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민들이 행복해지는 주문

부녀회장 이선옥씨의 특별한 안내방송

등록 2004.07.12 09:38수정 2004.07.1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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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윤영

“사랑합니다. 부자~되세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터. 반상회나 분리수거 등 그때그때 중요한 사안들은 스피커를 타고 방송된다. 아파트에 살면서 방송을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나 방송을 듣고 마음이 흐뭇했던 적은 과연 있을까.

대전 정림동 늘푸른 아파트 이선옥(47) 부녀회장은 아파트 내에서 유명인사다. 부녀회장이라는 직함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린 아이들까지도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안내방송 끝 무렵에 말하는 “사랑합니다. 부자 되세요”라는 멘트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저희 남편도 부녀회장님의 방송을 너무 좋아해요.”
“우리 아이는 방송만 나오면 ‘엄마 이것 들어보라’고 난리에요.”
그녀의 안내방송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마력을 지녔다.

“아파트에 변경사항이나 행사가 있는데, 공고를 부착해도 못 보는 사람들을 위해 방송을 합니다. 주민들이 소음으로 생각하지 않고 좋아해주니 저 또한 보람이 크네요. 사실 좋게 봐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끄럽다고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거든요.”

안내 방송을 하는 시간은 저녁 8시.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이고, 직장에서 퇴근해 돌아왔을 시간으로,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도록 정한 것이다. 그래야 피해를 덜 줄 것 같다는 그녀만의 작은 배려다.


그녀가 안내방송 끝에 짤막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지금껏 아파트에 살면서 안내방송을 들을 때마다 그녀가 했던 생각은 ‘저것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였던 것. 이는 아파트에 사는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부녀회장이 된 그녀는 자신은 그러지 않아야겠단 생각에 “이왕이면 방송을 듣고 싱긋 웃을 수 있는 멘트가 없을까” 고심했다. 그런 고심 끝에 “주민 여러분 사랑합니다.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멘트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방송 멘트가 늘 똑같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주말을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라는 메시지를 담기도 하고, 얼마 전까지는 태풍 민들레에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했다.

“똑같은 멘트로 말하는 것은 저도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색다른 말 한마디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지난 번 폭설 때는 두 손 걷어붙이고 아파트 주민들이 제설 작업을 도와줬거든요. 그날 저녁 고맙다는 인사 방송을 하면서 “뜨거운 밤 되세요” 했더니 사람들이 우스개 소리로 저더러 ‘불타는 밤 부녀회장’이라고 하더군요.”

이렇듯 꾸미지 않은 목소리와 진실한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그녀가 부녀회장을 맡은 것은 지난해 6월부터다. 부녀회장은 통상적으로 지원자나 추천을 받는 사람이 하기 마련. 하지만 무보수에다 100% 봉사직이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그 자리를 기피한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 역시 2년간 부녀회장이 공석이었다.

주민들은 “당신이 제격이다”라며 그녀에게 부녀회장을 해보라고 적극 권했고, 무려 8개월간을 추천받은 후에 부녀회장으로 나섰다.

“노인 분들을 식사 대접하는 행사가 있었어요. 행사 참석차 나와 봤는데 아파트에 부녀회가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은 일이나마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녀는 주민화합회, 동네어른들 식사대접, 나들이 해주기, 김장 해주기, 바자회 등을 적극적으로 치러내기도 했다. 무보수에 아무런 대가도 없는 봉사직. 그녀는 마음을 다해 주민들을 위해 일한다. 일이 많은 것은 이미 각오를 하고 나왔기 때문에 괜찮지만 주민들이 그런 자신의 마음을 몰라 줄 때 서럽다는 그녀. 결국 그녀에게 힘을 주는 것은 주민들의 격려와 칭찬 한마디인 것이다.

“방송할 때 가끔 실수도 하는데 있는 그대로 들어주니 고마울 뿐이죠. 앞으로 부녀회장 임기가 2년 정도 남았는데 더 열심히 해야죠. 우리 아파트에 들어오면 꽃이 많았으면 좋겠고, 우리 주민들만큼은 정말 마음까지도 부자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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