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일은 포도대장의 말에 속으로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곁으로는 태연히 포졸에게 명을 시행하도록 일렀다.
"이거 뭔가 잘못 건드리지 않았는가? 박종일 대감이 보낸 사람과 서찰이 오지 않나, 포도대장이 바뀌더니 대뜸 그 놈을 풀어내라 하지 않나."
조례가 끝난 후 답답해진 심지일은 이순보를 잡고 답답함을 호소했지만 그도 별 뾰족한 수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우리 손을 떠난 일이옵니다. 뭘 어찌하겠습니까? 저도 이 일은 더 이상 도와 드릴 수 없을 듯 합니다."
심지일은 그도 그렇다는 듯 쓴 입맛을 다시며 새 포도대장의 눈치를 살피다가 이런저런 핑계를 댄 후 포도청을 빠져나왔다. 대낮부터 애향이를 만나기 위해 기방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거, 썩은 종사관이 대낮부터 엉뚱한 곳에 들락거리는구먼!"
기방으로 향하던 길에 심지일이 뜻밖의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다름 아닌 옴 땡추였다.
"거, 나는 해달라는 대로 해주었는데 그쪽은 제대로 일을 못 하고 있는 연유나 들어봄세."
기방으로 자리를 옮긴 후 옴 땡추가 심지일에게 화가 났다는 듯 따져 묻기 시작했다. 당황한 심지일은 변명투로 구구절절이 말을 내뱉었다.
"사실 연유는 제가 묻고 싶었사옵니다. 아니 박종경 대감이 관여되어 있지 않나 바꾼 포도대장께서 풀어줄 것을 명하지 않나. 대체 어떤 놈이기에 그러한 연줄을 가지고 있단 말이옵니까? 이래서는 저로서도 상대하기 벅차옵니다."
"뭐라? 박종경 대감이?"
옴 땡추도 의외라는 듯 머리를 갸웃거렸다.
"승정원의 하속들이 박종경 대감의 서찰을 가지고 왔더이다."
"그 서찰을 가지고 있나?"
심지일은 소매에 넣어두었던 서찰을 꺼내 놓았다. 옴 땡추는 서찰을 펼쳐보자마자 벌컥 화를 내었다.
"내 익히 대감의 필체를 알고 있다네! 이것은 박종경 대감의 글이 아니고 수결도 엉터릴세!"
그 말에 심지일은 하얗게 질린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런 일이! 이런 죽일 놈들이 있나! 박선달님, 이게 다 제가 미련한 탓이옵니다. 내 이놈들을!"
"아닐세! 포도대장까지 움직일 정도인데 자네가 어쩔 수가 있었겠나. 다만…."
옴 땡추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찌되었건 새로운 포도대장의 동태를 파악하고…. 승정원 하속이라 한 놈들은 건드리지 말게나. 그 놈들은 정말 승정원 하속들이 맞을 걸세."
"허! 그렇다면 이대로 안팎으로 두 눈뜨고 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 사이 술상이 들어 왔기에 옴 땡추와 심지일의 대화는 잠깐 끊겼다가 이어졌다.
"어디까지 설치는가 살펴보자는 것일세. 그리고 애향이 말일세…."
심지일은 결국 그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는 심정으로 옴 땡추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시켜 애향이의 어미를 속여 빚을 지게 만든 것은 자네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네. 앞으로 안 된다면 뒤부터 차례로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야. 포도청에 자네나 그 뭐라고 하던가… 하여간 아는 포교도 있지만 내 마음에 차지 않고 일부러 일을 떠맡기면 꼭 자네처럼 드러나 보인단 말일세."
심지일은 대체 옴 땡추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옴 땡추는 술을 건네었고 심지일은 단숨에 이를 들이켰다.
"거 왠지 술맛은 좋구먼!"
옴 땡추의 말과는 달리 심지일은 어쩐지 술맛이 뱉어내고 싶을 정도로 괴이했지만 차마 쓰다 달다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제 자네는 그만 가보게! 조금 있으면 여기 다른 사람이 올 터인데 서로 마주쳐 봐야 좋지 않을 걸세. 공사 다망한 종사관이 대낮에 여기 죽치고 앉아 있으면 되겠나!"
심지일은 찜찜한 기분을 뒤로하며 쫓겨나듯 기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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