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80

검은머리 사람들(하)

등록 2004.06.14 10:55수정 2004.06.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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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난의 길.


'운명을 결정하는 신들이 엔릴을 붙잡고 벌을 내렸다.
성범죄자 엔릴을 이 도시에서 쫒아낼 것이다....(저세상으로 쫓겨간 엔릴 편)'



1

에인은 갈증이 나서 눈을 떴다. 아침이었다. 돌아보니 두두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목이 탔고, 부엌에 가서 물이라도 얻어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그가 막 침대에서 내려서는 순간 방문 휘장이 휙 쳐들리더니 낯선 장정 둘이 뛰어들어 그의 양쪽 팔을 휘어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다짜고짜로 그를 밖으로 끌고나갔다.

에인은 '당신들은 누구냐, 왜 이러느냐'고 물을 틈도 없이 거실로 끌려 나왔다. 다행이 거기에는 두두의 외삼촌이 서 있었고, 그는 에인이 미처 뭐라고 묻기도 전에 서둘러 변명을 했다.

"제가 잠이 깨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당부를 했습니다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외삼촌은 눈길을 피하며 대답했다.
"장군께서 마을 장로회에 고발되셨답니다."
"고발이라니요?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나를 고발한단 말이오?"
"무슨 까닭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아무튼 저 역시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촌장도 함께?"
"저에겐 통역을 하라는 것이지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소. 난 고발을 당할 그 어떤 일도 저지른 적이 없소이다. 그러니 촌장께서 어서 이 사람들에게 말하시오. 지금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이오."


촌장은 고개까지 절레절레 내저으며 대답했다.

"이 마을에서는 촌장이라 해도 장로들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 가서 전후 사정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장정들이 다시 그의 팔을 조여 잡고 등을 떠밀었다. 때문에 그는 신발도 챙겨 신지 못한 채 거리로 끌려나왔다. 다행히 장로회관은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곳은 장로회관 겸 마을재판소였고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창을 든 문지기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재판이 있을 때는 문지기들도 그렇게 무장을 하는 모양이었다.

에인은 회관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실내는 넓은 홀이었고 그 가운데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에인을 끌고 왔던 장정들이 그를 그 의자에 앉힌 후 벽쪽으로 물러났다.

양옆 벽 쪽으로는 나무로 엮은 의자들이 군데군데 놓였고 그 의자들 사이로 창을 든 사람이 서 있었으나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판받을 사람이 이 마을 주민이 아니어서 참관자가 없는 모양이었다.

에인이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수염이 긴 노인이 앉았고, 양 옆으로는 중늙은이들이 각각 세 사람씩 앉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자기를 심판할 장로들인가 보았다.

에인이, 가운데 앉은 저 노인을 바라보며 그가 이 재판을 주도할 사람인가보다, 라고 짐작하고 있을 때 두두의 외삼촌이 다가왔다.
"여기 신발을 가져왔습니다."

촌장은 그에게 신발을 전해둔 후 곧장 중늙은이들 옆으로 가 앉았다. 에인은 얼른 신발을 신었다. 신발을 신을 수 있다는 것이 왠지 좋은 징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긴 가죽 끈 두 가닥을 발목으로 돌려가며 찬찬히 묶었다.

'재판은 금방 끝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즉시 이곳을 떠나리라.'
그가 끈매기를 끝내자마자 노인이 서둘러 개정을 선언했다. 그리고 노인은 즉시 에인에게 물었고 촌장이 통역을 했다.

"젊은이는 본국에 아내가 있소?"
"그런 것은 물을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대답하시오!"
"없습니다."
"그럼 이 니푸르엔 아내 감을 찾으러 온 것이오?"
"아니오."
"그러면 어찌하여 여자를 희롱했더란 말이오?"
"내가 어떤 여자를 희롱했단 말입니까?"
"솔직이 대답하시오. 그런 적이 있소, 없소?"

노인이 엄하게 다그쳤다.
"없습니다."
"그럼 어제 냇물에서 한 짓은 무엇이었단 말이오? 그건 그저 멱을 감았던 것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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