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보장법률안, 건교부·장애계 이견

17일 공청회 입장차 확인...장애계 ‘보편적 권리’ 강조

등록 2004.06.18 11:54수정 2004.06.1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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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장애인과 관련한 각종 법안들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5월 장애계의 숙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안 초안이 범장애계의 장애인 당사자 조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에 의해 발표되었고, 같은 달 보건복지부도 독자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을 마련하고 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다.

a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장애인 이동보장법률 공청회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장애인 이동보장법률 공청회 ⓒ 이철용

이러한 장애인차별금지법과 함께 장애계에서 시급하게 요구하는 법안이 이동권과 관련한 이른바 이동보장법률이다. 이동보장법률에 대한 요구는 지난 2002년 10월부터 장애인들의 이동권에 대한 거센 요구와 함께 시작되었다.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공동대표 박경석·아래 이동권연대)를 중심으로 한 이동보장법률 제정 요구에 대해 2002년 말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정치권도 동의를 한 바 있고 지난 대통령 선거와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동보장법률 제정을 약속한 바 있다.

장애계·건설교통부, 독자적 이동보장법률안 발표

a 민주노동당 현애자 국회의원

민주노동당 현애자 국회의원 ⓒ 이철용

이러한 노력에 의해 장애계에서는 지난해 10월 이동보장법률 입법추진 공대위(아래 이동보장법률공대위)를 결성하고 ‘장애인등이동권보장법률제정에관한청원’을 국회에 접수시켰다.

같은 달 건설교통부는 검토 의견 회신에서 장애계의 안은 전반적으로 예산이 수반되는 의무조항이 과도하게 많아 국가 및 지자체의 재정운용에 경직성 초래 및 민간운송업자의 부담증가 우려, 관계기관협의 및 입법예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히고, 2004년 정부의 독자적인 장애인의 이동편의를 위한 법률을 입법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러한 정부의 발표는 지난 4월 19일 건설교통부의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안)’ 제정공청회 자리에서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안에 대해 장애계는 '기만적인 건설교통부의 법안을 규탄한다'는 성명과 함께 반대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이동보장법률과 관련한 정부와 장애계의 첨예한 대립이 있는 가운데 6월 17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장애인 이동보장법률 입법을 위한 공청회’가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 입법추진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이날 공청회는 장애계는 물론이고 정부측에서 건설교통부의 육상교통기획과장이 직접 참석했다. 공청회에서는 그간 이동보장법률과 관련한 경과보고에 이어 장애계와 건설교통부의 이동보장법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었다.


장애계 “이동권은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전제에서 법안 마련돼야”

a 이동보장법률입법추진공대위 배융호 공동대표

이동보장법률입법추진공대위 배융호 공동대표 ⓒ 이철용

민주노동당 인권위원회 이민종 변호사의 사회로 진행된 공청회는 이동권연대 박현 사무국장의 이동보장법률 입법 추진 경과 보고에 이어 민주노동당 현애자 국회의원의 이동보장법률 대표발의에 관한 입장 발표가 있었다.

현 의원은 “장애인들은 오랜 생활 갇혀 살고 있다. 법을 위반한 것도 아닌데 갇혀서 생활하고 있다”고 전제한 후 “법과 제도가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동보장법률은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제정되어야 한다. 2004년이 이동권의 원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현 의원에 이어 본격적인 공청회가 시작되었다. 첫 순서는 이동보장법률공대위 배융호 공동대표의 ‘장애인 · 노인 · 임산부등의교통수단이용및이동보장에관한법률(안)’에 대한 발표.

배 공동대표는 건설교통부의 이동보장법률에 대해 장애인 등 이동약자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 동등한 질의 이동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법적 근거가 반드시 필요한데, 저상버스와 장애인콜택시의 도입에 있어서 법적인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고 최근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2013년까지 향후 10년간 우리나라 전체 시내버스의 10%인 1600여대의 저상버스 도입도 법적인 의무가 아니라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장애계의 이동보장법률은 이동권을 국민의 기본권임을 밝히고 있어 건설교통부 안과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교통수단에 있어서도 장애계는 모든 교통수단을 포함하고 있지만 건설교통부의 안에는 택시 부분이 누락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 부분에 있어서 개인사업자들에 의해 운행되는 한계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이 택시를 이용할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또한 배 공동대표는 장애인 등의 이동 보장을 위한 정책에 있어서도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산하의 장애인이동정책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하고 있어 건설교통부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권한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는 실질적인 예산 확보 등에서 실현가능성과 직결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장애계는 강력한 벌칙, 차별에 대한 국민시정요구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 강력한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설교통부, “교통약자의 사회참여와 교통복지 증진에 주력”

a 건설교통부 육상교통기획과 김한영 과장

건설교통부 육상교통기획과 김한영 과장 ⓒ 이철용

정부측 안인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안)’에 대하여 건설교통부 육상교통기획과 김한영 과장은 법안 제정 이유에 대해 교통약자들에게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편의시설 등 보행환경을 개선함으로 사회참여와 교통복지 증진을 위해 마련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건설교통부의 이동보장법률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교통약자의 정의에서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뿐만 아니라 교통수단 및 여객시설의 이용과 보행에 불편을 느끼는 어린이, 영유아를 동반한 자 또는 외국인도 포함했다고 밝혔다.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의 이동편의시설 설치기준을 마련하고,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통약자가 편리하게 승하차할 수 있는 저상버스의 도입을 촉진하기 위하여 버스운송사업자가 차량을 교체할 경우에 차량구입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시도지사 및 시장 군수는 대중교통수단에 접근이 어려운 장애인 또는 고령자를 위하여 특별교통수단을 도입 운행하도록 하고, 특별·광역시장, 시장 또는 군수는 보행환경개선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보행시설물의 정비, 도로 점용물의 이설 및 불법시설물의 정비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건설교통부 안이 시혜가 아닌 의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정책의 실효성 면에서도 기존의 보건복지부 주관에서 건설교통부가 책임을 지고 진행을 하고 있으며 설치기준 강화, 의무화, 구체화, 보행환경의 개선 등 다각도의 노력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토론자들 "이동권은 ‘보편적 권리’이지 ‘보호와 배려’ 아니다"

장애계와 건설교통부의 이동보장법률에 대한 발표가 있은 후 지정토론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민주노동당 사회복지 정책연구원인 좌혜경씨는 양측의 법안의 가장 큰 차이에 대해 장애계의 안은 ‘보편적 권리’ 문제로 접근을 하고 건설교통부의 안은 ‘보호와 배려’의 문제로 접근하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건설교통부의 안은 장애인 당사자의 실질적인 참여가 배제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밝혔다. 저상버스의 도입에 있어서도 강제조항과 권고조항으로 큰 차이를 지적했고 결국 이런 차이로 인해 건설교통부의 안은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장애여성공감의 박영희 대표는 이동보장법률이 과연 누구를 위한 법안인가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건교부가 실효성이 없는 법안을 독자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애계의 법안을 받아들여 17대 국회에서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손복목 사무총장은 이동보장법률에서는 무엇보다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정책수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전제하고 편의증진법과 같은 기존의 법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만드는 법안이, 같은 현실성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교통약자와 장애인뿐만 아니라 ‘함께 동반하는 사람’에 대한 언급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립 속에서 이뤄진 공청회, 나름대로 의미

a 정부측과 장애계가 함께한 이동보장법률 공청회

정부측과 장애계가 함께한 이동보장법률 공청회 ⓒ 이철용

장애계와 정부측의 법안에 대한 대립 속에서 마련된 이번 공청회는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두 법안을 한 자리에서 함께 발표하며 문제점을 지적하는 나름대로의 성숙된 모습이다.

그러나 이번 공청회가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청회라는 이름답게 문제점에 대한 지적에 귀를 기울이고 확정안에서는 모두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법안이 제정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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