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

주마간산 일본 큐슈여행기(4)

등록 2004.07.21 06:00수정 2004.07.2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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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불축제(火の 祭り)

a 꼭꼭  덮힌  커튼을 힘껏 열어젖히니 아소산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들어왔다.

꼭꼭 덮힌 커튼을 힘껏 열어젖히니 아소산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들어왔다. ⓒ 김정은

유난히 맑고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한 아침 창가, 커튼을 힘껏 열어젖히니 아소산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들어왔다.


이곳 아소지역은 신화와 전설의 고장이라고 할 만큼 아소산과 관련된 전설과 축제가 많다.

이 고장의 가장 유명한 행사 중 하나로 3월에 열리는 불축제(火の 祭り)는 신들의 결혼을 축복하고 이듬해 들풀의 싹이 잘 돋도록 기원하며 잔디를 태우는 행사다. 비록 결혼하는 신이 아소대명신이냐, 쿠사카베 요시미이냐는 설은 있지만 이 신들은 초봄에는 마을로 내려 와 벼의 풍작을 돌보는 신이 되고, 수확이 끝난 가을에는 산으로 돌아가 산신이 된다.

이 축제는 봄이 되면 이 축제를 통해 산에 있던 신을 다시 마을로 맞이해 올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특히 산 위로 크기가 300m에 이르는 "불화(火)"자가 타오르는 모습이 이 축제의 압권이라고 한다.

일본판 선녀와 나뭇꾼 그리고 한반도 도래인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이곳 전설 중에 불축제의 주인공 중 하나인 쿠사카베 요시미이(草部吉見) 부부 사이에 낳은 아들의 결혼 이야기가 우리나라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와 비슷하여 매우 신기했다. 대략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쿠사카베 요시미이(草部吉見) 부부의 아들이 샘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춤추듯 내려와 수영을 하고 있던 세 선녀를 발견하고 장난기로 소나무 가지에 걸려있던 깃옷 하나를 숨겼다.


당연히 깃옷이 없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는 그와 결혼하여 아들 딸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를 돌보는 여자가 부르는 노래 속에서 깃옷이 숨겨져 있는 위치를 우연히 알게 된 선녀는 바로 깃옷을 찾아내 두 아이를 남긴 채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는 얘기이다.


같은 선녀이긴 해도 한국 선녀는 애들을 데리고 올라가는데, 일본 선녀는 애들을 떼어놓고 혼자만 올라갔다는 차이만 있을 뿐 구성은 매우 비슷해 보인다. 이처럼 닮은 점이 많다 해도 우리나라와 일본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에서 구전되는 전래동화지만 일본의 경우는 신들의 신화(?)로 격상되었다는 점이다. 선녀나 선녀의 남편, 아들 모두 현재 아소신사에서 모시고 있는 신들이니 말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쿠사카베 요시미이를 중심으로 이 아소지역에 있던 이 부족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온 도래인이라는 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 큐슈지역은 한반도에서 온 도래인이 혼슈(本州)지방으로 진출하기 전 터를 잡은 곳으로서 고대 한반도와 연관이 많은 곳이긴 하다. 금속정련기술을 가진 도래인이라면 혹시 가야인은 아니었을까? 그네들의 선녀신화와 우리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비슷했던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나름대로 추측해 보았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보니 어느새 다음 여정을 재촉하는 버스가 호텔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루마와시 원숭이쇼

a 사루마와시 원숭이쇼의 주인공, 슬프고 기운 없어 보이는 애처러운 눈동자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사루마와시 원숭이쇼의 주인공, 슬프고 기운 없어 보이는 애처러운 눈동자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 김정은

여행객을 태운 버스는 아소에서 유명하다는 사루마와시라는 원숭이쇼 극장으로 향했다.

a 사루마와시원숭이쇼 모습(1)

사루마와시원숭이쇼 모습(1) ⓒ 김정은

한창 닛코의 원숭이학교가 우리나라 매스컴에 오르내리더니 일본 곳곳에 원숭이쇼가 많이 생겼다. 그만큼 일본에 원숭이가 많이 서식하기 때문이리라. 닛코 원숭이도 유명하지만 이 쿠마모토 지역에는 금사후 원숭이라는 종이 서식하고 있어 이곳도 원숭이쇼가 꽤 유명하다고 한다.

a 사루마와시 원숭이쇼모습(2)

사루마와시 원숭이쇼모습(2) ⓒ 김정은

원숭이 쇼를 본 개인적인 느낌은 그리 편안하지 못했다.

쇼 자체는 재미있고, 쇼에 출연한 원숭이의 재주도 훌륭했지만 유독 컨디션이 안좋아 연신 실수를 저지르자 성공할 때까지 몇 번씩 집요하게 반복시키는 조련사 때문에 괴로워했던 한 원숭이의 눈동자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주로 난이도 높은 재주를 선보이는, 재주가 많은 원숭이였지만 그날따라 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도 겉으로는 웃으며 은근히 손으로 안보이게 닦달해서 기어코 재주를 넘게 하는 조련사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영화 <혹성탈출>에서 인간을 동물 다루듯 취급하는 원숭이들이 떠오른다.

마치 내가 지금 저 컨디션 나쁜 어린 원숭이가 되어 실수할 때마다 겉으로는 웃고 있는 조련사에게 몰래 꼬집히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슬퍼 보이고 기운없어 보이는 애기 원숭이의 애처로운 눈동자 때문이었을까?

이럭저럭 무사히 원숭이 쇼가 끝난 후 버스는 여행객들을 태우고 다음 장소인 벳부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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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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