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전투를 치르다

전쟁 <아버지의 6·25 경험담>-그 날의 하늘 (3)

등록 2004.06.19 11:48수정 2004.06.1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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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버지로부터 들은 6·25전쟁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이 글에서는 아버지를 1인칭으로 정리했습니다...<필자 주>


1950년 7월 20일

처음으로 전투가 있었다. 조준 사격을 해 보려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15발 사격 훈련을 한 후로 처음 하는 사격이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총열이 붉게 달궈지도록 사격을 했다. 어떻게 하루가 지났는지 모르겠다. 귀가 아프다. 내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이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쾅"하는 소리와 철모를 잡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고개를 들 때 비로소 내가 살았음을 느낀다. 살고 죽는 일이 이 짧은 순간에 결정이 된다. 많은 전우들이 고개를 다시 들지 못했다. 영동이 고향이라던 나보다 나이가 네 살 많은 형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군번을 받은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란 말이 생각났다. 내 옆으로 쓰러지는 전우들의 품 속에서 꼬깃꼬깃 접어 놓은 건빵 봉지를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이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나마 대부분 그럴 겨를도 없었다. 계속 후퇴, 후퇴, 후퇴.

1950년 8월 15일


서로 알아갈 새도 없이 많은 전우가 죽었다. 주먹밥을 함께 먹던, 고향을 얘기하던 전우들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다. 너무 짧은 시간이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두렵다.

인민군은 주로 야간에 공격을 한다. 낮에는 호주 비행기가 편대(4대)로 날아다녀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보급로가 끊어졌는지 주먹밥이 오질 않는다. 날이 어두워 질수록 긴장감은 더해간다.


또 밤이 찾아왔다. 0시쯤, 나는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저 멀리서 소리가 들린다.

"인민군 만세!"
"인민군 만세!"
"인민을 위해 싸우는 인민군은 손 들고 나오는 인민을 해치지 않는다."

또 왔구나. 소리가 가까워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침묵 속에 점점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누구에게도 공격 명령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같이 근무를 서던 전우와 나는 어둠 속에서 눈빛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좌우에서 총성이 울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수류탄이다. 사격으로 인해 위치가 드러난 것이다. 더 기다렸어야 했을까? 팔과 다리 그리고 가슴과 옆구리가 뜨거워졌다. '이제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인민군 만세"라는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린다. 하지만 몸은 이미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몸을 굴렸다. 얼마나 굴렀을까, 나무에 걸쳐 더 이상 구를 수가 없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난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달리 어찌 할 수도 없었다. 온몸이 끈적거렸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인민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이를 악물었다.

이제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잠시의 안도, 신음 소리가 저절로 났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누군가 나를 부축한다(아버지를 구해 주신 그 분은 같이 고향을 떠나 온 옆 동네에 사는 친척 형님이셨다고 한다. 당시 그 분은 어깨에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아버지를 부축했다고 한다).

산 비탈을 내려와 계곡을 따라 부축하는 대로 끌려갔다. 목이 타 들어갔다. 물을 마시겠노라 말했지만 먹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대대 야전병원에 도착했다. 위생병들은 정신 없이 뛰어 다녔다.

이 곳은 병원이 아니었다. 퇴각 준비를 위해 부상병들을 추스리고 있었다. 인솔자와 위생병, 그리고 부상병들. 제대로 전투를 할 수 있는 군인들은 찾기 힘들었다. 부축할 수 있는 사람은 부축하고 혼자 걸을 있는 사람은 혼자, 그렇게 다시 후퇴를 했다.

새벽 녘, 산등성이를 넘을 무렵 인민군의 공격이 다시 시작됐다. 아! 난 뛸 수가 없었다.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냥 하늘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기다시피 해서 온 힘을 다해 산등성이를 넘었다. 인솔자와 위생병, 그리고 부상병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마 대부분은 죽었을 것이다. 산등성이를 넘어가자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피난을 가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

이 말을 하고 난 주저 앉았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자꾸만 가지 말라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를 생각하는데 자꾸만 눈이 감겼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자꾸만 눈이 감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이 부시고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상처가 아물지 않아 팔이 떨어질 것 같고 온 몸이 욱신거렸지만, 그냥 그렇게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디가 북쪽인지 어디가 남쪽인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난 그냥 아래로 기어서, 굴러서 내려갔다.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 난 몸을 낮추어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잠시 뒤에 발자국소리가 났다. 인민군이었다. 따발총과 인민군 모자가 보였다. 불과 2-3m 옆으로 인민군이 지나갔다. 뭐라 얘기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다.

반나절쯤을 가만이 있었다. '인민군이 있다면 여긴 적지 아닌가' 안되겠다 싶어 다시 산 능선쪽으로 올라갔다. 비가 내렸다. 빗방울이 나뭇잎을 툭툭 때렸다. 밤을 보내고 나는 다시 산 위로 올라갔다. 사람소리가 났다. 8부 능선쯤에서 나는 또 다시 엎드려 있었다.

누굴까? 인민군일까 아군일까. 나는 몸을 숨겼다. 점점 발자국 소리가 커졌다. 나는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먼저 발각되면 끝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손들어!"

뒤에서 나에게 총을 겨누었다. 순간적으로 손을 들고 고개를 들어보니 세명이 나를 에워쌓다. 아군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속을 밝혔지만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군복은 내가 아군임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나를 포위한 군인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 중 한 명이 내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내 몸속에서 둘둘 말린 건빵 봉지가 나왔다. 그걸 풀어 확인한 후에야 군인들은 경계를 늦추고 나를 부축했다. 그들의 품속에도 같은 건빵 봉지가 하나씩 있었을 것이다. 목숨과 같은 군번을 적어 놓은 것이 아닌가.

나를 발견한 아군은 9중대 수색대원들이었다. 그들이 침착하게 나를 살피지 않았다면…. 식은 땀이 난다. 그들은 나를 부축해 중대장에게 데리고 갔다. 중대장은 나를 보고 고생했다며, 주먹밥을 주었다. 얼마 만에 보는 주먹밥인가! 하지만 난 먹지 못했다(아버지가 부상을 당하신 곳은 경북 칠곡군 가산면의 어느 뒷산이었다).

1950년 8월 20일

나는 부산 제5육군병원에 입원했다. 부상을 당한 지 5일 만이다.

1950년 9월 20일

입원 한 달 만에 병원을 나왔다. 아군의 인천 상륙으로 인민군의 세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나의 부대를 찾으러 퇴원자들의 집결지인 대구 동천으로 갔다. 그러나 부대원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11연대 교육대에서 근무를 했다. 이 곳에서 내 임무는 주로 경계근무였다.

1950년 11월

나는 다시 10중대로 전입을 간다.

(많은 전우들이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기본적인 군사훈련도 받지 않은 이들이 삽과 괭이 대신 총을 들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채 전쟁을 하고 있었다. 하루 하루 지나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군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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