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온천에서 벗어던진 집착의 굴레

주마간산 일본 큐슈여행기(3)

등록 2004.07.17 07:27수정 2004.07.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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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 온것같은 아소마찌(阿蘇町)

아소마찌(阿蘇町)에 위치한 호텔에 짐을 풀고 무언가에 홀린 듯 이 낯선 마을을 무작정 헤매고 다녔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 한가득 자꾸만 채워야할 것만 같은 허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더 느끼는 허전한 감정. 지금 이 순간 난 내가 몸 담고 있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잊기 위해 이 낯선 타국의 시골마을로 흘러들어왔지만, 어두워질수록 그리움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는 걸 느낀다. 내 감정의 찌꺼기는 아직 그곳에 남겨둔 까닭일까? 아니면 아직도 채워야 할 감정의 조각들이 많아서일까?

어스름한 시골 저녁 난 무언가에 홀린 듯 자꾸만 샘솟는 감정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인적 없는 거리를 자꾸만 걸었다.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류시화>/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a 아소마을의 치과의원, 예전 일제식민시대를 복원한 영화세트장을 떠올리게 하는 목조건물에 소박하게 붙어있는 병원, 미용실, 음식점 간판들을 보니 얼핏 순간적으로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갑자기 1930년대, 40년대로 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아소마을의 치과의원, 예전 일제식민시대를 복원한 영화세트장을 떠올리게 하는 목조건물에 소박하게 붙어있는 병원, 미용실, 음식점 간판들을 보니 얼핏 순간적으로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갑자기 1930년대, 40년대로 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 김정은

아소산 칼데라 속 동네의 하나인 아소마찌(阿蘇町)내 마을 풍경은 인적을 찾기 힘들만큼 너무 조용했다. 마치 시간이 이곳에서만 멈춰져 있는 것처럼 동네 전체가 고풍스런 단층의 목조 가옥뿐이었다. 부끄러운 기억이긴 하지만 예전 일제식민시대 당시를 복원한 듯한 영화세트장을 떠올리게 하는 목조건물에 소박하게 붙어있는 병원, 미용실, 음식점 간판들을 보니 얼핏 순간적으로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갑자기 1930년대, 40년대로 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비록 건물 외부는 오래되고 낡아 보여도 내부는 살기 편하게 현대식으로 깨끗하게 꾸며져 있다고 하니, 그네들의 실용적 사고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비단 건물 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심지어는 과자나 사탕 포장물 하나에도 그네들의 실용적 사고가 꼼꼼이 배어있었다.

겉치레와 실용성

a 호텔 앞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들, 소형차를 나타내는 노란색과 중대형차를 나타내는 하얀색 번호판으로 구분되어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호텔 앞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들, 소형차를 나타내는 노란색과 중대형차를 나타내는 하얀색 번호판으로 구분되어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 김정은

우리보다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은 우리의 마티즈보다도 더 작고 예쁘장한 소형차들을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배기량 660CC 미만의 소형차 우대정책 때문인데 그들은 아예 자동차 번호판부터 소형차를 나타내는 노란색과 중대형차를 나타내는 하얀색 번호판으로 구분, 소형차에 우선적인 혜택을 많이 주고 있었다. 참고적으로 우리나라의 마티즈도 이곳으로 수입된다는데 일본 규정대로 하면 중형차(?)가 되어 흰색 번호판을 매달고 다닌다고 한다.

a 수수한 포장과 평범한 모습의 일본과자들... 겉보기는 평범하지만 수제품이라서 가격은 싸지 않다.

수수한 포장과 평범한 모습의 일본과자들... 겉보기는 평범하지만 수제품이라서 가격은 싸지 않다. ⓒ 김정은

과자 포장 또한 얼핏 보기엔 디자인의 변화가 거의 없이 20년전 30년전 옛날 모습 그대로를 살린 단순한 투명 비닐봉지 포장이지만 포장을 벗겨보면 그 속에 접착시트가 내장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 먹을 동안 공기가 안들어가게 밀봉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싸구려 사탕 한봉지에 내장되어 있는 진공포장용 접착시트를 볼 때마다 왜 포장만 요란하게 크고 내용은 그저 그런 우리나라 과자들이 생각나는 것일까?

a 아주 평범한 일본사탕 봉투의 겉과 밀봉 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안의 모습, 귤냄새 나는사탕 맛은 그저 그랬지만 그들의 실용적이고 꼼꼼한 포장기술은 배워야 할 것같다.

아주 평범한 일본사탕 봉투의 겉과 밀봉 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안의 모습, 귤냄새 나는사탕 맛은 그저 그랬지만 그들의 실용적이고 꼼꼼한 포장기술은 배워야 할 것같다. ⓒ 김정은

그러다 보니 갑자기 일본인들이 자주 사간다는 포장된 김치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김치포장의 경우 대부분 겉만 멀쩡할 뿐 한번 개봉을 하면 다른 밀폐용기에 넣지 않고서도 계속 먹을 수 없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김치 포장같은 것은 일본의 사탕봉투 포장처럼 접착시트 하나를 붙여놓으면 굳이 다른 용기에 담지 않아도 다 먹을 때까지 밀봉을 하며 편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결과는 물론 기술차이라기보다는 포장재의 원가차이나 아니면 성의차이에서 오는 작은 부분이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실용성은 매우 크다.

사소한 것같지만 매우 큰 미묘한 차이, 이 차이가 바로 유사한 점이 매우 많은 곳이지만 결정적으로 매우 다른 일본과 우리나라의 국력차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아무리 그네들의 사고가 꼼꼼하고 답답하고 이중적이라 우리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있다면 철저하게 배우고 그보다 더 좋게 개선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정말 그네들의 속까지 철저하게 배우고 좋은 것만 흡수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쉬움과 집착의 경계에서 헤메다

a 저녁 무렵 인적이 끊어진 아소역의 모습은  우리나라 간이역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저녁 무렵 인적이 끊어진 아소역의 모습은 우리나라 간이역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 김정은

혹시 시간이 나면 쿠마모토 시내를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차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아소역을 갔다. 그러나 퇴근시간이 지난 아소역은 이미 인적이 끊어진 상태이다. 우리나라 자그만 시골 간이역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일본영화 철도원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영화 속 간이역에는 밤에도 책임감이 투철한 역장이 살고 있었는데 여기는 아무도 없었다. 하긴 영화 속 모습을 현실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겠지.

아소역에서 쿠마모토 역까지 기차로 걸리는 시간은 1시간10분 정도이다. 약 50Km 밖에 안되는 거리인데도 보통권 요금은 1인 1080엔 정도로 꽤 비싼 편이다. 더욱이 일단 쿠마모토로 가는 기차표를 무인판매기로 끊어서 쿠마모토역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이곳으로 되돌아오는 가장 빠른 열차는 다음날 새벽 5시15분 열차이다 보니 갈 수가 없었다.

일본에 오기 전 시간이 나면 쿠마모토역에서 내려 500엔짜리 전차를 타고 일본 3대 성중 하나라는 쿠마모토성을 보리라 다짐했던 계획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쉬움의 그림자를 역 주변에 길게 남겨둔 채 축 처진 몸을 겨우 가누고 다시 호텔로 왔다.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라면 그만 잊자.'

어스름한 저녁,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는 노천욕탕의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아쉬움의 응어리를 풀어버리려 했지만 그리 쉽게 풀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의 집착이라는 것인 듯 하다. 지붕은 가려져 비록 밤 하늘의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뜨거운 온천물 속에서 서늘한 밤 공기를 마시며 나 스스로에게 걸어놓은 집착의 굴레를 끊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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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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