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부부 동업 시대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8)

등록 2004.06.18 16:46수정 2004.06.1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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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주 에이스 싱크 가구점 김윤오(51), 조경식(45) 부부

원주 에이스 싱크 가구점 김윤오(51), 조경식(45) 부부 ⓒ 박도

나는 늘 널찍한 서재를 갖는 게 소원이었다. 그런데 30여년을 14.5평 단독주택에서 살았으니 어찌 그 소원을 이룰 수 있겠는가? 좁은 내 방이나 안방에서 밥상에 원고지를 펴 놓고 쓰다가 수면 방해한다고 아내와 무척 다투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쓴 작품의 산실은 학교 주로 숙직실이나 교무실 내 자리였다. 학교에서도 조용한 시간을 가지려면 다른 이들이 모두 퇴근한 깊은 밤 시간이나 일요일 또는 방학 기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재직 중에 다른 선생님들의 일직, 숙직도 숱하게 대신 해 주었다.

학교를 퇴직하고 안흥으로 내려온 후 마침내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아래채에다 서재를 꾸민 것이다. 이 방은 원래는 소 외양간이었다는데, 전 주인이 화실로 꾸며 썼던 곳이다. 아내가 거기다가 손수 도배도 하고 새로 유리 창문도 내었다.

그 정도라도 감지덕지인데, 아내와 아들은 그동안 궁색하게 지낸 내 처지를 보상이라도 해 주려는 듯, 최신 노트북에다가 컴퓨터용 책걸상까지 최고급으로 맞춰 주었다. 책장은 널빤지와 각목을 사다가 내가 직접 설치하려고 했더니, 어느 날 내가 서울 나들이 간 새 아내가 원주의 한 가구점에 맞춰 버렸다.

a 함창 허씨 비단집 허호(46), 민숙희(43) 부부

함창 허씨 비단집 허호(46), 민숙희(43) 부부 ⓒ 박도

약속한 날 가구점 주인이 아내와 함께 트럭을 타고 와서 책장을 내린 후, 서재에다가 넣고는 아주 익숙한 솜씨로 들여 놓았다. 나는 가구점 주인 아내의 재빠른 손놀림에 감탄했다. 남편이 드릴로 책장에 구멍을 뚫자 거기다가 나사못을 박는 솜씨가 여간 야물지 않았다. 팔뚝도 예사 가정주부와는 달리 굵고 억세게 보였다.

가구점 주인 말이 "늘 같이 다니면서 아내가 보조 일을 해 준다"고 했다. 우선 한 사람의 인건비도 줄이고, 이런 힘든 일을 배우려는 젊은이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부는 20여분만에 일을 끝났다. 나는 셈도 해 줄 겸 그들 부부를 탁자에 앉게 하여 차 대접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가구점 부부는 다섯 공주를 두었는데 요즘 한창 교육비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오래도록 부부가 같이 일을 하니까 이제는 서로 눈빛만 봐도 상대가 뭘 원하는지 안다면서 좋은 점이 더 많다고 했다. 내가 설사 두 사람은 눈속임질을 해도 ‘그 주머니 돈’이 아니냐고 했더니, 말인즉 옳다고 함께 웃었다.

요즘은 부부가 같은 일은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취재 여행을 다니다 보면 대부분 부부가 같이 일을 하고 있다. 몇 해 전 거문도에 갔더니 고기잡이배도 부부가 함께 타면서 그물을 함께 걷었다. 농사꾼도, 비단장사도, 심지어 도공도 부부가 같이 일을 했다. 지난날은 ‘부부유별’이라 하여, 돈 버는 바깥일은 대체로 지아비가 하고 지어미들은 가사 일에만 전념했는데, 이제 그런 고정관념이 깨어져 버렸다.


옆집 작은 노씨는 트럭에 배추를 싣고 서울 가락시장에 운반을 하는 일을 하는데 꼭 옆 자리는 부인을 태우고 다닌다. 노씨는 그러면 안전 운행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옆에서 부인이 말도 시키고 껌도 입에 넣어 주고, 길이 막힐 때는 얘기 벗도 돼 주기에 아주 좋다고 했다. 부인의 이야기는 남편 차를 타고 같이 다니면 힘은 들지만 안심이 된다고 했다. 음주 운전도 않게 되고 시간나면 딴 짓(고스톱 등등)도 예방하니까 좋다고 했다.

a 어모면 다남동 포도농원 이병일(55), 안점순(49) 부부

어모면 다남동 포도농원 이병일(55), 안점순(49) 부부 ⓒ 박도

여자들이 가사에서 해방되고 남자와 똑같이 경제 활동을 하는 게 남녀평등의 첫 걸음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서도 점차로 동업을 하고 있다. 부부가 함께 텃밭을 같이 가꾸고, 내가 도끼질한 땔감으로 아내는 군불을 지피며, 내가 취재 여행을 떠날 때면 아내의 차를 타고 같이 떠난다.

같이 취재한 것을 글로 쓸 때는 내가 미처 묻지 않았거나 빠트린 것을 아내에게 물으면 거의 다 기억하면서 가르쳐 준다. 글이 완성되면 감수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아내의 평은 늘 짜다. 아내의 혹평을 듣고 고쳐 쓴 글은 대체로 독자의 반응이 좋다.

프랑스의 한 황제가 시골길을 달리다가 방앗간에서 수건을 뒤집어쓴 부부가 일하는 것을 보고 마차를 세우게 한 후 그들 부부에게 다가가서 “그대의 먼지 묻은 수건이 내 왕관보다 더 낫소”라고 했다는 일화를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부부가 같은 일을 하는 가정이 많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와 가정이 더 건강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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