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아래 서 있으니 산천이 모두 내 것이로다

서귀포 70경 (27)- 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지는 소정방폭포

등록 2004.07.13 23:21수정 2004.07.1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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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벌써 7월의 한가운데 서 있는데 여행지인 서귀포는 조용하기만 하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다는 소서가 지났으나 여름 해는 아직 익어갈 줄을 모른다. 장마전선이 심통을 부리니 서귀포의 하늘은 온통 회색 빛이다.

제2산록도로를 달리며 99번 분기점에서 열을 식힌 자동차는 서귀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중산간도로의 고지에서 머물러 있었다. 무심코 자동차 바퀴를 보니 자동차의 타이어는 심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걷고 달리는 여행길. 길을 달리다 보면 나 자신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땐 잠시 브레이크를 올리고 알사탕 하나를 입 속에 집어넣게 된다. 입 속에서 살살 녹는 알사탕. 알사탕을 굴리며 단물을 빨아먹는 재미. 그러나 그 재미도 순간, 어금니를 통해 알사탕을 '우지끈' 하고 씹어 버리는 성급함.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조급함이다.

서귀포 가는 길

a 소정방 폭포

소정방 폭포 ⓒ 김강임

그 동안 서귀포 70경을 돌아보면서 목적지를 찾아가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서귀포 70경이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목적지에 대한 이정표가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귀포에 가면 자주 길을 잃게 된다. 그렇지만 서귀포에서라면 길을 잃으면 어떠랴! 길 끝에 바다가 있고 그 길이 바로 70경인데.

여름은 뭐니뭐니 해도 물이 최고다. 더구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보기만 해도 알싸함을 느낀다. 그래서 후텁지근한 장마를 피해 달려간 곳이 소정방 폭포이다. 가로수 아래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어르신에게 소정방 폭포 가는 길을 여쭤봤다. 정방폭포는 여러 번 가보았어도 소정방 폭포는 초행길이니, 관광지도 하나 들고 찾아다니는 70경이 나를 이방인으로 만든다.

"할아버지! 소정방 폭포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할아버지께서는 " 영-- 내려가면 폭포가 있수다!" 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어르신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바로 서귀포 앞 바다였다. 어르신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가니 가파른 계단이 나왔다. 그 계단은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는 날에는 금방이라도 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 버릴 것 같다.

a 병풍을 두른 듯

병풍을 두른 듯 ⓒ 김강임

"앗!" 휑하니 뚫려 있는 서귀포 앞 바다. 그 뒤로 병풍을 두른 듯 떨어지는 물줄기가 잠시 발걸음을 묶어 놓는다. 아담하게 쳐 놓은 병풍처럼,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니 한기를 느낀다.



"소정방 폭포의 물줄기가 10개라고 했던가? 어디 한번 세어봐야지".

절벽 끝에서부터 하나. 둘. 셋. 넷을 더듬거리며 물줄기를 세어 본다. 어디까지가 경계선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다. 다만 여러 개의 물줄기가 함께 어우러져 떨어지고 있었고, 그 여러 개의 물줄기는 힘을 합쳐 강렬하고 힘이 있어 보였다.

쏟아지는 폭포수에 손바닥을 내민다.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는 마치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내리는 장맛비처럼 들려왔다. 자갈 틈에 고여 있는 폭포수에 끈적끈적한 팔뚝을 씻어 내린다.
"와!-"
더운 날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먹는 순간의 싸늘함이 전신으로 스며든다.

a 폭포수가 되어

폭포수가 되어 ⓒ 김강임

소정방 폭포는 정방폭포에서 동쪽으로 300m쯤 가면 5m높이의 물줄기가 열 개 있는데 이 곳이 소정방이다. 여름 물맞이 장소로 성황을 이루는 이 곳은 아담한 물줄기가 친근한 느낌을 준다. 더욱이 요즘처럼 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될 때면 폭포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팔 수 있는 곳이다.

소정방 폭포 앞에서 보는 서귀포 앞 바다의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웅장하지는 않지만 작고 아담하여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서도 적격이다. 정방폭포가 물이 바다로 직접 떨어진다면 소정방폭포 역시 바다와 5미터 거리를 두고 물이 직접 떨어진다. 바닥에서 바로 돌 사이로 스며들어 바다로 간다. 웅덩이가 없어 백중날 이곳에서 물을 맞으면 신경통이 해소된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a 무지개 색깔 처럼 고운 폭포수

무지개 색깔 처럼 고운 폭포수 ⓒ 김강임

서쪽으로 지는 해가 절벽 끄트머리 소나무에 걸쳐 있었다. 물줄기에 비친 햇빛은 오색을 띄고 있다. 자연은 누가 강요하지 않는데도 자기들끼리 조화를 이룬다. 햇빛을 받은 폭포는 장관을 이루기도 하고 묘기를 부리기도 한다.

쫓기듯 다시 바다로 흘러가는 물줄기는 일상에 쫓기면서 줄행랑을 치듯 달려가는 내 맘 같았다. 동글동글한 돌멩이에 부딪히고 깨지면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모습이 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도 같다.

a 물이 흐르 듯

물이 흐르 듯 ⓒ 김강임

소정방 폭포에서 흘러 온 물줄기를 쫓는 일은 참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소정방 폭포 앞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하늘과 땅. 바다가 아주 쪼끄맣게 보이니, 산천이 모두 내 것처럼 느껴졌다.

a 바다가 출렁

바다가 출렁 ⓒ 김강임

그것은 곧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는 진리와 깨달음 같은것이 자연 속에 묻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진리를 확인이라도 하듯, 소정방폭포에서 흘러 내려온 물은 서귀포 앞 바다에서 은빛 바닷물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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