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섭리대로 사는 게 건강생활의 비법이다

[내가 만난 아름다운 사람 30] - 황영구 치과원장

등록 2004.08.26 09:32수정 2004.08.2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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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살 만한 곳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보노라면 세상이 각박함을 벗어나 삭막함, 아니 살벌함을 느끼게 한다. 누구를 믿을 수도, 무엇을 믿고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는, 온통 불신의 세상이 된 느낌이다.

다산 생가 여유당에서 황영구 치과원장
다산 생가 여유당에서 황영구 치과원장박도
하지만 세상을 자세히 살피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남몰래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거나,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선행을 베푼 이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 사회가 지탱되고,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필자는 지난해 말 '의를 좇는 사람'이라는 주제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던 중, 한 우국지사가 “평생소원이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을 찾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기사화한 적이 있다.

그러자 많은 네티즌들이 모금을 제의해서 시작한 바, 그 열기는 애초의 예상을 뛰어넘어 불과 12일 만에 목표액 3000만원을 초과 달성했다. 성금을 보내신 1000여 분중에는 익명도 많았다.

익명 기탁자 중에는 ‘힘내십시오’ ‘민족정기회복’ ‘건투하세요’ ‘소원성취’ ‘진실은 반드시’ ‘존경’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승자’ ‘대한민국 만세!’ ‘파이팅’ ‘성공하세요’ ‘한국인의 혼’ ‘작은 소망으로’ ‘진실과 화해’ ‘잘 다녀오세?’ ‘민족정기 부활’ 등 많은 격려의 글을 이름대신 새겨 보내셨다.


또, '촌부'라는 이름으로 "망설이다가 하루 일당을 보냅니다"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모금운동을 벌인 게 미안했다.

미국으로 출국 전날 한 통의 전화를 받은 바, 익명으로 성금을 보낸다면서 잘 다녀오라는 간곡한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마침 그 전화번호가 내 손전화에 남아 있어 귀국 후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성금기탁자 일천여 명을 대표해서 한 번 만나 뵙기를 청했다. 그러나 번번이 다른 분을 만나라고 거절하다가 필자의 끈질긴 청에 교외에 바람 쐬는 조건으로 동행케 되었다.


그는 뜻밖에도 나이 지긋한 치과의사 황영구(53) 박사였다. 그가 안내한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팔당호 언저리에 있는 다산 선생 유적지였다. 필자도 늘 한 번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전남 강진의 귀양지에서 두 아들 학연, 학유에게 여러 편의 글을 주었는데, 폐족 집안 자식으로서의 처신과 아울러 사람으로서 도덕적인 품위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길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 중에서 “재물은 메기와 같다”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의 옷이나 음식, 재물 등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고 쓸데없는 것이다. 옷이란 입으면 닳게 마련이고 음식은 먹으면 썩고 만다. 또 재물은 자손에게 전해 준다 해도 끝내는 탕진되거나 흩어지고 만다. 다만 가난한 친척이나 벗에게 재물을 나누어준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 황 박사도 이 글이 좋아서 다산 선생에게 매료된 것이 아닐까? 내 나름대로 추측하면서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팔당호 강 언저리 나무 그늘에 앉아서 말문을 열었다.

팔당호에서
팔당호에서박도
나만 잘 먹고 잘 살아서는 안 된다

- 평소 자녀들에게 어떤 얘기를 들려주십니까?
"사람은 두 다리를 딛고 살아간다. 그것은 이상과 현실이다. 그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바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약간은 이상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아가라"는 얘기를 해줍니다. 또 자주 하는 말로, "열심히 공부하라" "열심히 뛰어놀아라" "열심히 친구를 도와주라"고 합니다.

특히 친구를 도와주라는 말은 제가 어린 시절 아주 공부를 잘했던 친구가 집안이 어려워서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남의 집에 머슴살이를 하는 걸 보고 매우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이 대목에서는 갑자기 옛날 친구가 떠오르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결코 돈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돈은 ‘정당하게 벌어서 잘 써야 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자기 돈이지만 ‘나만 잘 먹고 잘 살아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저는 큰 부자는 아니지만 의사이기 때문에 다른 분보다 조금 여유가 있을 겁니다. 앞으로 저는 제 재산 일부는 어떤 형태로든 좋은 일에 쓸 예정입니다."

- 살아오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였습니까?
"의사로서 원인 불명의 환자를 제가 연구한 대로 치료해서 좋아질 때입니다. 저는 치과의사이지만 주로 치아를 통한 전신 질환(두통, 요통, 만성피로 등)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 꼭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의학은 경험의 학문입니다. 많은 경험이 쌓여서 하나의 가설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가설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어서 하나의 이론이 만들어지지요. 저는 그동안의 제 경험과 연구한 것들을 후배들에게 가르쳐주고, 자료도 정리해서 남기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학교 다닐 때 별명이 무엇이었습니까?
"'빼빼 장군' '질경이'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지금도 키는 큰 편이지만, 마른 편입니다. 그래서 건강에 더 관심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질경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사람들이 밟고 다녀도 꿋꿋이 잘 자라는 식물이라 제 별명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 현대인의 건강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미국의 클링 하트 박사는 건강의 우선 순위를 영적인 건강, 무의식의 세계, 의식의 세계(정신 건강). 육체적인 건강 순으로 둡니다. 그만큼 건강을 의사에게 의지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며, 환경문제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 것이 건강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며, 제 치료의 핵심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별명이 '빼빼장군'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별명이 '빼빼장군'이라고 했다.박도
- 평소 ‘나라 사랑’이랄까 ‘애국관’에 대해서 한 말씀 들려주세요.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애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다소 여유가 생긴 사람은 어려운 이를 도와주는 게 사람 사는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다산 생가 들리고 산소도 참배하고, 다산 후손이 한다는 찻집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일화까지 곁들여 듣다보니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당신 병원에 한 번 들러달라는 말씀에 ‘가능한 가지 않겠다’고 대답하자, 그게 좋겠다고 웃음으로 화답하면서 굳이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배웅해 주었다. 황 박사는 부인 윤계현(48) 씨와 고3인 따님, 고1의 아드님을 둔 다복한 가장이었다.

세상은 살 만한 곳.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아름다운 사람을 보는 것은 이 세상의 가장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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