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내 아들 형걸이에게"

고3 수험생이 '미래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등록 2004.07.12 10:41수정 2004.07.1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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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3학년 수험생을 담당하고 있다. 문학 과목 1학기 수행평가를 생활수필 한 편 써내기로 통일했다. 1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서 만은 아닌 듯한데 예상외로 여러 가지 형식으로 된 진솔한 내용이 많았다. 여기 우선 '미래의 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필자 주>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에게

형걸(미래의 내 아들)아, 아빠다. 아빠가 오늘은 너에게 편지를 쓰려고 이렇게 펜을 잡았단다. 아참, 아까 그 게임은 아빠가 이길 수 있었는데 아쉽게 져버렸다. 크- 다음 번엔 꼭 이길 거야. 각오하렴.

그건 그렇고 아들씨, 오늘 네 엄마가 그러는데 너 여자 친구 사귄다며? 오우!-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군. 사실 아빠도 왕년엔 잘 나가던 킹카였지! 정말이야!! 오늘날 너희 엄마에게 딱 걸렸지만….

아, 이게 아니지- 참, 아무튼 아빠는 기분이 좋았단다. 우리 형걸이가 그만큼 더 넓은 사고나 행동을 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자랐다고 느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약간은 겁이 났어. 설마, 용돈 올려달라고 할 건 아니지? 푸하하- 아빠도 요즘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 알지? 엄마랑 거래(?)하도록 하렴. ^^*

이 녀석 형걸아, 너 요즘 너무 야위었더라. 그래 고등학교 생활이 많이 힘들지? 어느새 우리 형걸이가 고등학생이라니…. 세월 참 빠르구나. 아장아장 걸음마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개구쟁이, 꼬맹이 형걸이가 벌써 아빠만큼 훌쩍 커버렸네.


요즘 교복입고 등교하는 형걸이 모습을 보니. 그 새벽에 말이야, 그런 모습 볼 때면 새삼스레 아빠도 힘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힘든 고등학교 생활에 미소 한 번 잃지 않는 밝은 네 모습을 볼 때면 아빠는 정말이지 뿌듯한 마음에 행복감이 밀려온단다.

그러니 형걸아, 아빠하고 형걸이하고 항상 지금처럼만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 하자구나. 물론, 엄마하고 자영(미래의 내 딸)이도 함께여야겠지. 우리는 가족이니까 말이야. 아빠는 아빠의 행복이 곧 우리 형걸이의 행복, 우리 네 식구의 행복이라는 걸 형걸이 네가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네가 힘들고 지쳐 보일 때면 아빠의 어깨도 그만큼 무거워지고 발걸음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단다.


최근에 받아본 성적표 때문에 많이 실망한 모양이구나. 아빠도 예전에 고등학교 때 첫 성적표를 받아보고 많이 실망했던 적이 있단다. 부모님께도 많이 죄송스러웠고….

그런데 형걸아, 성적표는 숫자의 나열에 불과하단다. 열심히 노력하던 너의 모습과 네가 보여준 그 끈기와 열정을 그런 숫자로 판단할 순 없는 거야. 물론 높은 성적이 나와서 나와 엄마를 기쁘게도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아빠는 말이야, 스스로 노력하고 정진하는 열정을 가진 지금의 형걸이보다 값지고 자랑스러운 존재는 없다고 생각해. 네 엄마도 내 생각과 같을 거야.

그러니 너의 그 축 처진 어깨에 아빠의 아들다운 기력을 넣어 힘있고 씩씩한 형걸이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바란다. 열심히 한다면 다음 번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고 웃을 날이 있을 거야.

아빠의 말은 지금의 시련에 너무 고개 숙이지 말라는 말이야. '비바람이 그치면 평온한 날도 올 거야(After a storm, come a carm)'라는 말이 너에게는 힘이 될 거야. 형걸아, 아빠는 내 아들이 지금의 시련을 멋진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아들을 믿는다. 아빠에게 흐뭇한 미소로 형걸이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래? 아빠도 많이 노력해볼게. 네가 뭘 바라고 뭘 해보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도록 말이야.

아빠는 그렇단다. 내가 너의 고민을 100%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은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너의 그 고민을 들어주고 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빠, 편안한 아빠가 되고 싶어. 이런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니?

건강하게 밝게 자라주는 우리 형걸이를 보면 무척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단다. 늘 지금처럼만 내 마음 속에 촛불이 되어주면 좋겠다. 많은 말을 펜으로 옮긴 것 같구나. 이 속에 묻어난 아빠의 진심을 우리 형걸이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만 줄인다.

P.S.: 맞다, 아까 게임에서 내가 진 것은 아빠가 봐준 것을 알겠지? 다음 번엔 봐주지 않을 거다 각오해라. 알았지?

2004년 7월 7일 네가 사랑하고 있는, 그리고 너를 너무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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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주고등학교, 선영여고 교사. 한국작가회의 회원. 대경작가회의, 영주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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