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 분양원가는 공개한다더니...

노 대통령 과거 발언 진위 공방... 청 "아파트 아닌 택지 원가" 해명

등록 2004.06.12 14:17수정 2004.06.1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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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간의 대담을 실은 <중앙일보>의 지난 2월 16일자 기사. 중앙일보는 이 기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일단 공영개발하는 아파트의 원가는 공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간의 대담을 실은 <중앙일보>의 지난 2월 16일자 기사. 중앙일보는 이 기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일단 공영개발하는 아파트의 원가는 공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도대체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하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가졌던 인터뷰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분양원가 공개 문제와 관련 "일단 공영개발하는 아파트의 원가는 공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 발언이 진위 공방에 휩싸이고 있다.

분양원가공개를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는 경실련 쪽에서는 "4개월만에 입장을 번복했다"며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을 문제삼아 즉각적인 공세를 펼쳤고, 청와대 쪽은 "오해"라며 원가공개 불가 원칙을 여전히 고수했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 본부장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2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과의 인터뷰에서 공영개발하는 아파트의 원가는 공개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어디로 간 것이냐"며 노 대통령이 입장을 번복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홍석현 회장과의 인터뷰 당시만 해도 노무현 대통령은 "일단 공영 개발하는 아파트의 원가는 공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며 주공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공개할 것임을 시사했었다.

이어 노 대통령은 "그러나 민영 아파트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고 말해, 민영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에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주공과 같은 공기업이 건축한 아파트의 경우 공적 성격을 인정해 분양원가를 공개할 수 있지만, 민영 아파트의 원가공개는 시장원리라는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수용하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청와대 "공영 아파트 아니라 공영택지 공개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러한 주장이 "오해"라며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경실련의 기자간담회가 있은 다음날인 11일 "당시 기사가 그렇게 보도돼 생긴 오해"라며 대통령의 입장 번복 사실을 적극 부인했다.

윤 대변인은 "당시 기사를 확인해 보니 그런 보도는 사실인데 그 당시 국정기록을 뒤져보니 노 대통령은 공공·공영개발 토지에 한해서 가격을 공개하겠다는 것이 건교부 방침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며, 분양원가를 공개하겠다는 것처럼 보도된 기사가 잘못이라는 식으로 해명했다.


같은날 청와대 브리핑도 "중앙일보에 실린 노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공개하겠다고 한 것은 ‘공영개발 하는 아파트의 원가’가 아니라 ‘공영개발 토지의 가격’이었다"며 "따라서 노 대통령은 ‘공기업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관한 입장을 번복한 적이 없다"고 맞섰다.

즉, 당시 노 대통령의 발언은 토지공사가 조성한 공공택지의 분양가를 공개할 수 있다는 얘기였지, 주공이 건축한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공개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는 것이 윤 대변인 해명의 요지다. 중앙일보가 녹취를 풀어 보도하는 과정에 '사고'가 생겼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기사가 보도된 이후 중앙일보가 이 기사 중 일부가 잘못 기록됐다며 정정한다고 보도한 적은 없었다.)

다음은 중앙일보가 보도한 노무현 대통령의 분양원가공개 관련 발언.

"좋은 말이다. 이런 이야기는 어떤가. 요 근래 나는 부동산 가격만큼은 확실히 잡으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아파트 공사비 원가 공개 문제가 있다. 일단 공영 개발하는 아파트의 원가는 공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민영 아파트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아마 여러분은 내가 원가를 공개하라 하고 장관이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번에 보고 받으면서 나는 "시장에서 상품 원가를 공개하라는 것이 시장 원리에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가격이 수요·공급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수요·공급이 궁극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것 아닌가. 그 질서를 존중하면서 정책을 펴라고 지시해 토론 과제로 넘겨 놨다. 홍 회장도 내 발언 내용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웃음) 나는 원칙주의자고 동시에 실용주의자다. 실용적일 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 수단도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정책과 시장친화적 정책, 규제도 시장친화적 규제를 항상 우선해 쓰도록 하고 있다."


a 청와대브리핑의 반박문.

청와대브리핑의 반박문. ⓒ 청와대 홈페이지

이 해명을 접한 경실련은 12일 "안타깝다"는 요지의 성명을 통해 청와대의 해명을 조목조목 재반박했다. 중요한 것은 진위여부가 아니라 원가공개를 장사원리로 접근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기본인식임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경실련은 먼저 최소한 공공택지의 공급가격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청와대의 해명에 의하면 당시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공공택지의 분양원가는 공개할 수 있는 쪽으로 약속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경실련은 "청와대의 해명대로 공영아파트 원가가 아니라 공영개발하는 토지의 가격이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대통령도 약속하고 건교부도 약속한 택지공급가격을 아직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고 따졌다.

"주공 원가공개 시장원리 맞지 않다면 민영화시켜라"

분양원가공개가 '장사원리', 즉 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강조한 노 대통령의 발언에 논리적 어폐가 존재한다는 점도 하나하나 짚어냈다. 노 대통령의 '소신'대로 "주택공사가 사업자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한 원가공개는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면 주공을 민영화시켜라고 경실련은 꼬집었다.

"공기업의 역할에 대해서조차 부정한다"면, "대통령의 인식대로 주택공사가 장사의 원리로 움직이고 있다면" 주공을 민영화하면 될 일이지 "비효율적인 공기업을 존속시킬 이유가 있느냐"고도 했다.

또한, 노 대통령이 주택시장에서의 '시장원리'를 줄기차게 강조하면서도 정작 가장 비시장적 시스템인 선분양제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 언급도 없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경실련은 "선분양제도는 분양가를 규제하던 시기에 정부가 원활한 주택공급을 하기 위해 소비자로부터 재원조달을 할 수 있도록 공급자인 주택건설업체에게 일종의 특혜를 준 것"이라며 후분양제의 도입을 촉구했다.

"시장원리 강조하면서 비시장적 시스템인 선분양제 왜 폐지 안하나"

이러한 견해는 지난 9일 건교부의 주택정책 관련 여론을 수렴하는 자리인 공청회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토론자로 참석한 서순탁 서울시립대 교수는 시장원리와 주거안정문제가 부딪힐 때, 정부는 수단적 의미의 시장원리 대신 '주거안정'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후분양제 도입을 꺼냈다.

임덕호 한양대 교수도 "공기업인 주공이 원가공개를 꺼리는 행위자체가 정상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경기가 과열상태로 가면, 가격 상승분이 소비자에 전가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후분양과 묶어 나가야만 주택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고 후분양제의 조속한 도입을 주장해 공감을 얻은 바 있다.

끝으로 경실련은 "결론적으로 아파트에 대한 정보가 생산자 한편에 치우쳐 있는 상황에서 선분양제는 유지하고 원가공개를 하지 않는다면 소비자가 품질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이라며 "분양원가공개 요구는 소비자의 최소한의 권리"라고 못박았다.

이어 "정부는 주택소비자가 공공아파트의 원가공개를 통해 민영아파트의 원가를 추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뒤 "정부는 더 이상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왜곡된 주택시장구조를 바로잡아 폭등하는 아파트가격의 상승을 막고 주택건설업체의 폭리를 막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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