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체 '고무줄 건축비' 책정으로 1.4조 폭리

경실련, 서울 동시분양 아파트 건축비 부풀리기 실태 고발

등록 2004.06.15 17:08수정 2004.06.16 14:45
0
원고료로 응원
경실련은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지역 동시분양 아파트의 건축비가 부풀려져 건설 업체들이 1조4000억원의 차액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지역 동시분양 아파트의 건축비가 부풀려져 건설 업체들이 1조4000억원의 차액을 챙겼다고 주장했다.오마이뉴스 이승훈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대한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서울에서 분양된 민간아파트의 건축비가 평당 200여만원 부풀려져 아파트 건설업체들이 1조4000억원의 폭리를 취해왔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아파트 값 거품빼기 운동을 전개해온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은 15일 서울 동숭동 경실련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업체들의 건축비 부풀리기 실태를 고발했다.

경실련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2004년 2월까지 14차례에 걸친 서울지역 동시분양 아파트의 경우 감리자모집공고 단계에서 신고된 평균 건축비는 평당 426만원이었지만 입주자모집공고(분양공고) 단계의 평균 건축비는 평당 622만원으로 평당 196만원이 껑충 뛰어 올랐다.

이로 인해 가구당 6500만원씩 건축비가 추가됐으며 총 분양면적이 71만평임을 감안하면 사업자들은 총 1조4000억원의 차액을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입주자 모집할 때는 196만원 더 비싸게 건축비 책정

경실련이 자체적으로 산출한 건축비와 비교하면 부풀려진 건축비 규모는 더 늘어난다. 경실련이 사업자가 감리자선정시 해당 지자체에 신고한 감리대상 공사비를 근거로 추정한 건축비는 평당 357만원으로 분양 공고시의 사업주체가 공고한 건축비와는 평당 265만원, 가구당 8700만원, 총건축비는 1조9000억원의 차이가 났다.

또 입주자모집 단계 평당 건축비 622만원은 건교부가 정한 표준건축비 최고액인 평당 310만원과 서울, 대전, 전주, 부산의 도시개발공사가 공개한 평당 건축비 310만원에 비해서도 2배 이상 높은 액수이다. 건교부의 표준건축비와 비교할 경우 건축비 차액은 가구당 1억300만원, 총 건축비는 2조2000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경실련의 이번 건축비 조사는 서울시가 2003년 1차부터 2004년 2차까지 동시분양한 아파트 159개 사업 중 확인 가능한 113개 사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전체 공급 세대수는 2만1500여 세대, 총 분양면적은 약 71만평으로 사업자는 재건축조합이 89개, 민간이 24개이다.

사업자들은 아파트 건축을 하려면 우선 해당 구청에 사업계획을 승인받고 감리자 지정신청을 해야 한다. 그러면 지자체는 사업계획 승인 여부를 결정하고 감리자 모집공고를 하게 된다. 이후 사업자들은 서울시의 분양가자율조정 권고를 거쳐 입주자모집 공고 승인을 받아 입주자를 모집하게 된다.


사업승인 단계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건축비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업자들이 스스로 밝힌 건축비조차도 각 단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아파트 재건축 조합의 경우 강남구청이 낸 감리자 모집 공고에 명시된 평당 건축비는 약 371만원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의 모집공고 승인을 받은 후 낸 입주자모집 공고문에 나타난 평당 건축비는 약 620만원으로 249만원이나 늘어났다.

감리자 모집공고와 입주자 모집공고는 대부분 같은 해에 이루어지고 시차는 짧게는 1개월, 길어야 6개월 이내이다. 그런데 사업자들은 이 짧은 기간 동안 평당 건축비가 249만원이나 올랐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건설업자들의 '고무줄 건축비' 책정 사례는 이번만이 아니다. 부동산 전문 웹사이트 '부동산뱅크'가 지난 3월 지난해 서울 1~12차 동시분양 아파트의 건축비와 토지비를 비교한 결과 강북 일부 대형 아파트의 건축비가 강남의 같은 평형보다 오히려 높게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지역 같은 시기에 분양된 경우에도 건축비가 200여만원이 넘게 차이가 나는 등 업체들이 분양가를 주변시세에 맞춰 올리기 위해 건축비를 임의로 부풀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경실련은 업체들의 건축비 부풀리기와 허위신고 실태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경실련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업자들이 감리자모집단계와 분양공고단계의 건축비를 서로 다르게 각각 신고했음에도 정부와 해당 지자체는 형식적인 검토와 승인으로 일관해 문제를 방치해 왔다"며 "정부는 감사원, 공정위, 국세청 등을 통해 건축비 허위신고 실태와 업체들의 분양가 담합, 탈세혐의 등에 대해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실련은 15일 기자회견후 청와대 앞에서 분양원가 공개, 개발이익환수, 후분양제 즉각 도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경실련은 15일 기자회견후 청와대 앞에서 분양원가 공개, 개발이익환수, 후분양제 즉각 도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오마이뉴스 이승훈
"감사원, 공정위, 국세청은 철저한 조사 실시해야"

경실련은 또 사업체들의 건축비 부풀리기는 정부의 잘못된 공급자 중심의 주택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서울지역 동시분양 아파트 건축비 허위신고 사례에서 나타났듯이 정부는 공급자에게 각종 특혜(선분양제, 분양가 자율결정권, 감리 약화, 형식적인 인허가 절차)를 베풀어 소비자의 권리는 완전히 무시됐고 분양가는 폭등해 왔다"며 "정부는 국민 80%가 찬성하는 공공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소비자를 위한 후분양제, 개발이익환수제도 등 분양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핵심대책을 제대로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은 "이번 사례는 철처히 공급자 중심의 주택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어떠한 피해를 입고 있는지 드러내주는 사례"라며 "정부가 진정으로 시장원리에 따른 정책을 원한다면 전면적인 후분양제를 즉각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건교부와 서울시는 분양가가 자율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업체들의 분양가를 관리감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건교부 관계자는 "법적으로 분양가 책정은 자율적으로 하게 돼 있어 분양원가 허위 공개를 제재토록 돼 있는 것 아니다"라며 "서울시가 (분양가 신고에 대해) 행정지도를 하라는 것은 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울시 "허위 신고라고 해도 방법이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감리자모집공고에 명시된 건축비는 주택법상 조경공사, 부대시설 공사, 위생 공사 등 13개 공사비용이 제외된 순수한 건축비만 포함된다"며 "또 감리와 착공 사에 설계변경 등의 비용이 추가될 수 있기 때문에 감리자모집공고 단계와 입주자모집공고 단계의 건축비가 차이가 날 수 있다"며 허위신고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설사 업체들이 건축비를 부풀렸다 해도 서울시는 국세청에 분양가 내역을 통보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서울시의 이같은 해명에도 건설업체들이 그동안 밝혀온 건축비는 건교부의 표준건축비와 2배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는 점, 또 아파트 건물을 짓는 데 들어가는 평당 건축비가 310만원인데 부수공사에 불과한 조경, 위생, 부대시설 공사 등에 평당 200~300여만원이 들어간다는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건축비 부풀리기 의혹은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경실련은 이날 기자회견 후 청와대 앞으로 이동해 분양원가 공개, 후분양제 전면 도입, 개발이익 환수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경실련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분양원가 공개를 비롯한 주택정책에 전반에 대한 공개토론을 제안하고 향후 분양원가 공개를 위한 입법청원운동과 시민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3. 3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4. 4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5. 5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