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42

어둠 속의 두 그림자 (10)

등록 2004.06.28 18:16수정 2004.06.2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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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느냐? 소성수가 네게만 눈길을 주었다. 이는 너를 마음에 들어함이다. 그러니 내일 그를 꽉 잡도록 하여라."
"예! 어머니."

무언화는 장미 꽃잎이 둥둥 떠 있는 향기로운 물에 담겨진 채 시비들의 시중을 받으며 수욕 중이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있었지만 왠지 부자연스러웠다.


침묵하던 연화부인이 입을 연 것은 반각이 지난 후였다.

“파과(破瓜)의 고통이 두려워 그런 것이냐?”
“예? 아, 아니옵니다. 소녀, 두렵지 않습니다. 여인이라면 언젠가 한번쯤은 겪어야 하는 것이라 하셨잖아요.”

“그래? 그런데 어찌 네 어깨가 경직되어 보인다.”
“소녀의 어깨가요? 아, 아니에요. 소녀는 괘, 괜찮아요.”

“안다! 네 마음을. 나도 혼례를 올리기 전날 몹시 긴장했었지. 그때 내 어머니께서 힘을 빼면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단다. 그러니 너도 두려워말고 긴장도 하지 말아라. 알았지?”
“예! 어머니. 그리하지요.”

“암! 그래야지. 소성주는 잘난 사내다. 시대의 기린아(麒麟兒)지. 온 천지를 뒤져도 그만한 신랑감을 찾기 힘들 것이야. 그런 그가 널 택할 것이니 두려워말고 기뻐하거라.”
“예! 어머님 말씀 명심하겠어요.”


“흠! 빙기선녀라는 여인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들리는 소문으론 불여우라고 하던데…”
“……!”

“흠! 아직은 그녀가 정실자리를 꿰찬 것이 아니다. 네가 그동안 배운 것들을 총동원하면 정실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야.”
“예!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게요.”
“아암!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말고.”


연화부인의 눈에는 아쉽다는 빛이 흐르고 있었다.


<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인 시경(詩經) 주남편(周南篇)을 보면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호구(君子好逑)라는 구절이 있다.

그윽하고 정숙한 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다라는 뜻으로, 행실과 품행이 고운 여인이 군자의 좋은 배필이 된다는 말이다.

또 요조숙녀는 금슬로써 벗한다는 요조숙녀 금슬지우(窈窕淑女 琴瑟友之)라는 구절도 있다.

이는 요조숙녀란 거문고와 비파를 켤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장래에 지아비와 거문고를 뜯으면서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이다. 여기에서 사이좋은 부부 사이를 뜻하게 된 금슬(琴瑟)이란 말이 유래된 것이다. >


무언화는 군화원에 들기 전에 이미 요조숙녀(窈窕淑女)였다. 누가 훈육했는지는 모르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연화부인은 그런 그녀를 더욱 세련되게 다듬었다. 그 결과 조금의 허점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여인이 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며느리로 삼았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아들의 생사조차 모르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의녀로 삼은 것이다.

시비들의 시중을 받으며 의복을 걸치는 무언화는 과연 절세미녀였다. 나올 곳은 확실히 나왔고 들어갈 곳 역시 확실히 들어간 그녀는 몸매만으로도 뭇 사내를 뇌쇄시킬 정도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연화부인의 눈에는 묘한 빛이 흘렀다. 철기린과 맺어지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린 것이다.

‘으음! 만일 철기린이 방옥두에게 태극목장을 그리하라 시킨 장본인이라면 어쩌지? 철천지원수에게 저 아이를…?’

연화부인이 갈등하는 동안 의자에 앉아 삼단 같은 머리를 빗어 내리는 무언화의 눈에서도 묘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음! 어머님께 말을 해야 하나? 아냐, 나중에 잘못되는 일이 있으면 어머님께 누가 될 뿐이야. 그래. 하지 말자.’

무언화는 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자그마한 도(刀)로 해동 여인들이 자신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품에 지니고 다닌다는 은장도이다.

칼집을 당기자 새파란 예기가 흘러나왔다. 살짝만 건드려도 베일 정도로 날이 잘 서있다는 증거이다.

‘아버님! 어디에 계세요? 소녀, 반드시 아버님을 구하겠어요. 흑! 소녀,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아버님을 구할게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부친 조관걸을 떠올린 무언화는 솟으려는 눈물을 막으려 고름으로 눈가를 찍었다.

연화부인 곽영아의 의녀가 된 무언화는 부친을 구하겠다고 선무분타의 담장을 넘어갔던 조연희였다.

그녀는 무림천자성에 억류되어 있을 부친을 구하기 위해 만화선발대회(萬花選拔大會)에 참가했었다. 미색 뛰어난 처녀들을 선발하는 대회로 매년 군화원에 들 여인 셋을 뽑는 대회이다.

조연희가 만화선발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철기린의 여인이 되기 위함이다. 그의 눈에 들기만 하면 실종된 부친의 행방을 아는 것은 물론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제 그 목적이 이루어지려는 순간이다. 그런데 자꾸 망설여지고 있었다. 마음 속에 담은 이회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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