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삐'에 쏘여 죽을 뻔 했던 여름휴가

우리집, 여름휴가 이야기(2)

등록 2004.07.25 18:36수정 2004.07.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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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아내를 만나던 해부터 지금까지 여름휴가는 줄곧 캠핑을 갔다. 연애시절 야영을 하면서 텐트 안에서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못 잊은 탓인가? 아이들까지도 야영생활을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비교적 사람이 많지 않은 계곡이나 산으로 데리고 다녔더니 여름방학만 되면 들떠 있다. 그렇게 20년 동안 한해도 빠지지 않고 캠핑을 하다보니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많이 생긴다.

a 얼마나 물이 차가운지 5분이 지나면 고추가 얼어 붙는다.

얼마나 물이 차가운지 5분이 지나면 고추가 얼어 붙는다. ⓒ 박철


우리집 큰아들 아딧줄이 4살이고, 넝쿨이가 2살이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그때 우리가 경기도 화성군 남양에서 살았을 때였는데, 여름휴가를 강원도 정선으로 갔다. 정선에서 4년 6개월을 살다가 왔는데, 정선을 잊지 못해서 다시 찾아간 셈이다.

이번에는 다른 두 가족이 함께 동반하게 되었다. 승합차 한 대에 세 가족이 아이들을 주렁주렁 달고 강원도 정선, 사람도 살지 않는 오지로 휴가를 떠났다. 휴가지는 예전에 정선에서 살 때 봐두었던 곳이었다.

너른 강변에 세 가족이 텐트를 쳤다. 식사는 부부가 한 조가 되어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모두 낭만적인 분위기에 고무되었다. 아이들은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신나게 뛰어 놀고, 어른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지난날 연애담을 얘기하면서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고, 부부갈등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밤에는 모래바닥에 벌렁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배가 출출하면 옥수수를 쪄먹기도 하고 감자를 삶아 먹기도 했다. 아무런 걱정 근심이 없었다. 그렇게 3박 4일의 여름휴가는 차질 없이 진행되는 듯했다. 휴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휴가가 하루밖에 남지 않은 것을 모두 아쉬워했다. 그동안 아이들은 살갗을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렸고, 사흘째 집단생활을 하면서 세 가족은 형제와 같이 가까워졌다.


마지막 하룻밤을 더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기로 했다. 마지막 밤을 어떻게 하면 더 근사하게 보낼 것인가를 궁리하였다. 그런데 더 근사하게 보내려고 했던 마지막 밤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a 맛 있게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맛 있게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 박철


아침을 먹고 어른들은 모래바닥에 자리를 깔고 비스듬히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애들이 보이지 않았다. 개울가에서 자기들끼리 놀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이따금 개울가 쪽으로 시선을 돌리곤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더니 개울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내쳐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 집 아딧줄이 물에 빠진 것이었다. 아내는 한걸음에 달려가 물 속에 뛰어들었다.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여자가…. 그러더니 아이를 안고 나오는 것이었다. 아이는 물을 잔뜩 먹고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

아내 뒤를 쫓아갔지만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딧줄 머리가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것을 아내가 제일 먼저 발견했던 것이다. 아내는 본능적으로 아이들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아내가 아딧줄의 등을 두드려주자 물과 먹은 것을 다 토해냈다. 참 고마웠다. 여섯 명의 아이들은 그 일이 있은 후 겁을 집어먹고 물 속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오전에 있었던 일을 잊고 평온을 되찾았다. 남자 셋이 텐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밭고랑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데 다리 사이로 벌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며 성가시게 구는 것이었다. 작은 벌들은 일명 '땡삐(땅벌)'였다.

내가 다른 두 친구에게 살그머니 일어나라고 말했다. 내 생각은 밭고랑 구멍에서 땡삐가 들락날락거리며 성가시게 구는데 그 구멍을 막아버리면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았다.

'이 놈들 어디 골탕 좀 먹어 봐라!' 하고 진흙을 개서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며 냅다 구멍을 향해 진흙덩이를 던졌다. 명중이었다. 정확하게 구멍을 틀어막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땡삐들이 구멍을 뚫고 쏟아져 나오는데 나를 향하여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땡삐들이 무지막지하게 나를 향하여 총돌격을 하였다.

a 기사 속의 그 시절 여름 휴가. 아딧줄과 다은이. 아딧줄은 지금 필리핀에서 다은이 남매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아름다운 인연이 아닌가?

기사 속의 그 시절 여름 휴가. 아딧줄과 다은이. 아딧줄은 지금 필리핀에서 다은이 남매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아름다운 인연이 아닌가? ⓒ 박철


"아이구, 나 죽네! 아이구…."

그렇게 십여분동안 일방적인 땡삐의 공격을 받았는데 머리 부분을 제일 많이 쏘였고, 등, 팔, 다리 등 온 몸에 집단공격을 받았다. 얼마나 아프던지 송곳으로 인정 사정 없이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벌에 쏘인 데마다 두드러기가 생기더니 점점 커지고, 어질어질하고 몸의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은 야영장소에 그대로 남기로 하고 친구 한 사람이 운전을 하고 정선읍내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실을 향해 걸어가는데 어지러워서 걸을 수가 없었다. 혈압이 심각할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간단한 응급조치를 받고 병실에 누워 링거 주사를 맞는데 혈압이 떨어져 링거 주사액이 역류하며 들어가지 않았다. 온몸이 나른하게 가라앉는데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대로 죽는구나.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찾아오는구나. 그럼 내 어머니와 아내와 아이들은 누가 돌봐주지?'

정신이 혼미해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이틀 동안 먹은 음식물을 토해내고 뒤로 배설까지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후 3시쯤 병원에 실려 갔는데 밤 9시쯤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났더니 정신이 모아지고 살만해 졌다.

a 물 속에서 기차놀이. 아이들이 다 자라 저들끼리 잘 논다.

물 속에서 기차놀이. 아이들이 다 자라 저들끼리 잘 논다. ⓒ 박철


다시 친구가 운전을 해서 우리 일행이 야영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밤 9시가 지나도록 내가 나타나질 않자 모두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를 보고 엉엉 운다. '과부가 될 줄 알았을까?' 말을 겨우 하기 시작한 두 살배기 넝쿨이가 모래사장이 떠나가도록 수백 번도 더 아빠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고 한다.

휴가 마지막 밤을 어떻게 하면 더 근사하게 보낼 것인가 하는 생각은 아딧줄의 물에 빠졌던 사고와 내가 땡삐에 쏘인 일로 인해서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래도 휴가 마지막 밤이 아쉬웠던지 밤늦게까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지고 개울물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갈 수만 있다면 또 12년 전 그 자리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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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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