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숲'엔 들어가지 마세요

그림책 <통일의 싹이 자라는 숲>

등록 2004.06.14 13:03수정 2004.06.1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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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뭘까? 옛날 이야기 속 도깨비나 귀신도 무섭고, 산불이나 태풍 같은 재해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 하지만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 해. 사람이 왜 무섭냐고? 그 이유는 끝까지 듣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 먼저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 줄게.

지금부터 54년 전, 우리 겨레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서로에게 총질을 하는 전쟁을 벌였어. 3년 동안의 긴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학교와 다리는 부서져서 마을은 폐허가 되었지. 전쟁이 끝난 후 군인들은 휴전선을 가운데에 놓고 남과 북으로 2㎞씩 떨어진 곳에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도록 철조망을 쳤어.

그 곳을 비무장지대라고 하는데 오늘 아빠가 읽어 줄 책 <통일의 싹이 자라는 숲>은 비무장지대에 사는 동물과 식물에 관한 이야기야. 표지의 그림을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리고 녹이 슨 철모가 놓여 있고, 그 구멍 사이로 이름 모를 들꽃 하나 피어 있어. 구멍 뚫린 철모는 아마도 한국전쟁 당시 희생당한 어느 군인의 것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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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싹이 자라는 숲> 표지 ⓒ 마루벌


"사람들이 보살피지 않아도 바람이 불고, 햇빛이 비추고 비가 내리니까. 까맣게 그을은 땅 속에서 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타 버린 나무도 뿌리로 힘껏 영양분을 빨아들이며 자라나기 시작했어. 계곡 물에는 물고기가 생기고, 숲에도 여러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게 되었지."- 책 속에서

군인이 총을 맞고 쓰러진 자리에 새로운 생명인 들꽃이 피어나듯, 전쟁으로 완전히 못 쓰게 된 죽음의 땅 비무장지대는 5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각종 동물과 식물의 낙원으로 변했어. 죽음의 땅이 건강한 생명을 되찾는데 사람이 한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어. 아니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무장지대가 낙원이 될 수 있었던 거야.

오늘 날 비무장지대에는 2800여 종이나 되는 동물들과 식물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어. 그리고 비무장지대가 아니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희귀종들이 146종이나 된다고 해. 멧돼지와 까마귀가 서로 공생하며 사는 모습도 비무장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하니 비무장지대가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알 수 있겠지?

하지만 비무장지대가 완전히 평화롭기만 한 곳은 아니야. 한국전쟁 당시 뿌려 놓았던 폭탄과 지뢰가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무장지대 곳곳에 남아 있어. 그래서 비무장지대에서 사는 동물들이 폭발사고로 다치거나 죽는 일도 가끔 일어나곤 하지. 신기한 것은 비무장지대에서 살고 있는 멧돼지들은 새끼가 태어나면 지뢰가 없는 곳으로 다니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거야.

비무장지대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50년 동안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 것만으로 동식물의 낙원이 된 그곳에 사람이 들어가도 될까? 그 곳에 길도 닦고, 아파트도 짓고, 공장도 만들어 사람들이 살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곳의 동식물들에게 세상 가장 무서운 것을 꼽으라고 하면 폭탄과 지뢰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대답하진 않을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산수유, 끈끈이주걱, 금강초롱, 홀아비비바람처럼 이름도 고운 식물들과 박새, 수리부엉이, 까막딱따구리 같은 날짐승들, 산양, 고라니, 노루, 삵 같은 길짐승들, 산천어, 열목어, 연어 같은 물고기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애.

하지만 우리는 그 곳에 들어 갈 자격이 없어. 그 곳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 그곳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을 뿐이야. 지금처럼 생명이 가득한 땅으로 만든 것은 그 곳의 동물들과 식물들이며 그들이 바로 비무장지대의 주인이지.

언젠가 통일이 되는 그 날에도 비무장지대만큼은 지금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게 너희들이 노력해 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자연의 모습 그대로 간직한 땅이 하나쯤 있다는 건 자연을 위해서도, 사람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될 거야. 아빠는 너희들이 그 곳의 동식물들에게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를 바래.

통일의 싹이 자라는 숲 - 희망의 땅 비무장지대 1

전영재 지음, 박재철 그림,
마루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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