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방, 외양간 터를 고쳐쓴 탓인지 퀴퀴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널찍해서 좋다.박도
나야 죽 평교사로 지냈지만, 언제인가는 한 선배가 어떤 지위에 20년이나 죽치고 앉아 있는 바람에 후배가 그 밑에서 옴쭉달싹도 못하고 몇 년을 기다리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서로 치고 받는 것도 지켜봤다.
여객선이 암초에 부딪쳐 조난을 당해 구조선으로 옮아 탔으나 정원 초과로 배가 가라앉을 때는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을 위해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게 바른 순서요,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버려야 얻는 게 있다
외환 위기 이후 젊은이들의 실업 문제가 여간 심각치 않다. 대학원을 나오고도 석·박사 학위를 가지고도 취업을 못해 아우성이요, 한창 일할 수 있는 유능한 청년실업자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
그런데도 미적거리고 있는 내 꼴을 보다 못해 아내가 먼저 용단을 내렸다. 산골에다 폐가 직전의 집을 얻어 손수 고치면서 둥지를 틀었다.
올 봄 나는 마침내 정년을 5년 남긴 채, 퇴임하는 결단을 내리고 이 산마을로 내려왔다. 퇴임 송별연 때 앳된 한 여선생님이 나에게 와서 선생님 덕분에 후임으로 교단에 서게 되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인사를 받고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내가 이곳에 내려와 사니까 곡해하는 분도 더러 있다. 집은 얼마에 샀느냐, 땅은 얼마나 샀느냐, 당신 사는 동네에 싼 땅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는 둥, 그들은 우리 부부가 페인트 냄새가 더덕더덕 나는 산뜻한 전원주택이나 요즘 한창 유행하는 펜션에서 땅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며 사는 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내외는 이제까지 그런 것과는 멀게 살아왔고, 이 고장에서 내 땅 한 뼘 없이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거저 얻다시피 얻은 집으로(일년 사용료 가을 추수 후 쌀 두 가마니 값), 10년 동안 구두 계약으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