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는 칼만두국을 먹으러 가야 한다

한 그릇만 먹어도 넉넉해지는 칼만두국 파는 분식집

등록 2004.07.26 19:31수정 2004.07.26 21:1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오는 날 먹음직 하죠? 이거 한 그릇 다 먹으면 배가 너무 불러서 걷지도 못해요.
비오는 날 먹음직 하죠? 이거 한 그릇 다 먹으면 배가 너무 불러서 걷지도 못해요.한성희
만두 이야기3


비 오는 날이면 뜨끈한 칼만두국 한 그릇이 먹고 싶어진다.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는 날, K씨와 밖을 내다보며 잡담을 하던 중이었다. 얘기를 나누다가 보니 그는 상당한 미식가였다. 부부가 맛있는 곳이라면 다른 나라까지 찾아 가서라도 먹는다는 요리 애호가였다.

영주 쇠고기와 횡성 쇠고기 맛이 최고라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인제 막국수 집 얘기까지 나왔다. 여태 먹어 본 막국수 집 중에 가장 맛있는 곳이 그 집이었는데 지나 갈 때마다 찾아 보고 싶어도 찾을 길이 없어서 서운하다고 하니까 대뜸 알아듣는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는 허름한 집 말이죠? 나도 거기 가 봤어요.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는데 단골 됐지요.”
“그 집 볼거리도 많았지요? 족제비 박제부터 재밌게 생긴 나무들 수집한 것도요.”
“할머니가 옆에 앉아서 먹는 방법을 자상하게 설명해 주던 것도.”
“백김치도 일품이었죠.”

K씨 부부는 맛있는 것을 찾아 전국을 다녀 봐서 어디에 맛잇는 집이 있다 하면 메모해 뒀다가 달려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파주로 이사온 지가 몇 년 안 된다면서 잘 아는 맛있는 곳을 추천해 달란다.

그러고 보니 맛있는 집을 추천해 달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파주의 맛있는 집을 연재해 달라는 사람도 있으니 맛있는 먹거리가 중요한 생활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오리 고기는 어디 있는 유황오리집이 직접 길러 고기가 연하고 주인이 직접 재배하는 청정 채소로 만드는 반찬이 깔끔하다, 매운탕은 어느 동네 무슨 집이 맛있다, 생선찜은 어느 골목의 어떤 집이 홍어회랑 여러 가지 생선과 야채로 낸 국물과 맛이 기가 막히다 등등 말을 하다가 유명한 돼지부속집 ‘장군집’ 얘기까지 나왔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만두집도 물론 빼놓지 않았다.

한참 먹는 얘기에 열을 올리다가 보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니 이런 날은 뜨거운 만두국이 딱 알맞다.


“점심 때도 됐는데 당장 먹으러 갈래요?”
“그럽시다. 그런 집은 지역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밖에 알 수가 없지요.”

K씨는 만두 맛있는 집은 여태 못 봤다면서 만두 만큼은 직접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미식가에 요리 솜씨도 일품인 것 같다. 얘기를 하다보니 잘 모른다면서도 파주의 유명한 음식점은 거의 다 섭렵해 봤으니 가히 미식가답다. 어느 집 고기가 좋은 거까지 다 꿰고 있으니 말이다.

차로 한 20여분 거리를 가면서도 음식 얘기에 열을 올리던 나는 K씨의 경상도 사투리에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 봤다. 경상도 출신이면서도 음식 기호가 나와 비슷한 데가 있어서 이상하다 생각해서였다.

“내가 대구이긴 한데요. 어릴 때 우리 옆집에서 이북 사람이 피난 와서 살았죠. 그래서 녹두 부침에 만두에 항상 얻어 먹다 보니까 이북 음식이 입에 맞아요. 지금이야 다르지만 그때만 해도 대구에선 그런 거 잘 안 해 먹었거든요. 남편도 마찬가지로 학교 다니면서 친척집에 살았는데 그집 부인이 이북 사람이라서 입에 길들여진 거구요.”
“경상도 출신인데 만두를 즐기고 잘 만든다 해서 이상하다 생각했죠.”
“한 기자는 여기 출신이라면서요?”
“저도 부모님이 흥남 출신이라 이북 음식이 입에 배어 있죠. 이북 음식이 담백하잖아요. 젓갈도 별로 사용 안하지요. 만두에 식해에 어릴 때 먹던 것들이죠.”
“가자미 식해?”

미식가답게 알기도 잘 안다. 사실 식해라는 음식은 일반 사람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던 것인데 김용이 냉면집 차리면서 곳곳에 지점을 내고 식해를 메뉴에 올리면서 많이 알려지긴 했다.

예전엔 식혜와 혼동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게 뭐냐고 묻는 사람도 많이 봤다. 그러나 그 냉면집에서 나온 식해는 정통 함경도식은 아니라서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에 맛보지 못했던 식해를 먹는 기대에 어긋났던 생각이 난다. 가자미 식해는 아버지가 즐기던 음식이고 언니와 동생들은 오징어 식해를 즐겼다.

문산극장 입구 허름한 ‘밀밭분식’ 집에 들어서니 1시가 훨씬 넘었는데도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안에 자리가 있냐는 물으니 있다고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비어 있는 상이 두 곳이다.

“그래도 늦게 와서 운이 좋은 편이네요. 평소엔 거의 자리가 없어요.”
“이 집은 진짜 잘하는 집인가 보네. 칼국수도 직접 밀어서 하네?”
“적어도 30분은 기다려야 해요.”

이 집을 처음 온 건 지난 99년 문산 수해를 취재하러 왔을 때였다. 수해가 난 지 오래됐어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문산 초등학교에 수용된 수재민들을 취재차 왔다가 점심 때가 됐다. 당시 김준회 기자가 맛있는 만두집이 있다고 해서 여기로 왔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이 집의 구조는 달라진 게 없다.

그 때에 음식을 주문해 놓고 20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자 같이 갔던 성질 급한 발행인이 폭발했다.

"뭐야. 이렇게 느려서 언제 먹고 가란 거야?”

안내한 김준회 기자가 민망한 얼굴이 됐다. 그러고도 족히 15분은 훨씬 지나서 만두가 나왔다. 그동안 발행인의 얼굴은 12번 이상 붉으락푸르락 칠면조처럼 변했다. 성질 급하기로 따지면 우리 사무실 사람들을 따라갈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언젠가 단골로 다니던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오래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다들 한꺼번에 일어나서 다른 식당으로 가버린 적도 있을 정도다. 친구 희경이가 한번은 같이 식사를 했다가 나중에 기막혀 하면서 하는 말.

“난 세상에 그렇게 빠른 사람들 처음 봤다. 반도 안 먹었는데 벌써 후다닥 다 먹고 기다리니 더 먹을 수가 있어야지. 나오면서 거울 잠깐 보는데 다들 어디로 없어져서 나와 보니 벌써 차에 타고 기다리더라. 나 먹은 거 체 하겠다.”
“습관이라 잘 몰랐는데.”

이 정도로 성질 급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기본이 30분이라는 걸 모르고 이 만두집을 처음 와서 기다리자니 화가 날 만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화를 내며 기다리다가 나온 만두를 한 개 먹어 본 사람들의 표정은 달라졌다. “맛있긴 맛있네” 하는 말과 함께 후딱 먹어 치우던 첫 기억.

이윽고 커다란 냉면 대접에 그득 담긴 칼만두국이 나오자 K씨의 표정이 환해진다.

“어휴, 양이 많기도 하다. 난 이런 칼국수 좋아해. 이 집은 만두피도 직접 반죽하고 밀어서 만들고 다 손으로 일일이 만드네요. 이런 집 요즘 찾기 힘들죠.”
“직접 만두를 만드는 곳도 만두피는 사다 쓰더라고요. 집에서 만들어 먹던 만두맛은 이 집 외엔 아직 본 적이 없어요.”

손으로 손수 쓴 차림표가 주인의 성격을 말해 주는 듯.
손으로 손수 쓴 차림표가 주인의 성격을 말해 주는 듯.한성희
벽에 손으로 글씨를 써서 붙인 차림표를 보라고 하자 K씨가 빙긋 웃는다. 차림표의 메뉴가 많긴 해도 여기 온 사람들 99%가 만두를 주문하니 만두집으로 바꿔도 좋을 듯 싶은데 주인은 바꾸지 않는다. 요즘 분식집이라는 상호를 붙인 식당도 드물어서 오래 전 분식집이 유행할 때 간판 그대로를 고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 집 주인은 아직 내가 <오마이뉴스>에 만두 기사를 쓴 것을 모른다. 단골로 항상 다녀도 인사를 하는 정도지 그 이상의 대화를 할 시간도 없으려니와 나 같은 단골이 한두 명이겠나 싶기도 하다.

“한 기자 덕분에 좋은 집 알게 됐고 좋은 대화 나눴네.”
“저도 비 오는 날에 같이 만두 먹으러 올 사람 있어서 좋았어요. 혼자서 여기까지 만두 먹으러 오진 않을 테니까요.”

지난 번 이 만두집에 대한 기사를 썼더니 많은 독자들이 위치를 가르쳐 달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홍보 기사가 아닌 이상 기사에 나온 이상의 정보는 쓸 수 없기도 했지만 메일로는 가르쳐 줬었다.

만두 파동 이후 예견된 것처럼 이곳 저곳에서 개최하는 만두 먹기 시식 행사를 취재 다니면서 뒷맛이 씁쓸했던 생각이 난다. 절대 확장 않겠다는 이집 주인 고집처럼 이 자리 이곳을 고수하면서 나처럼 이집 만두를 좋아하는 단골들에게 변함없는 지금의 만두 맛을 보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련
기사
- "손님이 더 많아져서 바빠 죽겠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4. 4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