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옛추억의 흔적을 이국땅에서 보다

주마간산 일본 큐슈여행기(2)-아소산

등록 2004.07.12 06:14수정 2004.07.1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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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의 칼데라 분지

a 아소 나카다케 분화구로 오르는 케이블카 안내원

아소 나카다케 분화구로 오르는 케이블카 안내원 ⓒ 김정은

자동차를 타고 오르는 아소 외륜산에서 내려다 본 마을의 모습은 바람 한점 없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인다. 이곳이 정말 2004년에도 폭발이 일어난 적이 있던 활화산이 정말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만큼, 눈 앞에는 한가로운 소 떼가 유유이 풀을 뜯고 있는 푸른 초원의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아소산은 지금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엄연한 활화산이다. 아소 5악중 나카다케(中岳)에 오르면 아직도 분화구 속에 매큼한 유황냄새를 내포한 하얀 연기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위험해 보이는데도, 화산 폭발후 화구 함몰에 의해 생긴 동서 18㎞, 남북24㎞나 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칼데라 분지 속 옹기종기 모여있는 7개의 소규모 마을의 평화로움은 순간적으로 여행객들에게 묘한 이질감을 가져다 준다.

그 이질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증을 가슴에 품고 버스는 어느덧, 나카다케의 분화구까지 여행객들을 실어나르는 케이블카 정거장에 도착했다. 정거장은 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수수했다. 예전 우리나라 관광지를 가면 찍을 수 있는 약간 크고 촌스러운(?) 기념 도장과 우리나라의 남산 케이블카가 연상될 정도로 비슷한 크기와 모습의 케이블카 차체, 그리고 케이블카 속 주황색 안내복을 입은 평범한 모습의 안내원이 약간은 어색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니 지금은 물론 볼 수 없지만 왠지 어렸을 적 우리나라 어디선가 본듯한 매우 낯익은 모습이다. 이제는 보기 힘든 추억속의 옛모습을 생각지도 않게 우리나라가 아닌 이웃나라에서 보았을 때 그 묘한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a 유황냄새 뒤섞인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는 아소산 분화구(1)

유황냄새 뒤섞인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는 아소산 분화구(1) ⓒ 김정은

어느덧 케이블카는 정상에 도착했고 분화구를 구경하기 위해 군데군데 대피소가 세워진 곳으로 올라가려니 마침 오늘 날씨가 좋아서 유황가스가 분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분화구에서 가스분출 모습을 보는 건 당연한 것인데 방송을 하는 걸보니 참 유난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소산 분화구 주위는 워낙 날씨변화가 심해서 거의 구름에 가려져 있고 분화구 주위에서 가스가 분출하는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a 아소산 분화구모습 (2)

아소산 분화구모습 (2) ⓒ 김정은

직경 600m, 깊이 130m의 분화구에서 뿜어나오는 유황냄새 섞인 하얀 연기는 지난번 필리핀 활화산, 따알 화산과 규모에서 차이가 난다. 마치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새어나오는 것같은 연기도 물론이지만 분화구 곳곳에는 용암이 사정없이 산허리를 할퀴고 흘러내려간 깊은 흔적이 굵고 깊게 패어져 화산 폭발 당시의 처절함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a 용암 분출시 용앙이 흘러간 흔적들이 선명하다.

용암 분출시 용앙이 흘러간 흔적들이 선명하다. ⓒ 김정은

사람 수만큼 많은 신을 가진 나라

대피소 옆에 초라하지만 우리네 금줄과 비슷한 새끼줄을 두른 이색적인 신당이 보인다.

이러한 신당들은 우리나라 성황당 처럼 일본 구석구석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다보니 지역마다 그네들의 전통이라는 신사에서 모신다는 신만 해도 서로 다른 모습과 종류의 신들로 인해 언제나 바글바글 만원이다.


일설에 이 아소산에는 아소대명신(健磐龍命)이 원래 물이 가득찬 호수와 늪이었던 분화구 한쪽을 발로 차 부수어 물을 흘려 농경지를 만들고,나라를 세웠고 신무천황의 명을 받아 원래부터 이 마을에 살고 있었던 쿠사카베 요시미신(草部吉見神)의 딸과 결혼해서 세력을 확장했다는 전설이 있다.

우리나라 전설과는 달리 그네들의 전설에는 좀 불분명한 역사와 전설과 가족이 뒤범벅 되고 얽히고 섥힌 가계도에 의해 이곳 아소신사에서 모신다는 12신이 탄생되었다. 모두 아소대명신과 쿠사카베 요시미신의 후손들이라는데, 12신이라, 많기도 하지. 이쯤 되면 일본에는 사람 수 만큼 신이 있다는 우스개가 과장된 것만은 아닌 것같다.


a 아소산 구석에 있는 금줄을 두른 독특한 모습의 신당

아소산 구석에 있는 금줄을 두른 독특한 모습의 신당 ⓒ 김정은

그런 이유에서일까? 화산이 터질 위험 속에서 살고 있는 이곳 사람들의 의식은 모두 '신의 뜻대로 식'이다. 화산이 터져 건물이 부숴지고 사람들이 다치는 일이 생겨도 신의 뜻이라는 그들의 의식 저변에 존재하고 있는 신은 각각의 사람들의 생각만큼 각자의 모습과 개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달리 일본의 발달된 화산연구시스템은 화산 폭발시간을 거의 정확하게 맞출 수 있어 화산이 폭발해도 미리미리 대비하기 때문에 그다지 인명피해가 심하지 않다고 하니, 결국 그들이 믿는 것은 수많은 신이 아닌 첨단 과학 시스템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푸른 초원이 천리나 펼쳐진 곳, 구사센리

나카다께 관람을 마치고 자동차는 구사센리(草千里)로 출발했다, 용어에서처럼 푸른 풀밭이 천리나 이어져서 불리워졌다는 이 곳은 중앙에 호수를 축으로 드넓은 푸르른 초지 속에 방목된 소나 말이 유유히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볼 수있게 되길 바랐지만 내리자마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축축한 안개가 모든 것을 가리워버렸다.

짖궂은 날씨를 탓하고 그냥 가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히고 호수가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 깜짝할 사이에 안개 걷힌 푸른 초원에서 뿜어내는 찰라의 아름다움은 또다시 두꺼운 안개로 감춰져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든다. 또다시 찾아온 안개 속에 아쉬움을 묻은 채 자동차는 이번 여행의 숙박지인 아소마찌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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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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