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40

어둠 속의 두 그림자 (8)

등록 2004.06.23 13:29수정 2004.06.23 16:16
0
원고료로 응원
* * *

“어라? 내일 오신다더니 어찌 다시 오셨는지요? 혹시, 분부하실 말씀이 더 있으셔서 오신 건가요?”
“예?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연화 부인은 군화원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철기린을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올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이곳에서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지난 이 년간 그림자조차 얼씬 않던 군화원의 실제 주인 즉, 철기린 구신혁의 느닷없는 방문이 원인이다.

그가 유대문주의 일점혈육인 빙기선녀 사지약에 푹 빠져 지낸다는 소문은 이곳에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여 군화원 여인들은 거의 치장을 하지 않고 지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데 그 하늘이 늘 다른 곳만 바라보고 있다 하니 공들여 치장해 보았자 아무 소용없기 때문이다.

군화원이 곳이 대체 어떤 곳이던가! 이곳은 차기 성주가 될 철기린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천하 각지에서 선발되어 온 여인들이 기거하고 있는데 최대 희망은 용자(龍子)의 여인으로 간택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부단히 학문을 익혔고, 금기서화(琴棋書畵)를 익혔으며, 부덕(婦德)을 쌓았고, 절정 방중술(房中術)까지 익혔다. 단 한번의 기회라도 찾아오면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재수가 좋으면 성주부인이라는 어마어마한 자리까지 넘볼 수 있다. 부귀영화는 물론 막강한 권력까지 휘두를 자리이다.


게다가 철기린은 임풍옥수(臨風玉樹)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준미한 청년이다. 외모만으로도 선망의 대상이기에 군화원 여인들은 언제 그가 올까 기다리며 살았다. 최근엔 사지약이라는 강력한 존재 때문에 늘 한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차기 성주의 부인이 될 것이란 소문 때문이다. 그렇다면 잘 해봤자 첩이다. 그러니 맥이 빠질 수밖에.

하지만 그 첩이라는 자리도 결코 만만치 않은 자리이다. 철기린의 총애를 입기만 하면 정실부인 못지 않은 권력과 재물을 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철기린이 군화원을 방문해야 가능한 것이다. 이년 이상 발걸음이 전혀 없었기에 희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철기린이 방문했던 것이다.


마침 여인들은 연화 부인으로부터 요리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작고한 철마당주의 두 부인 가운데 하나인 그녀는 가히 여인의 모범이라 할 만하였다. 학문이면 학문, 음율이면 음율, 요리면 요리 등 그야말로 모든 것에 완벽한 여인이었다.

특히 요리 솜씨가 좋았는데 그녀가 만든 음식은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기막혔다. 게다가 그녀가 만들어 내는 요리는 중원에선 맛볼 수 없는 것이기에 다른 시간과 달리 요리 시간만 되면 졸지 않음은 물론 두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수업이 끝난 뒤 맛볼 기막힌 요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철기린에게 음식을 바칠 기회가 생기면 입에서 살살 녹는 음식으로 그를 붙잡으려는 생각에 열심히 배우려 했기 때문이다.

수업의 특성상 냄새가 배게 되고, 손에 물을 묻혀야 하기에 이 시간만은 치장도 하지 않고, 평범한 복장으로 수업을 받았다. 화장을 하면 그 냄새가 음식에 배어 들기 때문이며, 음식을 만들다 자칫 공들여 지어진 의복이 더러워질까 싶어서이다.

바로 이런 순간에 그토록 기다리던 철기린이 왔으니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이상할 것이다. 여인들은 철기린이 왔다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일제히 자신의 처소로 도망쳤다. 그리고는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치장하기 시작하였다. 곱게 단장한 모습을 보기고 싶음이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만 급할수록 평상시 잘 되던 것이 안 되는 법이다. 마음만 급하기 때문이다. 하여 여인들이 허둥지둥하는 동안 철기린은 군화원의 두 원주인 연화 부인과 수련 부인을 접견하였다.

그가 오랜만에 이곳을 찾은 이유는 요즘 밤이 적적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사지약이 회임하였는데 무천의방에서 가급적이면 합방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하였다. 낙태가 우려되기 때문이라 하였다.

가히 색마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색을 즐기던 철기린에게 있어 열흘이 넘는 독수공방(獨守空房)은 참기 힘든 고문이었다. 그렇기에 발걸음조차 하지 않던 군화원을 찾은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3. 3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4. 4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5. 5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