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41

어둠 속의 두 그림자 (9)

등록 2004.06.25 13:18수정 2004.06.2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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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관(官)에서 기녀 점고(點考:일일이 점을 찍어 가며 사람의 수효를 헤아림) 하듯 모든 여인들을 보여달라 하였다. 하여 모두 모이라 하였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철기린의 선택을 받으려면 최상의 상황에서 그를 맞이하여야 하는데 최근 들어 가꾸는 것을 게을리 한 결과 피부는 거칠었고, 요리 수업 중이었는지라 몸에서 냄새도 난다면서 꽃잎 띄운 물에 수욕하기 전에는 나오지 않겠다 하였다.


전후사정을 설명하자 철기린은 껄껄거리며 돌아갔다.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 것이다.

그는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였다. 그동안 잘 준비하라는 뜻이기에 군화원은 부산해졌다. 처박아 두었던 각종 장신구를 꺼내 손질하는 한편 수욕(水浴)할 물을 데우기 위함이었다.

연화부인은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조언을 해줬는데 특히 무언화(無言花)의 방에 오래 머물렀다.

한마디 말도 안 하는 날이 있을 정도로 말이 없기에 무언화라 불리는 그녀는 침어낙안, 폐월수화, 월궁항아, 천상옥녀와 같은 미사려구(美辭麗句)로도 부족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천하절색이니 경국지색이니 하는 말로도 부족한 그녀는 한족(漢族)이 아닌 해동인(海東人)이라 하였다.


처음 군화원으로 보내졌을 때 그녀의 별명은 촌계(村鷄)였다.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촌뜨기, 다시 말해 촌닭이라는 뜻이다. 겁에 질린 듯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니 그리 불릴 만도 하였다.

그러나 그 별명은 금방 없어졌다. 연화부인에게 보내지자마자 군화원 최고의 미녀로 탈바꿈하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가 되면 웬만하면 다른 여인들의 집요한 견제를 받을 것이나 무언화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연화부인 때문이었다. 한달 동안이나 자신의 처소에 잡아두었기에 다른 여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 다음엔 무슨 말이라도 해야 꼬투리를 잡아 해코지를 할 텐데 전혀 말이 없으니 어찌 해볼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디에서 익혔는지 학문, 금기서화, 음율 등 모든 방면에서 다른 여인들을 능가하면 능가했지 전혀 손색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뛰어난 요리 솜씨까지 있었다. 이것을 어여삐 여겼는지 연화부인은 그녀를 의녀로 삼았다. 하여 질투와 시기를 받을 이유가 충분했지만 여인들은 그러지 못했다.

첫째는 미녀의 조건인 삼백(三白), 삼흑(三黑), 삼홍(三紅), 삼협(三峽)을 완벽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라 할지라도 어느 한 구석 결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언화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피부와 섬섬옥수(纖纖玉手), 그리고 치아는 눈처럼 희었고, 별빛처럼 영롱한 빛을 빛내는 눈동자와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 그리고 진한 눈썹은 새카맸다.

갸름한 손톱과 고혹적인 입술, 그리고 뺨은 보기 좋게 붉었으며, 개미허리 같은 세류요(細柳腰)와 날씬한 종아리, 그리로부터 이어진 발뒤꿈치까지 어느 곳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말하는 것을 보기 힘들기에 그녀의 음성에 이상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은 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 영롱한 음색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여인들은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으로 법도에 조금의 어긋남도 없는 조신한 행동거지와 예의범절까지 완벽하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언화는 군화원에서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으며, 화중모란(花中牡蘭)이었다. 그 차이가 웬만하다면 어찌해 보겠으나 워낙 차이가 크기에 아예 포기했던 것이다.

연화부인은 돌아서던 철기린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무언화를 눈여겨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주는 아무리 많은 자갈과 섞여 있어도 표가 나는 법이다.

무언화 역시 다른 여인들처럼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군의 미모까지는 감출 수 없었기에 눈에 뜨인 것이다.

그렇기에 군화원을 나서는 철기린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던 것이다.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았을 때 눈에 확 뜨일 정도라면 다 꾸민 뒤에는 어떻겠는가!

먹음직스런 음식을 앞에 둔 미식가처럼 입맛을 다시던 그는 무천의방으로 향했다. 소화타라면 하룻밤에 열 번의 파정을 해도 끄덕 없을 묘방(妙方)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여인을 골랐으니 두고두고 즐길 심산이었던 것이다.

철기린이 그동안 군화원을 찾지 않은 것은 사지약이라는 절세미녀가 있기 때문이지만 그 외에도 다른 이유가 또 있다.

군화원은 본원과 별원으로 나뉘는데 별원은 한번이라도 철기린이 품었던 여인들만이 기거하는 곳이다.

현재 그곳에는 네 여인이 기거하고 있는데 그녀들 모두는 이년 전 철기린이 대취한 상태에서 거둔 여인들이다.

그 일이 있은 다음날, 군화원을 다시 찾은 철기린은 별원을 들렀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갔다.

곱게 치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무수한 단점이 눈에 뜨였기 때문이다. 얼굴은 아름답지만 목소리가 영 아닌 여인도 있었고, 몸매는 육감적이지만 천박한 말만 하는 여인도 있었고, 교묘한 화장술로 가짜 아름다움을 빚은 여인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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