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부채 노릇을 해 준 액자안준철
누가 남겨두었을까?
제초기의 무자비한 칼날을
차마 대지 못하고
동그랗게 남겨놓은 자리에
아무 근심 없이 피어 있는
들꽃 한 송이
재어보니
키는 한 뼘 반,
아기 설사 색깔 나는
노란 색 이파리 넉 장
누구일까?
동그란 마음을 가진 그 사람
모르면 몰라도
노오란 설사똥을 자주 갈겨대는
갓난아기를 키우는 사람이지 싶다.
시를 끝까지 한달음에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언제나 도중에 끊었다가 주위를 환기시키고 다시 읽든지, 아니면 아예 읽기를 포기하고 마는 것이 그 동안의 관례였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마지막 연을 낭송할 무렵에는 아이들의 입에서 "와~"하는 탄성까지 들려왔습니다.
"선생님, 시 너무 좋아요."
"그래? 어디가 좋은데?"
"마지막 부분요."
"바로 그 대목 때문에 시가 된 거야. 어때, 시가 어렵지 않지?"
"예, 선생님. 시는 쉬우면서도 감동적이에요."
"쉬우면서도 감동적인 것이 아니라 쉬우니까 감동적인 거야."
바로 그때, 아쉽게도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선생님 저희들 갈게요."
"그래. 책 안 읽어도 좋으니까 자주 놀러와."
"아니에요. 앞으로는 책도 읽을 거예요."
"왜 책과 친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니?"
"예.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도서관을 나간 뒤에 저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장담하건대, 그 날 저를 감동먹인 다섯 명의 아이들은 빳빳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에 눈을 번쩍였으면 번쩍였지, 시 나부랭이나 읊어대는 선생에게 눈길을 줄 아이들이 결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이들을 바꾸어 놓은 것일까? 그리고 그 동안 나는 왜 아이들 앞에서 시 한 편을 제대로 낭송할 수 없었던 것일까? 나에게 무엇이 문제였을까?'
저는 다음 수업을 준비하면서 그 숙제를 열심히 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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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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