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북구 중흥동 광주역 앞에 위치한 한국시멘트 본사 사옥.오마이뉴스 자료
검찰수사 결과 이씨는 S건설 사장 이모(54)씨로부터 공사수주 대가로 31억4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하는 한편, 회사 양도성 예금증서를 담보로 은행권으로부터 47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자금으로 밝혀진 금액만 80억원대에 달했다.
이씨의 수법은 치밀했다. 회사의 양도성 예금(CD)을 이용한 것이다. CD가 무기명인데다 바로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계장부상으로만 놓고 보면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씨는 우선 회사의 현금으로 CD를 구입한 후, 다시 이 CD를 담보로 은행대출을 이용했다. 친인척과 측근 등 제3자 명의를 통한 대출금은 총 47억원에 달했다.
이씨는 시설공사 발주과정에도 눈을 돌렸다. 포항공장 증설공사였다. 당시 회사가 내부 분석한 증설비용은 약 300억원. 그러나 2003년까지 S건설은 이들 공사를 460억원대에 수의로 계약했다. S건설에 공사비를 부풀려주는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것. 이 공사를 수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S건설은 년 매출액이 5억원 정도에 불과한 중소 영세회사였다.
이 외에도 검찰수사에서 이씨가 김모(49) 전 노조위원장에게 5000만원, 한국시멘트 법정관리인 정모(66) 변호사에게는 7000만원의 뇌물을 제공한 것도 추가로 확인됐다. 채권은행에 대한 압력성 시위동원 명목과 각종 비리를 무마하는 조건이었다.
주식 매집...경영권 장악
이씨는 곧바로 이 불법자금을 이용해 회사 주식에 눈독을 들였다. 애초 경영권 탈취가 목적이었던 것. 1900억원이 넘는 채무가 일시에 탕감된 마당에 주식이 뛸 것은 정해진 이치였다.
그러면 애초 3148주에 불과했던 이씨는 어떻게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우선 대규모의 감자조치가 단행됐다. 당시만 해도 대주주는 57%의 지분을 갖고 있었던 우리사주 조합. 43%는 학교법인 조선대학교였다. 이 지분을 1/4로 낮춘 것이다. 70만주 주식이 일순간에 17만5000주로 줄어들게 된 것. 액면가로는 9억원에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동시에 법정관리 종결과정에 80억원의 유상증자가 이뤄졌다. 경영권을 누가 쥐는가는 이 80억원의 출자금을 누가 대는가에 달려있었다. 결과적으로 이씨는 이 80억원의 유상증자 중, 줄잡아 50억원의 주식을 혼자서 독차지했다.
법정관리 상태의 한 기업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씨의 지분장악은 또 어떻게 이뤄졌을까.
이 베일을 풀기 위해서는 법정관리 종결 직전 이 회사와 용역을 맺은 'ㅇ'이라는 한 기업 구조조정전문회사(CRC)와, 이 회사의 법정관리인이었던 정모(66) 변호사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전문회사·법정관리인은 어떤 역할이었나
당시 유상 증자키로 한 총액은 80억원. 160만주의 주식을 새로 발행하는 것이다. 80억원 중 50억원은 구조조정조합을 설립 투자하고, 30억원은 CRC 'ㅇ'이 직접 출자한다는 것이었다. 구조조정조합을 통해 출자키로 한 50억원 중 20억원은 종업원이, 30억원은 CRC 'ㅇ'이 출자하는 형식이었다.
▲한국시멘트 한 종업원이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엄격한 법 집행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오마이뉴스 자료
그러나 CRC 'ㅇ'과 전 대표 이씨, 전 법정관리인인 정씨 사이에는 이미 각각 이면계약이 있었다. 이면계약은 법정관리를 종결하기 위해 관할 법원에 회사 정리계획안을 제출하기 2개월여 전인 2002년 1월 초에 이뤄졌다.
경영권을 장악하게 된 비결은 이 이면계약에 있었다. CRC 'ㅇ'를 전면에 내세워 명의만 빌린다는 것. 애초 구조조정조합을 통해 'ㅇ'이 직접 출자키로 한 30억원의 돈을 금전소비대차 방식으로 이씨가 대여키로 한 것이다. 30억원은 실제 이씨의 돈이라는 얘기다. 이면계약은 이것이었다.
이면계약은 법정관리 종결 후 주식의 처리 문제까지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씨가 주식을 재 매입한다는 조건이 그것. 매입가격은 매 3개월을 기준으로 10%의 이자를 가산키로 했다.
법정관리가 끝나자 마자 이 CRC는 곧바로 이 주식을 이씨에게 넘겼다. 매각대금은 10%의 가산금리를 붙인 33억원. 지분확보를 위해 구조조정전문회사를 동원한 것이다.
이면계약은 이 외에 하나가 더 있었다. 경영권이 혼미한 틈을 타고 이번에는 법정관리인인 변호사 정씨까지 가세했다. 법정관리 기업의 관리인이란 국가기관인 법원을 대리한 위치. 이씨와 정씨 모두 '산업발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특수관계인의 신분이었다. 경영상 영향력을 가진 임원에게는 매각을 금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이면계약은 이씨가 20억원, 법정관리인 정씨가 10억원을 한미은행에 예치하는 대신, CRC 'ㅇ'는 이를 다시 차입해 자신의 명의로 투자한다는 것. CRC 'ㅇ'가 자신의 고유자금이라고 주장해 온 30억원 역시 경영권 탈취를 노린 이씨와, 이 틈을 타고 투자 수익을 노린 법정관리인의 돈인 셈이다.
혈세 1900억대 투입 기업의 경영권 넘기고 186억 챙겨
이렇게 해서 이씨가 CRC 'ㅇ'를 통해 확보한 주식만 총 82만여주. 본인 돈으로 출자해 배당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주식을 제외한다고 해도 69만여(37%) 주식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3148주로 고용사장에 불과했던 이씨가 일 순간에 대주주의 위치를 확보한 것이다. 측근 명의로 분산 된 것까지 합치면 이미 60%가 넘는 지분이었다.
이씨는 구속 상태였던 지난 2월 이 주식을 남화산업(대표 최재훈)과 대호전기(대표 이기상)의 컨소시엄에 일괄 매각했다. 1900억원대의 혈세가 투입된 기업의 경영권까지 넘긴 셈이다. 매각대금만 186억여원. 거래 평균가는 2만 2500원이었다.
지난 2일 광주고법 특별부(재판장 박행용 부장판사)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받고 항소한 이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구속된 기간은 불과 6개월 남짓. 법의 심판을 받은 이씨는 180억원이 넘는 돈을 챙기고도 이제 일상의 시민으로 돌아와 있다.
국민의 혈세 1900억원대가 고스란히 한 개인의 치부로 귀결돼 버린 사건. 종업원들이 뒤늦게 경영권 환수 투쟁에 나선 한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고정미
▲고정미
| | | "눈 먼 돈 쉽게 먹어도 된다는 사례 될 것" | | | 비리 연루자 무더기 석방 '논란' | | | |
| | ▲ 광주고법 청사 | ⓒ이국언 기자 | 한국시멘트 비리 관련자에 대해 법원이 무더기 석방 판결을 내린데 대해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한 것"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광주고법 특별부(재판장 박행용 부장판사)는 지난 2일 업무상 배임 및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한국시멘트 전 사장 이 모(50)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또 7000만원 뇌물 수수혐의로 기소된 전 한국시멘트 법정관리인 정모(66)변호사에 대해서는 벌금 2000만원을, 이 전 사장에게 뇌물을 건네고 비자금 조성을 도운 S건설 사장 이모(55)씨, 회사 자금을 횡령한 이 회사 전 영업팀장 양모(46)씨에 대해서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씩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고 별다른 전과가 없으며, 법정관리를 종결시킴과 동시에 연평균 168억원의 영업이익을 얻도록 한 점을 인정, 이 같이 판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법정관리중인 회사 대표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 돈을 이용한 것도 모자라 경영권까지 탈취한 사건치고는, 너무 관대한 법 집행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또 국가기관을 대리해 엄격한 감시에 나서야 할 법정대리인이 오히려 비리에 가담, 시세차익만 30억원 이상을 남기게 된 것도 경제 정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앞서 이들은 1심에서 이 전 사장은 징역 3년, S건설 사장 이씨와 전 영업팀장 양씨는 징역 1년 6월, 정 변호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경영권 환수 투쟁에 나선 한국시멘트 비상대책위원회는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30억원의 뇌물과 47억원의 회사 돈을 빼돌리고도, 단지 6개월을 살고 시세차익만 140억원을 챙기게 됐다"며 "이번 판결은 눈 먼 돈은 쉽게 먹어도 된다는 사례를 열어 준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 이국언 기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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