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1세기 핵심적인 패권 전략의 하나로 미사일방어체제(MD)를 내세우면서 한국을 최우선적인 포섭 대상으로 삼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정부의 선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평화번영정책'과 '협력적 자주국방', 그리고 '동북아 중심국가' 등을 핵심적인 외교안보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러한 전략 기조는 근본적으로 MD 참여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MD 참여를 요청 받은 바도 없고, MD 참여를 결정한 바도 없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미 한국에 MD에 한발을 걸쳐 놓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미국은 한국의 MD 참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동맹 관계에 있어서 우월한 지위를 앞세워 유무형의 MD 참여 압력을 행사해 온 미국은 동아시아 MD의 전초 기지로 한국을 삼고 관련 무기 체계의 배치 및 조직 구성에 박차를 가해 왔다. 특히 리온 라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은 3월 31일과 4월 1일, 각각 미 하원과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한국의 국방중기계획에는 MD도 포함되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한미 양국의 외교안보 관계자들은 2002년 10월에 비공개 회의를 갖고 '티 나지 않게' 한국의 MD 참여를 추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회의에는 한국 측에서 반기문(현 외교부 장관), 차영구(전 국방부 정책실장), 문정인(현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배형수(해군 준장) 등 33명이, 미국 쪽에서는 토머스 하버드 주한 미 대사,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 사령관, 한국의 MD 작전을 원격 조정하는 미국 텍사스 소재 제32 육군 방공 및 미사일방어 사령부(32nd AAMDC)의 호워드 브롬버그 작전사령관 등 28명이 참석했다.
2005년 국방예산안, MD 사업 대거 포함
이들은 이 회의에서 한국의 반미 감정과 MD에 대한 비판 여론을 고려해, 한국에서는 가급적 'MD'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한국의 MD 관련 무기 체계의 도입도 '국방중기계획에 따른 군 현대화 사업'으로 포장하기로 했다. 특히 현재 한국의 국방비가 GDP 대비 2.8% 수준으로는 MD에 필요한 무기 도입이 어렵다고 보고, GDP 대비 3% 이상으로 국방비를 인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양국 관리들의 '은밀한 논의'를 사후에 입증하듯, 이후 부시 행정부는 노골적으로 한국에게 국방비 인상을 요구해 왔고, 한국의 국방부 역시 'GDP 대비 국방비 3% 관철'을 목표로 활발할 여론전에 나서왔다. 특히 국방부는 차기방공망사업(SAM-X)과 차세대구축함사업(KDX-Ⅲ) 등이 "MD와 무관하다"고 발뺌해왔다.
이와 같이 한국이 '은밀하게' MD에 편입되고 있다는 징후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는 가운데, 국방부는 핵심적인 MD 관련 사업인 SAM-X 사업을 부활시키고, KDX-Ⅲ 사업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국방부가 최근 기획예산처에 제출한 2005년도 국방예산안을 보면, 총 사업 규모 약 2조5천억원대인 SAM-X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2002년에 미국제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을 도입하고자 했던 이 사업은 예산 부족과 MD 참여 논란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자주국방 분위기에 편승해 다시 부활한 것이다. 국방부는 2005년 예산안에 사업착수금 약 350억원을 책정해, PAC-3나 독일이 사용했던 PAC-2 도입을 저울질하고 있다.
또한 국방부는 2002년 7월에 KDX-Ⅲ 사업의 전투 체계로 록히드마틴사의 이지스 전투 체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내년도 예산안에 약 3250억원을 책정해 놓고 있다. 국방부가 미국으로부터 도입하기로 한 전투 체계는 '베이스라인(Base line) 7.1'로 이 기종은 미국이 해상 MD 체계의 구축을 위해 개발한 최신형 전투 체계이다.
동아시아 MD 네트워크의 중심축으로 이지스함을 삼고 있는 미국은 일본에 이어 한국도 이 구상에 편입시킴으로써 한-미-일 삼각 해상 MD 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해 왔다. 특히 미국은 이론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요격까지 가능한 SM-3를 자국은 물론이고 한국, 일본에도 판매할 방침이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향후 한국의 MD 참여 여부를 가늠할 핵심적인 문제는 '요격미사일'의 구매에 있다. 요격미사일까지 구매할 경우 한국은 미국 주도의 MD에 '완전히' 편입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SM-3와 PAC-3의 도입 여부는 한국의 MD 정책을 가늠할 핵심 변수라고 할 수 있다.
MD 관련 무기 도입 사업 전면 재검토해야
이미 MD에 한발을 걸친 상황에서 나머지 한발마저 들여 놓을 경우, 한국은 헤어 나오기 힘든 '늪'에 빠져들 것이다. 무기 구매비와 운영 유지비를 합칠 경우 MD 관련 '직접 비용'만 해도 20~30조원에 달해 국민 경제 및 사회 복지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고, '진정한 자주국방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재원 마련에도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대북·대중 관계를 악화됨에 따라, 정부가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켜 내세우고 있는 평화번영정책과 동북아 신구상도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미-일의 MD 공조에 의해 북한과 중국의 미사일 전력이 적지 않게 무력화되면, 미국의 선제공격전략과 대중국 봉쇄전략은 더욱 힘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더 늦기 전에 MD 관련 무기도입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KDX-Ⅲ의 경우, 사업 자체를 취소하는 것이 어렵다면, 불필요하고도 막대한 예산 낭비를 초래하는 'MD 임무'를 제외하면 될 것이다.
KDX-Ⅲ 사업의 취지가 대공 방어 능력을 중심으로 대함전, 대유도탄전, 대전자전 등의 능력을 배가시키고 해군의 작전 범위를 확장시키고, 육·해·공군의 균형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이 사업에 굳이 'MD 임무'를 포함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MD 임무'를 제외시킴으로써 수천억원대의 예산을 절감하면서, 북한과 중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PAC-3 도입 사업을 승인해서도 안될 것이다. PAC-3는 성능이 입증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지리적 여건을 고려할 때 PAC-3로 스커드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미영전투기 2대를 격추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작동의 가능성 또한 높은 현실이다.
최근 한국의 국방정책과 관련해 우려되는 점은 주한미군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무분별한 국방비의 증액과 첨단무기체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한미군의 감축을 자주국방의 기회로 삼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어긋난 결의(?)마저 다지고 있다.
그러나 MD 참여가 자주국방은 고사하고 미국과의 군사적 종속 관계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북한을 선제공격하겠다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고 MD를 통해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전략이 '억제력'에 기반을 둔 우리의 안보 전략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없다.
부시 행정부가 중국을 21세기의 사실상의 주적으로 보고 사전에 중국을 제압하겠다며 MD를 중심에 둔 한-미-일 삼각동맹체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 역시 미래의 우리의 안보 전략과 부합할 수는 없다.
MD 참여와 자주국방은 양립할 수 없다
또한 PAC-3나 SM-3 등 '요격미사일'이라는 팔과 다리를 갖더라도 눈과 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두뇌'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MD의 독자적 운용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발상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위협의 정의, MD의 필요성, MD를 중심으로 한 신군사전략 및 작전 계획 등이 전적으로 미국으로부터 비롯된 상황에서 MD 참여와 자주국방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짜'가 아니라 수십조원대의 예산 지출이 따른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자주국방 비전 및 비용 대(對) 효과를 고려할 때, 엄청나게 국방비를 엄청나게 늘리지 않는 한 정작 필요한 자주국방 역량 강화 사업이 'MD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의 MD 무기 도입은 대표적인 '중복 투자'라는 것이다. 정부는 주한미군 감축에 따른 전력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MD 능력을 갖춘 이지스함은 미국이 최근 한반도에 가장 집중적으로 늘리고 있는 군사력 분야이다.
이에 따라 한국이 패트리어트나 MD 능력을 갖춘 이지스 전투 체계를 도입하는 것은 주한미군의 전력 공백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막대한 예산을 미국에게 퍼주면서 불필요한 사업에 중복 투자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미 양국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가급적 '티 나지' 않게 한국의 MD 참여를 추진해 왔고, 2005년 국방예산안에 이를 대거 포함시켜 놓았다. 이제 공은 MD 관련 사업 추진 여부의 재가를 앞두고 있는 노무현 정부와 사업의 타당성 및 예산을 검토하는 국회로 넘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 내 일부 맹목적 친미 세력이 자주국방이라는 미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MD 참여 관련 사업을 얼마나 정확히 꿰뚫어 보고, 이를 선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대통령 스스로 내세우고 있는 국가전략, 즉 자주국방과 평화번영정책, 그리고 동북아 신구상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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