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 부인 장명희씨 귀국

남편 대신해 시어머니 장례 참석...불효 용서 구하는 육성 테이프도

등록 2004.06.07 00:24수정 2004.06.0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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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앞에서 오열하는 장명희씨
영정 앞에서 오열하는 장명희씨백한승

가택연금 상태에서 모친상을 당한 로버트 김(64·한국명 김채곤)의 부인 장명희(61)씨가 6일 오후 대한항공 094편을 이용해 입국,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시어머니 황태남 여사의 빈소를 찾았다.

지난 2월 시아버지 김상영옹의 장례식에 이어 시어머니의 장례식마저 남편을 대신해 홀로 참석하게 된 장씨는 “남편과 함께 오기를 희망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가슴 아파했다.

장씨는 남편이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임종을 지키지 못해 자식으로서 큰 불효를 저질렀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번에도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배웅했다고 밝혔다.

빈소를 찾아 시어머니의 영정에 헌화한 장씨는 “한 달 후면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황망히 가시니 가슴이 미어진다”며 오열했다.

지난 2월 방한 당시의 장씨
지난 2월 방한 당시의 장씨백한승
장씨는 이번 방문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지난 5일(현지 시간) 녹음한 로버트 김의 육성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가지고 왔다. 8일 장례식 자리에서 공개될 예정인 이 테이프에는 그토록 그리던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키지 못한 자식의 안타까움과 불효를 용서해 달라는 통한의 메시지가 담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빈소 방문에 앞서 공항에서 곧바로 동작동 국립 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이날 현충원 방문은 “현충일인 만큼 순국선열들을 참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로버트 김의 제안에 따라 이뤄진 것. 장씨는 방명록에 ‘조국은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은 조국을 사랑하는, 소중한 조국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록했다.

한편, 장씨는 빈소에서 배포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지금 남편은 집에서 출소를 기다리며 조금씩 희망 앞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근황을 설명하고 “남편이 하루빨리 사건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우리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시어머니는 자상하고 가슴 따뜻한 분이었다”며 고인을 추억한 장명희씨는 장례식을 치른 뒤 오는 10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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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아버지 석방 뒤에 해도 늦지 않아요”
로버트 김 막내딸 재연씨 4년간 결혼 미뤄 와

▲ 온 가족이 참석했던 재연씨의 졸업식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 기쁨도 잠시, 지난 4일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잃은 로버트 김의 막내딸 재연(28·미국명 레스리)씨가 ‘아버지의 석방 뒤 결혼하겠다’며 백년가약을 한사코 미뤄왔던 사실이 알려져 이들 가족의 애틋한 사랑이 잔잔한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7년 7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지난 1일 버지니아주 애쉬번의 자택으로 돌아온 로버트 김과 부인 장명희씨 사이에 태어난 재연씨는 이미 4년 전 약혼식을 올렸지만, 아버지의 석방만을 학수고대하며 웨딩마치를 미뤄왔다고 한다.

그녀 역시 하루라도 빨리 결혼반지를 끼고 싶었지만 영어의 몸으로 차디찬 옥중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을 아버지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행복은 사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대학원에서 심리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리치몬드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재연씨가 이처럼 결혼을 미룬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숨어있다. 애석하게도 로버트 김은 지금껏 출가한 두 자녀들의 결혼을 모두 보지 못했던 것.

8년 전 큰딸 정연(34)씨 결혼식에는 가정에 급작스런 사정이 생겨 두 내외가 참석하지 못했고, 아들 종윤(33)씨 때는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가 기밀누설혐의로 체포된 지 1년여 만의 일이었다. 재연씨는 그런 아버지에게 막내딸이 행복하게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로버트 김은 최근까지도 “너의 삶과 인생이 있으니, 아버지 때문에 너무 오래 기다리지 말라”며 그녀에게 결혼을 당부했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까지 기다렸으니 앞으로도 기다리겠다”는 말이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옥중의 로버트 김은 그런 딸이 가슴 시리도록 고맙고 대견했다.

유독 아버지를 따랐던 그녀에게 부친의 갑작스런 구속은 충격 이상이었다. 평탄했던 가정이 급기야 파산에까지 이르렀지만 그녀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 같이 분명하고 철저한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분단이라는 서글픈 현실의 ‘아버지의 나라’를 한번쯤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캠퍼스에서 만나 오랜 기간 교제하며 사랑을 키워왔던 미국인 약혼자와, 아버지가 자유를 되찾게 되는 올 가을이나 겨울쯤 결혼식을 올릴 계획인 그녀는 최근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조국을 돕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신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 우리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이제는 두 분이 새로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고 한다. / 김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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