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41

칠성님들의 구름차 2

등록 2004.06.15 05:58수정 2004.06.1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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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에서 만난 서낭신님의 말대로 아파트 단지를 넘어서니 정말 숲이 나왔습니다.

아파트가 높은 나무처럼 들어서 있는 동네 너머로 바로 숲이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기도 하지요.


바리가 보기에 아파트 높이를 훌쩍 넘어서는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듯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바리는 백호와 함께 그 숲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파트 단지 뒤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높다란 아파트 단지의 건물들이 전부 숲 속에 들어와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도 나무들 사이에서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들이 큰 나무들 아래에서 수도물을 틀어놓고 세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에는 그 나무가 보이지 않을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높게 자란 나무들인데도, 그 아래로는 그림자가 전혀 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림자와 함께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 뒤로 나무들은 그냥 춤추듯 출렁이기만 할뿐 나무잎사귀 하나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그 숲을 따라 좀더 안으로 들어가보니 아파트 단지는 사라지고 어딘가에서 많이 보던 오두막집이 나왔습니다. 분명 터주신이 사는 곳이 분명했습니다.

바리가 만난 가신 중 어느 누구도 으리으리한 고래등 같은 집에 살고 계신 분은 없었습니다. 전부 저런 작은 오두막에서 시골사람들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들어가보면 다 어마어마하게 넓고 아름다운 방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요….


하지만, 터주신이 살고 있다는 곳은, 다른 가신들의 집과는 달리 뜰이 아주 넓었습니다. 사리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선 바리의 발밑으로는 온통 누런 황토였습니다.

황토로 만든 초가집 주변으로 장독대가 몇 개 놓여있었습니다. 터주신의 집에 장독대가 있다니… 된장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인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당에 들어온 백호는 그 황토 위에 뒷다리를 모으고 앉아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날 제 빈 그릇
들어올 제 찬 그릇 수레 대어 실어 들어
먹고 남게 도와주고 쓰고 남게 도와주소서.

백호가 은행나무 문을 열때 외우던 그런 비슷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황토 바닥이 울렁울렁 거렸습니다.

우리 황토 터주 대감
모든 염려 모든 걱정 모두 모두 모아 담아

그렇게 울렁 울렁 거리던 황토는 백호가 노래하는 소리에 맞추어 점점 크게 솟아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옆으로는 팔이 솟고 아래로는 다리가 뻗었습니다.

우리 소원 그 그릇에 담아 이 황토에 뿌립니다.
밤이 되면 불이 밝고 낮이면은 물이 맑고
온세상 환한 세상 갖추어 맑게 해주옵소서

주문 외우기를 마친 백호는,그렇게 팔 다리를 달고 나온 그 황토 덩어리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황토인간은 다리를 들어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오더니, 두 팔과 두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백호에게로 다가왔습니다.

바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가신들이 많기도 하지만, 나타나는 모습도 정말 가지각색입니다.

그 흙에서 나온 사람을 놀라서 쳐다보느라 백호처럼 그 분께 인사를 드릴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흙사람은 백호 앞에 이르자 몸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헛기침을 한번 헛 하고 바리에게 말했습니다.

“이녀석아, 네 녀석 말은 많이 들었다만, 이렇게 인사성이 없는 녀석인 줄은 몰랐네. 여기 오기 전에 다른 분들을 못 만났느냐? 왜 이리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하느냐, 이녀석아”

그 말은 들은 바리는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때까지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백호가 가만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래, 백호야, 말은 많이 들었다. 오래 기다렸는데, 요즘엔 칠성신들도 잘 안오고 그래서 참 많이 심심해 하고 있던 차였거든.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렸니?”

백호는 고개를 숙여 다시 인사를 드리고는 말했습니다.

“중간에 일이 많았습니다. 이것저것 말씀드리자면 하루로는 모자르겠군요.”

그리고는 바리를 앞으로 세우고는 말했습니다.

“이 분이 터주신이셔, 인사 드려라.”

바리가 터주신님 앞에서 말했습니다.

“이것 저것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천문신장님 댁에도 갔었고, 삼신할머니 버드나무 가지도 찾으러 나쁜 호랑이들이랑도 만나야했고, 서천꽃밭 가서 화완포도 얻어와야했고…”

가까이서 본 터주신님을 몸에 흙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는듯 했습니다. 머리에는 뿔이 달린 것 같은 감투를 쓰고 있었습니다.

온통 흙색깔이었지만, 어느 총알도 뚫지 못할 만한 단단한 갑옷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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