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 불이 났어요"

한 여름 밤의 화재 소동

등록 2004.07.19 10:48수정 2004.07.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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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단위의 휴가와 수련회가 많은 여름이다. 지난 10일 밤 수련회에서 겪은 일이다. 화재사고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다. 씨랜드 참사와 같은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하루종일 천둥과 번개가 치던 지난 10일 오후 7시 5분께 강릉지역의 한 단체회원과 가족 140여명이 수련회를 하고 있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산촌 체험장 주방에 번개에 의한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불은 숙소옆 주방 전기 분배함에서 발생해 진화에 나섰으나 유독연기를 뿜으며 10여분 동안 타올랐다.

화재를 처음 목격한 최아무개(여.강릉시 초당동)씨는 “주방에서 감자를 씻고 있는데 문 가까이서 천둥과 함께 스파크가 일었다”면서 “ 잠시후 타는 냄사가 나 보일러실 문을 열어보니 전기 차단기에서 불길이 일고 있었다”고 말했다.

불이 났다는 말을 전해들은 어른들은 진화를 시도했으나 좀처럼 꺼지지 않고 유독 연기가 퍼지자 건물밖으로 대피해 119에 신고했다.

소화기를 동원한 몇 차례의 시도끝에 불은 꺼졌으나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자 가건물 내부에 불이 붙은 것 아니냐며 주방 뒤에 있는 네 개의 가스통을 옮겼다.

소방서에서는 어떻게 대처하라는 도움말은 없이 확인 전화만 3번 오자 부모들 중 몇이 화를 내기 시작했고 한국전력 강릉지사에도 전화를 걸었다.


"번개를 맞아 화재가 나서 전기가 나갔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질문에 직원의 답변은 “전업사에 전화해 보시죠?”였다.

화가 난 아버지 한분이 “이것 보세요, 번개를 맞아 전기가 나가고 불이 났다면 안전 조치를 취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여기는 어린이들이 수련회를 들어와 있답니다"라고 말했다.


“저희 관할이 아니고요. 전업사에 연락하세요” 무성의하고 답답한 답변에 화가 난 아버지가 “이봐요, 주말 저녁에 영업하는 전업사가 어디 있습니까? 전화받는 분 성함이 어떻게 돼요, 이름이나 알아둡시다”
“예? 김 아무갭니다. 지금 올려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소방차와 한전 관계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들이 묵고 있는 건물 쪽에서 연기가 난다는 것이다.

큰일 났구나! 건물 밖에 나와보니 건물 위로 연기인지 아지랑인지 스물 스물 피어오르고 있었다. 건물 안과 밖 여기 저기를 살펴보니 연기는 아니듯했지만 건물 밖에서 가랑비를 맞고서 불안감에 어린 아이를 안고 선 어머니들의 술렁임은 커져만 갔다.

건물 관리인도 어딜 갔는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불안과 공포의 40분이 지나 어둠이 짙어졌다.

7시 45분께 소방차가 도착했다. 신고한지 37분 만이다. 여기 저기서 원망어린 말들이 튀어 나왔다. 소화기 분말 가루를 뒤집어 쓴 한 사람은 “오는데 시간이 걸리면 어떻게 조치하라고 일러줘야지 전화해서는 상황만 물어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어린아이들이 여기서 밤을 보내야 하는데 안전한지 확인이라도 해주시죠?”
“제때 출동은 한 겁니까?”
현장에 온 이모 소방경은 “ 저희들은 화재 발생 신고 즉시 출동합니다. 상황파악을 위해 전화 드린겁니다”

뒤이어 나타난 한전 직원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일은 한전 관할이 아닌가요. 여긴 청소년 수련 시설인데?”
“시내쪽에 낙뢰로 고압선이 끊어져서 그랬습니다”
“장마철에 비상 근무도 안하나보죠, 고압선 하나에 절절매개”
불끄고 아이들 보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던 부모들의 거친 말들이 여기 저기서 튀어나왔다.

전봇대에서 끊어진 전선을 잇고 전업사 직원들이 불타버린 배전함을 새로 고치고 서야 전기가 들어왔다. 이때 시간이 8시 15분. 화재가 발생한지 꼭 1시간 10분동안 일어나 일이다.

사고가 수습되고 나서 부모들의 한결 같은 말은 ‘그만 해서 다행이다’ ‘한밤중에 일어났으면 어쩔 뻔했나’
자녀들과 동화책을 읽으며 한 여름밤의 추억을 만들려고 했던 이 모임은 너무나 두렵고 서늘한 여름밤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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