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명이 있으면 수백만 개의 성(性)이 있다"

[인터뷰]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프로그래머 '수수'

등록 2004.06.18 00:37수정 2004.06.1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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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을 슬로건으로 내건 <제5회 퀴어문화축제-무지개2004>의 포스터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을 슬로건으로 내건 <제5회 퀴어문화축제-무지개2004>의 포스터퀴어문화축제조직위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제5회 퀴어문화축제-무지개 2004>가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Liberty & Equality For All)’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6월 17일 막을 올렸다. 홍대 앞에 위치한 ‘잔다리 전시관’에서 시작된 이 축제는 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퍼레이드와 댄스파티, 토론회, 영화제로 29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특히 눈 여겨볼만한 행사로는 19일 오후 5시부터 종묘시민공원에서 남인사 문화마당까지 행진하는 도로 퍼레이드와 25일 저녁 7시 30분부터 '한국에서 동성 결혼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에서 열리는 토론회가 있다.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성적소수자를 포함한 모두가 사회구성원으로서 서로 화합하고 이해하자는 취지에서 이번 축제는 마련되었다.

이번 축제의 시작을 알린 전시회 'Body. q'는 동성애자와 성적소수자의 외침을 담고 있다. 이 제목은 ‘바디 퀴어’(Body. queer) 즉, '퀴어의 몸'이라는 뜻이다. 동성애자와 성적소수자를 지칭하는 퀴어의 몸은 필연적으로 사회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성별이데올로기와 자아를 찾고자 하는 한 개인의 성정체성이 격돌하는 지점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퀴어들에게 몸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프로그래머 수수(가명·여)씨를 만나 이번 전시회의 의미와 한국사회에서 퀴어에 대한 인식 수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수수씨는 아직 소수자를 껴안을 만한 포용력이 한국사회에 부재 한다고 꼬집으면서 이번 축제를 통해 많은 퀴어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 이번 전시회를 하게 된 목적은 무엇인가
"한국을 관광하는 외국인을 위해 만들어진 책자를 본 적이 있다. 그 책자에 외국 동성애자를 위한 부분이 있었는데, 거기 '한국에는 동성애자가 없다'라고 쓰여 있었다.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동성애자나 성적소수자에 대한 찬반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 우리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성애 중심의 강고한 사회'속에서 이번 전시회는 '동성애자나 성적소수자도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다'는 일종의 표현이다. 또한 ‘동성애자가 여기 있다, 여기 동성애자의 문화가 있다’는 자긍심의 표현이다. 많은 사람이 와서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동성애자도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데에 어떤 어려움이 있나
"동성애자라고 하면 하늘에서 저주를 받아서 그렇게 된 거라고 흔히 생각한다(웃음). 사회가 암암리에 한 개인을 위축시키고,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심지어 동성애자라고 해서 경찰서에 신고를 당한 적도 있었다.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또한 동성애자는 동성 결혼이나 폭력 등의 사안에서 법의 테두리 밖에 있다. 이러한 상황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


- 그렇다면 사회가 왜 그렇게 차별을 한다고 생각하나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차이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생물학적인 차이가 있지만 같은 사람이듯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도 마찬가지다. 흔히 에이즈의 주범이 동성애자라고 하지만 에이즈에 걸린 사람의 80%는 이성애자다. 이중적인 성윤리의식을 암암리에 강요하고 남성에게만 성적 자유가 주어지는 가부장적 사회가 동성애자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아마도 사람들은 동성애자라고 하면 하리수나 홍석천을 떠올릴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하리수는 동성애자는 아니고 트랜스젠더다. 하리수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희석 시키는데 분명히 일조했다고 본다. 게이인 홍석천도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상징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성이 다양한 동성애자들에 대해 획일적인 이해를 강요하는 부분도 있다.

하리수와 홍석천을 샘플로 뽑아서 성적소수자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모든 트렌스젠더가 다 하리수처럼 예쁜 건 아니다(웃음). 예쁘면 용서가 되지만 남성 같은 트랜스젠더는 아마도 용서가 안 될 거다”

- 일반적으로 동성애자가 커밍 아웃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예전에 송지나의 취재파일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 동성애자가 커밍 아웃을 했다. 일단 가족들이랑 연을 끊어야 한다(웃음). 그리고 회사도 그만 두어야 하고, 동네에서도 쫓겨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이라고 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 2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백만 명이 있으면 수백만 개의 성이 있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다름을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축제에 참여해서 고민도 해보고 함께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작품과 소수자의 인권을 가슴으로 느껴주세요"
나나 퀴어스타의 <당신은 여기 있습니까?>

전시회장에서 단연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나나 퀴어스타(가명. 여)의 <당신은 여기 있습니까?>였다. 동성애자 4명의 손을 직접 석고를 떠서 만든 70여 개의 손은 무지개 깃발을 잡으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형상이었다. 그 손들은 간절한 몸부림과 절규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나나 퀴어스타씨는 이 작품의 핵심은 “작게는 동성애자를 상징하고, 크게는 모든 소수자의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잡기위한 몸짓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동적인 손 주변에 깔린 소금은 몰이해와 편견을 이해와 화합으로 정화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마치 지하에서 뻗어나온 손들이 깃발을 잡으려는 몸짓에는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에 대한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작품을 설명하면서 나나 퀴어스타 씨는 “작품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가슴으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은 ‘머리와 논리로 소수자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달라’는 그녀의 바람을 담고 있었다. / 김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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