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25일 한국과 독일 월드컵 4강전 당시 거리 응원 현장오마이뉴스 권우성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역사는 20세기에 기록된 것들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20세기에 역사를 처음 기술할 때 일본의 식민지였다. 한국의 역사는 일제의 어용 단체인 조선사 편수회가 기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국 역사학자의 사관 속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식민주의 사관이 스며들게 되었다.
식민주의 사관의 핵심은 조선 민족은 안으로는 화합하지 못하고 분열하고, 밖으로는 중국과 같은 강대국에 사대하는 족속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식민주의 사관의 목적은 조선 민족에게 패배감을 주입시키고, 일제가 지배하기 편하도록 열등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었다.
일제 36년의 역사는 해방과 함께 종식되었지만, 한번 주입된 관념은 잡초처럼 무서운 생명력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렸다.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스스로 폄하하거나 모독하는 발언을 나는 종종 들었다. 그리고 때때로 이러한 발언의 대상은 축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발언은 축구 선진국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한국 유소년 축구 교육의 질과 잔디 구장의 보유 여부, 축구 행정 수준의 차이, 리그 활성화 정도에 따른 실전 경기의 횟수 등을 완전히 무시한 감정적인 발언이었다. 하지만 감정은 강력했다.
2002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 우리는 적어도 축구에서 어느 정도 패배에 익숙해 있었다. 나 역시 새벽의 뒤척임 속에서 감정적으로 축구에 관한 한 한국은 열등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3명의 대표팀 선수들은 나의 생각에 일침을 가했다. 그리고 24번째 대표팀 선수인 붉은 악마는 도무지 패배감이라고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외치고 또 외쳤다. 우리는 분열하지도 않았고, 그 어떠한 팀에게도 기죽지 않았다. 녹색의 잔디 위를 힘차게 내달리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내 의식 속에 있던 익숙한 패배감의 잡초를 뿌리 채 뽑아버렸다.
전후 세대인 우리 아버지들은 가난 속에서 미국 짚차를 쫓아가며 "기브미 껌, 기브미 초콜릿"을 외쳤고 미국 부대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 '부대찌개'를 만들었다. 그들은 놀라운 정열과 노력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지만, 그들 마음 속 깊은 곳엔 가난과 눈물로 얼룩진 열등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패배를 모르는, 승리만을 믿는 세대가 출현했다. 껌과 초콜릿을 얻어 먹지 않은 세대가 출현한 것이다.
비록 진다고 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필드에 첫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의 발을 옥죄던 동남 아시아의 작은 반도국가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크고 원대한 비전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 '익숙한 패배감'을 불 사르고 승리를 믿어야 한다.
누군가는 축구와 히딩크 신드롬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고, 누군가는 붉은 물결을 보며 레드콤플렉스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던 2002 한일 월드컵은 내 가슴에 '익숙한 패배감'과의 이별 의식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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