레이건의 보수주의 혁명은 아직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평했다. 이런 평가가 가능한 것은 레이건 시대의 경제적·정치적·군사 정책이 여전히, 특히 보수 정권에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81년 집권한 레이건은 1989년 백악관을 떠날 때까지 소비를 활성하한다는 명목하에 세금을 감면했고, 정부 기구의 대폭적인 축소와 사회보장비의 삭감을 통한 '작은 정부'를 추구했다. '레이거노믹스'라 불리던 그의 경제정책은 철저한 공급위주로 정부가 개인과 기업에 덜 간섭할 수록 경제는 활성화된다는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철의 여인' 영국의 대처 수상처럼 레이건도 노조 파업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철처하게 힘을 바탕으로 미국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했다. 1983년 카리브해의 인구 11만명의 나라 그라나다에 좌익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미국은 직접 침공했다. 레이건은 옛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면서 국방비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레이건은 낙태를 반대하고 학교 기도를 권장하는 등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미국적 가치'를 내세워 보수적 입장을 강조함으로써 미국 사회 전반이 보수 기조를 띠었다.
이른바 오늘날 신보수주의라고 불리는 정책들의 뿌리는 멀리 레이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부시 정권도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금 감면 정책을 펴고 있다. 국방비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도 비슷하며, '악의 축'이라는 말의 저작권도 실상 레이건의 '악의 제국'란 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