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72

여인의 음모

등록 2004.06.25 08:54수정 2004.06.2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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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돌아온 길에 혜천스님과 동자승은 한줄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님! 암자에 불씨가 없을 텐데 어인 연기입니까?"


혜천스님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밥내가 나는 것으로 보아 누가 암자에서 밥을 짓고 있는 모양이구나."

혜천스님과 동자승이 서둘러 암자로 가 보니 한 여인이 부엌에서 나와 땀을 훔치고 있었다. 혜천스님은 여인에게로 가 합장으로 인사를 올렸다.

"보살께서는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밥을 짓는 것이옵니까?"

여인은 공손히 답했다.


"불암사에 치성을 드리러 왔다가 여기 도력이 높은 스님이 와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게 되었사옵니다. 보아하니 암자에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지라 제가 보시를 좀 했사오니 불쾌히 여기진 말아주시옵소서."

"소승이 여기 온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소문이 돈단 말입니까? 다른 스님을 찾으시려다 잘못 아신 모양입니다."


여인은 혜천스님을 잔잔히 살펴보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혜천스님이 아니시온지요?"

그 말에 혜천스님은 동자승을 돌아보며 낭패 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승의 미천한 법명이 혜천스님은 맞소."

"그렇다면 제가 잘 못 찾아온 것은 아니군요. 이번 가보겠사옵니다."

혜천스님과 여인은 정중히 합장을 하며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돌아섰다.

"스님."

"왜 그러느냐?"

혜천스님은 어딘가 불편한 듯 동자승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스님께서 불법으로 위명(偉名 : 위대한 명성)을 떨친 적이 있었사옵니까?"

"없다."

"그런데 어찌 저 여인이 스님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이상하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그리 생각하시지 않는 듯 합니다."

혜천스님은 동자승의 말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네 놈이 어찌 그런 것까지 짐작한 단 말이냐! 저녁이나 차리거라!"

그 날 저녁, 동자승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혜천스님은 암자에 모셔진 자그마한 돌 불상 앞에서 염주를 굴리고 있었다.

다음날에도 여인은 밥을 지으러 왔다. 혜천스님은 모른 척 염주알을 굴리며 염불만 외웠고 동자승은 혜천의 눈치를 살피며 여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흘째도 나흘째도 닷새 째도 여인은 찾아왔다. 그럼에도 혜천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는 그윽했고 혜천스님의 꾸지람을 들을 동자승은 여인을 살펴보지 않고 소리내어 글을 읽을 따름이었다.

"스님, 오늘은 나물을 맛나게 무쳐냈습니다."

"거기 두고 가시오."

엿새째 되는 날, 여인은 혜천스님을 불러내었지만 여전히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보다못한 동자승이 여인이 암자에서 내려간 후 혜천스님을 찾아가 심통 맞은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스님."

"무슨 일이냐?"

동자승의 목소리가 다름을 느낀 혜천스님의 불경 외는 소리가 딱 끊어졌다.

"스님께서는 제게 언젠가 글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한 바 있사옵니다. '겸허(謙虛)하게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것이 진정한 군자의 도리(道理)이니라. 이를 곧 토포착발(吐哺捉髮 : 자신을 찾아온 현인(賢人)을 극진히 영접하기 위해 식사 때나 머리 감을 때도 입에 먹은 것{哺}을 뱉어내고{吐}, 감던 머리{髮}를 움켜쥐고서{握}까지 나와 맞이했다는 주나라 주공의 일화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느니라.'라고 말입니다."

그 말에 혜천스님은 빙긋이 웃으며 불상을 바라보던 몸을 돌려 동자승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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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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