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극장 앞에서 배창호 감독박상봉
광주 상권의 중심지 충장로 5가에 있는 광주극장. 배창호 감독이 만든 아름다운 영화 <길> 시사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내걸려 있었다. 입구에서 만난 이 극장의 김형수 이사는 "광주극장은 1933년 일본인들에게 강점 당한 지역문화계의 현실에 맞서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됐다"며 "해방 전후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애국강연회 등 지방 항일 문화교육 계몽운동의 전당이 되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 1968년 화재로 전소된 건물을 재건립한 이래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오고 있다는 데 낡은 듯하면서도 운치 있는 모습이 마치 영화박물관을 찾아온 것 같았다. "지금도 간판장이가 손수 페인트로 그려서 작업해낸 영화간판을 올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보니 상영 중인 <송환>의 간판이 꽤나 멋스러운 데가 있어 보였다.
관객을 맞기 위해 극장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강충구 이산프로덕션 대표에게 이번 시사회를 갖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강 대표는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도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하면 빛이 바래는 법"이라면서 "이번 광주시사회는 좋은 영화를 보려는 관객을 영화가 먼저 찾아가는 또 다른 '길'의 시작이라고" 운을 뗐다.
그의 말에 의하면 촬영이 진행된 8개월 동안 전라도 김제에서 시작하여 강원도로, 경상도로, 다시 전라도 구례로 장돌뱅이처럼 떠돌아다니며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어떤 지방은 자치단체로부터 행정지원과 촬영장소 제공, 세트장 설치 등 번거로운 일에 도움을 크게 받았고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엑스트라 섭외까지 도와준 고마운 분도 있어 어려움 속에서도 제작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가 완성되면 도움을 준 사람들을 위해 로케현장을 돌며 사은시사회를 가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강 대표의 구상을 듣게된 도서출판 '전라도닷컴'의 황풍년 편집장과 지역문화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광주시사회를 열게 됐다는 설명이다.
저녁 7시 가까이 되자 광주극장 앞에는 영화를 보러온 시민, 노동자, 학생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김준태, 고재종 시인 등 광주지역 문화교육계 인사와 전주에서 달려온 연극·영화인들도 눈에 띄었다.
▲광주극장 앞에서 : 왼쪽부터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 하상용 전라도닷컴 대표, 배창호 감독, 강충구 이산프로덕션 대표, 안청락 이산프로덕션 제작이사박상봉
#2. 광주극장 안
저녁 7시. 극장 안 800여석의 객석이 관객들로 거의 채워져 있었다. 먼저 이번 시사회를 주관한 하상용 전라도닷컴 대표가 무대에 올라가 "사라져가는 풍경과 길들에 바친 배 감독의 각별한 애정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상당 부분이 전라도 곳곳에서 촬영된 것이고 지역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영화라서 광주 시민과 지역 문화인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추억의 자리가 될 것 같아 이번 시사회를 적극 유치하게 됐다"고 인사말을 했다.
이어 배 감독은 "문화중심도시 광주에서 첫 시민시사회를 갖게 돼 기쁘다"며 무대인사에 나서 "지금 영상에 담지 않으면 영원히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번 영화를 찍게 됐는데 거대 자본을 투자한 영화보다 디테일 면에서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영화 제작배경을 간단히 설명했다.
#3. 영화상영이 시작되고
▲태석(배창호 감독 분)과 득수가 동고동락하던 시절 사랑가를 부르며 장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영화 <길>
주인공 태석(배창호 감독 분)은 7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시골장터를 떠도는 대장장이다. 평생 고집스레 전통방식을 고집하며 풀무질을 해왔지만 산업화, 현대화 바람으로 사람들 반응은 점차 냉담해진다. 태석은 함평장에서 갈담장으로 이동 중 시외버스에서 소매치기로 오인받는 신영과 우연한 동행을 한다.
버스가 끊겨 두 사람은 눈발 날리는 길을 하염없이 걷다가 폐가에 이르러 잠시 쉬게 된다. 태석은 신영이 흥얼거리는 노래와 그녀가 가진 분첩을 보고 20여년 전 동고동락하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자신을 배신하고 아내와 정을 통한 득수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신영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단천골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도 듣게 된 태석은 그녀와 함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을 넘어 단천골로 향하고 결국 오랜 마음의 갈등를 씻고 득수를 용서하며 장례식을 치른다.
▲태석은 신영이 철천지 원수가 된 득수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갈등 끝에 그녀와 함께 득수의 장례식을 치른다영화 <길>
영화가 상영되는 100분 동안 객석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관객들은 영화에 몰입했고 간간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남녀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태석이 과거의 상처를 씻고 20여년만에 아내와 자식을 찾아가지만 가족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또 다시 길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아쉬운 탄식소리를 내는 듯하더니 이내 열렬한 박수갈채가 극장 안을 가득 메웠다.
#4. 배창호 감독과 관객의 대화
상영이 끝나고 다시 무대로 올라간 배 감독은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한 여성관객은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사투리를 너무나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데 놀랐다"며 "어떻게 사투리를 배웠는지 궁금하다"고 물었고, 배 감독은 "사실은 전라도 사투리의 어미 발음이 어려워 많이 애를 먹었다. 연기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영화 <길>에서 주인공 태석 역을 맡은 배창호 감독.영화 <길>
또 한 여성관객은 "길이라는 제목을 듣는 순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영상미가 떠올라 달려왔다"며 "지금은 사라져가는 오일장 풍경이 특히 재미있었다"고 말한 뒤 "영화내용 중 '약국'은 '약방'으로 '이용소'는 '이용원'으로 표기되는 게 시대상에 맞지 않은가?"라는 지적으로 장내를 잠시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배 감독은 "언어란 같은 지역이더라도 장소에 따라 다르게 표기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정중하게 질문을 받고 나서 "영화가 제 몫을 다하려면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관객들이 함께 공감해줘야 된다"며 "제작 여건이 열악해 아쉬웠던 독립영화의 한계를 관객들이 채워주길 바란다"고 덧붙여 박수를 받았다.
#5. 다시 광주극장 앞
▲시사회를 마치고 광주극장 앞에서 관객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배창호 감독박상봉
이미 어둑해진 극장 앞 골목길. 100여명의 관객이 감독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사인을 해주는 배 감독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지만 표정은 무척 밝아 보였다.
기자는 배 감독과 영화 관계자는 물론 광주 시민들에게도 이날 저녁이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신의 진정한 가치관을 잃어가는 마음에 가족 사랑 우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자리가 됐을 뿐 아니라, 강퍅한 삶이 너무나 힘에 겨워 잊고 살아온 용서와 화해의 미학이 대자연의 공간 속에서 세상의 온갖 상처 난 것들을 아우르고 친화하는 감동을 함께 보고 느꼈을 터이므로.
#6. 관객들의 반응
기자는 몇 사람에게 영화를 본 소감이 어떤지 알아보았다. 동신대 다중매체연기영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는 지역영화운동가 박형균씨는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대작이 속출하는 시대에 능력 있는 스타감독이 만든 독립영화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풋풋한 신선미가 느껴졌다"면서 "예술영화를 만들면 무조건 망한다는 것이 기정 사실로 돼 있는 우리영화계 현실에 많이 지쳐 있었는데 이번 영화를 보고 새로운 용기와 큰 힘을 얻었다"고 시사 소감을 밝혔다.
광주 학동에 사는 주부 정주희씨는 "전라도 곳곳의 정취를 담아내 친근감이 느껴졌고 대사가 아름다운 서정시의 한 구절 같아 감동이 더 컸다"고 했고, 전주에서 온 연극인 최경식씨는 "주연을 맡은 배창호 감독의 사투리와 표정 연기가 너무 실감났다"면서 "이제 배우 배창호로 불러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일정에 대해 이산프로덕션 강충구 대표에게 물어봤다. 그는 "우리나라도 서울과 지방간의 문화 격차가 줄어들고 지방을 근거로 하는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는 시대가 속히 도래하길 바란다"면서 "이번 영화가 제작방식과 홍보면에서 독립영화가 살길을 제시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이 달 말부터 전주, 함평 등 전라도 지역과 대구, 성주 등 경상도 지역 등 로케현장과 그 주변지역을 순회하며 '지방 로드쇼' 형태로 시사회를 몇 차례 더 가진 후 전국 개봉은 서울보다는 로케현장 가까운 지방도시에서 먼저 시작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 | 영화 <길> 시사회를 다녀와서 | | | | 영화란 것이 화면 앞에 앉아서 보지 않으면 감정을 공유하기 힘들고 언어만으로 전달해서는 자칫 지루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영화를 영상예술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번 어제의 감동을 짧은 글 몇 마디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던 시구 같은 두 줄의 대사와 한 편의 시가 문득 떠올라 행복했던 그 시간을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친구는 천연 염색 일을 한다. 어느 하늘 푸른 날, 그 하늘을 닮은 파란빛 천을 물들여 줄에 널고 있을 때 그걸 본 주인공이 했던 말….
"야 그 쪽빛 참 좋다. 마치 하늘 한 조각을 떼어온 것 같네."
아, 그렇다. 하늘빛의 다른 이름이 쪽빛이라는 것을 너무나 오랜만에 들었다. 그리고 그 눈물나게 푸르고 시린 하늘 한 조각을 손에 묻히며 가질 수 있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며 알게 됐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객지를 떠돌던 주인공은 이십여 년만에 고향을 다시 찾아 옛날에 자주 다니던 단골 이발소를 찾는다. 벽에 기대어 졸던 주인이 부스스 깨어 창 밖을 바라보며 했던 말.
"아따, 인자 포도시 봄이 올랑갑네."
그렇다. 봄은 언 땅이 비에 녹듯 알게 모르게, 점점이 번지는 꽃봉오리처럼 어느새, 그리고 때로는 묻었던 기침이 도지듯 발작처럼 오기도 하지만 이렇듯 간신히, 포도시 오기도 하는 것이다. 계절의 흐름이라는 자연의 섭리가 그 전의 계절을 힘들게 겪은 이들에게는 더디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뒤늦게야 주인공을 알아본 이발소의 주인은 헤어스타일을 "거시기"하게 해달라는 주인공의 말에 그것이 예전에 그들 사이에 무언의 약속이었던 "로바뜨 떼일러" 스타일임을 재깍 알아채고 의기양양 솜씨를 발휘한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떠오른 시 한 편이 있어 소개한다.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빛이 살고 있고 말라 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 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 문태준 시인의 <역전 이발> 전문 / 글쓴이 : 정주희(주부·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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