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축한 구 미국공사관, 무늬만 한옥?

국적없는 건축물로 변형시켜... 준공허가도 나기 전에 '개축식'

등록 2004.07.28 21:28수정 2004.07.2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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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서울시 중구 정동 미국 대사관저에서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대사 부부와 이명박 서울시장 외 50여 명의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 유형문화재 132호 구 미국공사관' 개축식이 열렸다.

구 미국공사관은 조선 고종 때 건물로 중구 정동 미국대사관 내에 위치해 있다. 1883년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처음 전통한옥으로 지어졌다가 1900년경 부분적으로 수리했으며 내부도 일부 개조했다. 1883년부터 1905년까지는 한국내 미국정부 사무소로 사용했다.

a 개·보수 공사하기 전의 구 미국공사관(출처 문화재청)

개·보수 공사하기 전의 구 미국공사관(출처 문화재청) ⓒ 황평우

이 건물은 1883년 당시의 외관이 상당 부분 남아 있고, 서울 사대문 안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공사관 건물이라는 점, 또 외교 건물로는 유일하게 한국 건축양식이 남아있어 그 가치가 인정된다고 한다.

1884년 8월 14일 미국공사 Foote씨는 민씨 일가로부터 2200불을 주고 한옥 2채를 매입했다. 한 채는 공사 관저(현 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로 사용하고, 한 채는 공사관으로 사용되었다. 이 두 건물의 매매체결은 1887년 한성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 영구히 미국의 소유가 되었다.

a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구 미국공사관. 허바드 대사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구 미국공사관. 허바드 대사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황평우

구 미국공사관은 최근까지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었다. 서울시는 구 미국공사관을 지난 4월 6일 1800년대 말의 한옥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한미 외교사적 의미가 크다는 점에서 미국대사관의 동의를 얻어 유형문화재로 지정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외교공관 지역은 우리 영토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건축법이나 문화재보호법은 주재국의 법률안을 따른다는 외교협약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추진했다고 밝혔다.

미국대사관은 구 미국공사관 건물이 낡아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제15조에 따라 지난 2003년 다음과 같이 '현상변경' 을 신청했다.

보수 범위


(1)건축
외벽: 조적벽(붉은 벽돌) 해체 후 재설치
전면 계단부분 해체 후 한식계단 설치
남측면 출입문 벽체 및 동측면 벽체 해체 후 재설치
기와 70% 교체(교체기와는 주문제작 설치)
기타 변형된 도리와 보 교체 및 해체 후 재설치
서측면 보일러실 목재 교체
동측면 창고 반자 재설치
기타 수장 및 마감 해체 후 재설치

(2) 전지
침실: 스탠다드 조명방식
거실: 벽걸이등, 샹들리에 추가 설치
부엌 및 식당: 조명기구 교체
외부 배선 정리


(3)설비
냉난방: 냉난방 유닛 설치
보일러 교체 위생도기 교체 등


a 한국과 미국의 이해 당사자들(이명박, 허바드)이 준공식을 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이해 당사자들(이명박, 허바드)이 준공식을 하고 있다 ⓒ 황평우

공사기간은 2003년 7월 18일부터 2004년 5월 10일 준공허가가 날 때까지 약 10개월이 소요되었으며, 공사비는 4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시·도 지정문화재이기 때문에 공사비를 보조를 할 수도 있다고 했으나, 미국대사관 측은 자비로 개·보수 공사를 마쳤다.

개축식에서 미국 측의 Peter Bartholomew씨는 구 미국공사관의 역사 및 건축적 의미를 설명하며 "정동 일대와 미국대사 관저는 한국의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지정문화재이기 때문에 구 미국공사관의 개·보수 공사 비용을 미 국무부가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8일 개축식에서 공개한 구 미국공사관은 내부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마루 밑에 공조시스템을 만들었으며, 우리 전통 한옥이라기보다 국적 없는 건축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개축된 구 미국공사관은 21세기 새로운 형태의 집에 불과하며, 한옥의 가치를 서양 인테리어의 부속물로 전락시켰다.

a 서양 인테리어의 소모품으로 전락한 우리 한옥 구조

서양 인테리어의 소모품으로 전락한 우리 한옥 구조 ⓒ 황평우

뿐만 아니라 미국대사관은 '현상 변경' 내용대로 개·보수를 끝낸 뒤 정해진 법률에 따라 당연히 그 결과물(개·보수 내용과 적법하게 공사했다는 내용)을 관할 관청인 중구청과 서울시에 반드시 보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미국대사관은 구 미국공사관 개축식 당일인 28일 현재까지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즉 준공허가가 아직 나지 않은 건물에서 준공허가권자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반드시 보고할 의무가 있는 지정문화재 소유자, 즉 미국정부를 대신한 토머스 허바드 주한미국대사는 사람들과 언론사 기자들을 불러모아 잔치를 벌인 것이다.

개축식 현장에서 만난 미국 측 건축담당 엔지니어 김 아무개씨에게 '현상 변경'의 합법성과 개·보수가 전통한옥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김씨는 "대답하기 싫다"고 말했다. 미국대사관 측 공보담당자 전 아무개씨에게 거듭 확인을 요구했으나, "업무시간 지났다", "점심시간이다"라며 피하고 있어 아직까지 뚜렷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29일 중구청에 이를 확인한 결과, "아직 완공보고서와 현장 확인을 거치지 못했다"며 "설계사 측에 완공보고서를 제출하라고 독촉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다면 준공허가가 난 이유는 무엇이냐"라고 묻자, 담당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시 확인해 보겠다"라고만 말했다.

미국은 덕수궁 터 미국대사관 신축계획 포기해야

Peter Bartholomew씨는 구 미국공사관의 역사 및 건축적 의미를 설명하며 "정동일대와 미 대사 관저는 한국의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지정문화재이기 때문에 구 미국공사관의 개·보수 공사 비용을 미 국무부가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의 중요 문화유적인 덕수궁 터(경기여고 자리)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미국은 덕수궁 터에 미국대사관 신축 포기 선언부터 먼저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도 덕수궁 터에 미국대사관 신축 의지를 접지 않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의 문화재 관리 기구인 문화재청은 "덕수궁 터를 사적으로 가지정 또는 지정하라"는 시민단체의 요청에 "외국 소유 토지 및 건축, 식물에 대하여 문화재로 지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2001년 구 미국공사관을 문화재로 지정한 서울시는 문화재청의 입장과 정반대가 된다. 중앙정부 부처와 지방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 외국 소유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한 서울시가 잘못된 정책을 했는지, 문화재청이 잘못했는지 분명히 따져봐야 한다. / 황평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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