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원사지 천년 전의 숨소리

2000여명이 넘는 승려들의 독경소리로 강당골로 돼

등록 2004.07.29 14:02수정 2004.07.3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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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알려진 만큼 알려진 백제의 사찰.

연중 20여만명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


보원사.

100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화재와 홍수로 쇠락해 억새와 며느리 밑씻개 등 가시넝쿨과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낀 부도탑과 오층석탑, 함부로 나뒹구는 주춧돌, 한때 금당지붕을 덮고 있었을 문양이 새겨진 깨어진 기와조각과 고즈넉한 기운만 남고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는 해묵은 터로 변한 보원사.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보원사지라고 부른다.

그런 와중에 변치 않고 여전한 것이 하나있다. 태초로부터 흘렀을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개울이 그것이다.

영화로운 시절에는 개울을 가로질러 홍예다리를 놓고 승려와 뭇사람과 우마가 지나다녔다고 하나 이젠 겨우 흔적만 남아 옛일을 짐작케 할뿐이다.


개울에는 위태롭게 놓인 징검다리가 있으나 비가 조금만 와도 신발을 벗어들고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고 물 속을 텀벙거리며 지나야 한다.

사색에 잠기는 사람들은 징검다리가 나와있는 날에도 일부러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징검다리에 걸터앉아 천년 소리를 듣는다.


도란거리며 흘러가는 물소리에서 옛 소리를 찾는다.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산골짝에 울려퍼지던 그 시절에는 조석으로 공양을 짓기 위해 닦은 쌀뜨물로 아침저녁이면 물이 흐려진 채 흘려갔다고도 한다.

보원사지는 32번 국도를 따라 서산시 운산면 소재지에서 들어가거나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서산 나들목에서 운산방면으로 되짚어가 운산면 소재지로 들어서서, 해미방면으로 1km 정도 진행하다가 그 길을 버리고 '서산마애삼존불' 선전 간판을 보고 좁은 길로 들어서면 제법 규모가 큰 고풍저수지를 옆으로 끼고 터널을 지나 1.5km 정도 들어가면 삼거리길이 나오고 그곳이 강당골 초입이다.

보원사가 있던 강당골은 들어서는 초입부터 돌부처가 중생을 맞는다.

골짜기로 조금 들어서면 왼쪽으로 보이는 산 중턱에 초·중·고교의 사회와 역사 교과서마다 사진과 함께 소개되는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국보 84호로 지정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상이 있다.

서산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 유물
서산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 유물안서순

이 마애불은 10m가 넘는 화강암에 새겨진 것으로 중앙에 본존불인 여래입상과 그 좌우측에 반가사입상과 보살입상을 각 1구씩 양각됐다.

본존불인 여래입상은 해의 위치에 따라 표정이 변하는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마애불 중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 마애삼존불은 1959년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연재 홍사준(1905-1980) 선생에 의해 오랜 잠에서 깨어나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강당골을 지나 보원사지에 이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용케도 세월을 버틴 당간지주(보물103호)다.

당간지주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개울을 건너면 금당터와 보원사를 창건했다는 법인국사 보승탑(보물105)과 5층석탑(보물104호), 법인국사 보승탑비(보물106호)가 금방 눈에 띄고 며느리 찔레 가시덩쿨이 어지러운 돌무덤을 살펴보면 거기 부서진 탑신과 주춧돌 등이 지닌 세월만큼 이끼를 안고 나뒹굴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영화로움은 찰나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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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다보면 보원사지 바로 옆에 있는 농가의 축대가 주춧돌과 탑신으로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순간 허망함이 극에 달해 어지럼증이 날 만큼 지난 무심한 세월이 분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무지한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오랫동안 보원사지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버려진 땅이었다. 30여년 전만 해도 밭을 갈다가 불상을 줍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부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금동여래입상과 철조여래좌상 등 많은 불교 유물이 그렇게 출토된 것이라고 하니 그 옛날 절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보원사는 백제시대 당나라로부터 불교문화를 수입하던 통로에 위치해 있어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수준 높은 불교예술이 꽃을 피웠다.

삼국시대 당나라를 가는 나루라 해서 지금도 '당나라 당'자 '나루 진'자를 써서 '당진'으로 불리는 곳이 30리 이내에 있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원효가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득도를 했다는 곳이 그 인근에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또 여름대로 가을과 겨울은 역시 그 나름대로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 천년 사찰 보원사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것 같은 그곳은 여전히 범상한 기운에 서려있어 사색 속에 철학이 깃들게 한다.

보원사지의 금당터를 발굴한다고 한다. 또 어떤 국보급 유물들이 있어 천년동안의 긴 잠에서 깨어날지 사뭇 기대되기도 하고 가슴 한구석 허망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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