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등잔불을 켜보세요

혼으로 등잔박물관을 만든 부부를 만나다

등록 2004.07.29 17:15수정 2004.07.3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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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돌코랭이(제주도 등불)

돌코랭이(제주도 등불) ⓒ 김영조

달이 차고 다시 이울고
가슴 삭히는 세상일들로
가슴속 등불 야위어 가면
향긋한 등잔 기름 세 방울
깨끗한 심지 하나 가슴에 넣고
나의 이데아
그 곳엘 간다 <화려한 외출(손동욱) 중에서>


세상살이는 가슴 삭히는 일이 참 많습니다. 손동욱 시인은 말합니다. 달이 차고 이울고, 또 차고 이울고 하면서 우리의 가슴 속 등불은 야위어갑니다. 너무나 힘든 세상입니다. 희망을 잃고 한강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이때 당신의 가슴 속 등불은 환한가요? 등불은 희망입니다. 그 등불이 꺼졌을 때 우린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린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으면 그 등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하여 등잔에 기름을 넣습니다.

예전에 우리 어렸을 적 잠자다 문득 깨서는 어머니가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님은 길고도 매서운 추운 겨울나기를 위해 해진 내복 기우시느라 밤잠을 못 주무셨던 것입니다. 어두운 등잔 불빛 아래서 해진 팔꿈치나 무릎 부분을 꿰매주셨습니다. 이런 추억에 서린 마음을 달래려 등잔을 수집하고, 드디어는 사재를 털어 박물관을 세운 노부부가 여기 있습니다. 그 분들을 찾아 용인의 '한국등잔박물관'을 찾아갑니다.

등잔의 종류

인류에게 있어서 문명을 가져다준 가장 중요한 원동력을 불로 보는데 아무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 불은 어둠을 밝히고, 난방, 요리, 그릇 만들기 등의 쓰임새가 있습니다.

a 부싯돌, 부시주머니

부싯돌, 부시주머니 ⓒ 김영조

그 중 어둠을 밝힌다는 것은 사람이 환한 대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활동할 수 있도록 하여 삶의 폭을 그만큼 넓힌 것입니다. 예전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솔불, 횃불, 촛불, 등잔불 등을 사용하여 세상을 밝혀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집 안에서는 밤에 선비들이 글공부와 함께 소중히 여겼던 4예(4藝), 즉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며, 그림을 그리고, 꽃을 꽂는 일을 하기 위해서 등잔은 필수품이었습니다.


'등잔(燈盞)'은 불을 붙여 어두운 곳을 밝게 하는 기구로 형태별, 쓰임별, 재질별로 그 종류를 나눌 수 있는데 등잔박물관의 자료를 인용하여 구분해 보겠습니다.

형태별 종류


형태별 종류는 종지형, 원통형(圓筒形), 탕기형(湯器形:국그릇 모양), 호형(壺形:병모양) 따위가 있습니다.

이중 호형, 탕기형, 원통형 등잔은 도자기로 만든 것이며, 주로 석유를 사용한 19세기말부터 나왔던 등잔입니다.

종지형 등잔은 석유를 사용하기 이전에 참기름, 들기름, 콩기름, 아주까리기름(피麻子), 동백기름, 면실유(棉實油:목화씨기름) 등의 식물성 기름과 상어, 고래, 정어리 등의 생선기름, 그리고 돼지기름, 굳기름(소고기를 끓여서 위에 뜨는 기름을 굳혀 만든 기름)과 같은 동물성 기름을 연료로 사용한 것입니다.

a 각종 등잔들(왼쪽부터 목등경과 도자등잔, 목등잔, 유기등잔, 은입사희자문무쇠촛대)

각종 등잔들(왼쪽부터 목등경과 도자등잔, 목등잔, 유기등잔, 은입사희자문무쇠촛대) ⓒ 김영조

종지형 등잔은 기름을 붓고 심지를 박아 사용했는데 심지는 솜, 삼실, 한지 등을 꼬아서 만들었으며, 삼국시대부터 19세기말 호형 등잔이 만들어질 때까지 오랜 기간 동안 등잔의 기본 형태로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온 걸로 추정합니다.

옥석으로 만든 등잔으로 궁중에서 사용한 것은 석등잔 또는 옥등이라 불렀고, 절에서 사용한 것은 선등(禪燈), 무속인들이 사용한 작은 형태의 인등(引燈)과 대형으로서 일반이 사용한 현등(懸燈)이 현재 남아 있습니다.

쓰임에 따른 종류

쓰임에 따른 종류는 우선 실내용과 실외용으로 나누는데 실내용에는 등가와 등경, 촛대, 좌등이 있으며, 실외용에는 제등, 괘등, 횃불로 구분합니다.

1. 등가(燈架)와 등경(燈檠)

등잔은 보통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등잔을 얹어 사용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등경은 등잔을 적당한 높이에 얹도록 한 '등잔걸이'입니다. 대표적인 등경의 모양은 넓적한 밑받침에 3∼4개의 걸이용 단(段)이 있는 기둥이 세워져 필요한 높이의 단에 등잔걸이를 걸치고 그 위에 등잔을 얹어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a 각종 목등잔들

각종 목등잔들 ⓒ 김영조

걸이용 단이 없이 맨 위에 등잔을 얹도록 만든 것을 등가(燈架)라고 하는데 보통 종지형 등잔보다 호형 등잔을 얹어서 많이 사용했습니다. 밑받침은 재떨이를 겸해서 사용하는 실용성이 나타나지만, 간혹 연꽃 모양의 새김을 해서 한껏 멋을 낸 경우도 있습니다.

이 등경과 등가는 각 가정에서 필요에 따라 직접 만든 것이어서 다양한 모양으로 재미있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2. 촛대

의식행위에 쓰여진 것은 밥그릇을 엎어 놓은 모양의 받침 위에 대마디 모양, 염주모양, 장구모양의 기둥이 서고, 그 위에 짧은 초꽂이 촉이 달린 받침접시가 있어 초를 안전하게 꽂도록 한 모양입니다.

일상생활용 촛대는 초꽂이 뒤에 바람을 막는 불후리(화선:火扇)가 달려 있어 여기에 박쥐, 나비, 둥근원, 쌍원, 팔각형, 파초형, 부채꼴 등의 무늬를 화려하게 장식하였습니다. 그리고 촛대를 편리하게 사용, 보관할 수 있도록 분해와 조립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a 각종 촛대들

각종 촛대들 ⓒ 김영조

수초(手燭)는 집 안에서 간단한 용무를 보기 위해 이동할 때 편리하도록 만든 촛대입니다. 특히 궁중의 예식에 사용된 커다란 두석대촛대(豆錫大燭臺)는 2m가 넘으며, 기둥의 중간을 나사못으로 연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3. 좌등(座燈)

주로 상류사회에서 사용된 실내 조명기구로 틀은 대부분 나무나 철을 사용 직사각형으로 만들고, 그 안에 촛대나 기름등잔을 넣어 사용하였습니다. 간접조명 방식으로 '바닥등'이라고도 하며, 실내의 적절한 곳에 놓여 방 전체를 은은하게 비춰줍니다. 용도에 따라 서등(書燈)과 장등(長燈)으로 나눕니다.

서등은 주로 글을 읽는 데 사용하였으며, 조선 후기 석유가 수입된 이후부터는 자기로 만든 백자서등(白磁書燈)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장등은 나무로 기둥을 만든 사각, 육각, 팔각의 직사각형 등입니다. 다양한 조각으로 장식하고 옻칠이나 붉은 칠(朱漆)을 한 화려한 형태를 보입니다.

4. 제등(提燈)

제등은 대나무나 쇠로 살을 만들고 겉에 종이나 헝겊을 씌워 안에 불을 넣어서 달아 두기도 하고 들고 다니기도 하는 등입니다. 안에 등을 넣은 등롱(燈籠), 초를 넣은 초롱(燭籠), 궁중의 빈전(殯殿)이나 포도청의 나졸들이 밤거리를 순찰할 때 쓰며, 박등, 도적등(조적등:照賊燈,도적을 잡을 때 사용한다는 뜻)이라고도 부른 조족등(照足燈)이 있습니다.

초롱 중 청사와 홍사를 씌운 것은 청사초롱, 홍사초롱이라 부르는데 청사, 홍사초롱은 신분에 따라 구분을 하기도 하였으며, 주로 예식용으로 사용하였습니다.

a 제등과 월하정인도

제등과 월하정인도 ⓒ 김영조


5. 괘등(掛燈)

괘등에는 네모반듯한 사방등(四方燈), 양각등(羊角燈: 양의 뿔을 고아서 만든, 투명하고 얇은 껍질을 씌운 등), 요사등(料絲燈:유리구슬을 세공하여 장식한 등), 상가(喪家)의 발등거리와 부엌등, 들보에 달아놓는 현등(懸燈)이 있습니다.

6. 횃불

횃불은 싸리나무나 겨릅대, 갈대 등을 모아 밑둥을 묶어서 만들며, 불에 좀더 오래 탈 수 있도록 기름이나 관솔을 넣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재료에 따른 종류

나무로 만들어 등경걸이가 있는 목등잔, 놋쇠로 만든 유기등잔, 철재등잔, 청동촛대, 도자등잔이 있습니다. 또 화려하게 빛깔들인 밀초로 혼례 때 쓰는 화촉, 휴대용 조명기구인 제등, 상류층 실내의 조명기구인 좌등(坐燈), 삼국시대에 주로 사용하던 토기로 만든 토기등잔 등이 있습니다.

특히 '은입사무쇠촛대'는 무쇠 바탕에 일일이 은실을 박아 만든 촛대로 만든 이의 장인정신이 돋보입니다. 촛대기둥 위에 회전할 수 있는 화선(火煽)의 이음새를 달아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육각형의 화선과 촛대의 이음새 부분에 '희(囍)'자 문양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또 분해와 조립이 가능하였으며, 사대부 집안의 사랑방에서 사용했던 매우 고급스러운 촛대입니다.

혼으로 등잔박물관을 만들다

a 등잔박물관 전경

등잔박물관 전경 ⓒ 김영조

이 박물관을 지은 김동휘 관장님은 평생을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해온 의사입니다. 관장님은 병원건물을 처분해 얻은 돈 전부를 투자해 40여 년 동안 모아온 등잔 200여점과 사발, 도자기 등 민속품 300여점과 함께 1997년 등잔박물관을 열었다고 합니다. 750여 평의 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3층, 건평 280여 평 규모로 들어선 박물관은 작은 박물관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관장님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수원 화성을 닮았다는 박물관에 들어서서 잠시 기다리니 백발의 노부부가 들어옵니다. 그 중 한 분은 이 등잔박물관을 지은 김동휘 관장님, 한 분은 김동휘 관장님의 부인이며 재단법인 등잔박물관문화재단 장영숙 이사장입니다. 두 분 모두 온화한 이미지를 보이는 것은 어떻게 살아오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 어떻게 보통 사람들이 하지 않는 등잔 수집을 하시게 되었나요?
"어머니와 등잔에 대한 아련한 추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나도 그게 밑바탕이 되었겠지요. 좀더 구체적인 계기는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온 데 있을 것입니다. 수원행궁 복원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그 터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는 걸 막고 복원하는 데 온힘을 쏟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등잔에 문화와 역사와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여행을 가도 등잔에 미쳐서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놀 때 나는 등잔을 수집하러 다녔습니다."

- 박물관은 개인이 짓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일 텐데….
"얼마큼 모아지고, 병원을 그만두면서 내가 모은 이 등잔들은 내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보고, 우리 문화의 위대하고 아름다움을 깨닫길 바라는 마음으로 박물관을 지었습니다. 마침 병원 건물을 판 목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a 김동휘 박물관장과 정영숙 이사장

김동휘 박물관장과 정영숙 이사장 ⓒ 김영조

- 박물관을 짓고, 운영하면서 어려운 일들은?
"정말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박물관을 운영하기는 참 어려울 듯합니다. 선진국의 경우는 박물관의 운영비를 관이나 기업들이 60% 이상 지원해줍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하면 박물관 숫자가 턱없이 적은데도 지원은 거의 없습니다. 수집가가 자신이 정성들여 수집한 문화재를 내놓는 것도 큰맘을 먹어야 하는 일인데 운영까지 하라는 나라가 이 나라입니다.

우리는 급여를 주는 직원을 2~3명으로 최소화하고, 나와 아들, 손자까지 온 식구가 자원봉사를 하며, 절약 운영하고 있지만 7년째 매년 2~3천만원씩 적자입니다. 최근 로또복권 수익금으로 지원을 해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운영비가 아닌 특별기획전 비용으로만 가능하다 하여 고민중입니다.

하지만 탓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박물관 영구보존 자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와 내 아내가 가지고 있던 돈과 온 식구들이 내놓은 돈으로 경기도의 지원 아래 재단법인 등잔박물관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노력중입니다."

- 그럼 유산 상속은 없나요? 혹시 자손들의 불만은?
"재물을 유산으로 남긴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부모가 자손에게 분명한 철학을 이어주고, 사회공헌을 한 흔적을 남겨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내 손자는 매달 문화재단 설립자금으로 자진해서 일정액을 내놓고 있어요."

우리 사회에도 이런 훌륭한 분이 계시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더구나 자손들까지 한 마음으로 박물관을 가꾸고 있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 박사와 대산문화재단 신창재 이사장이 생각났습니다.

- 그래도 이사장님은 혹시 관장님께 불만이 조금은 있을 것 같은데….
"저도 좋으니까 따랐어요. 바가지를 긁을 생각은 안 나고 그저 등잔이 좋아지니 부창부순가 봐요. 그리고 우리의 훌륭한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해져요."

- 수집하실 때 있었던 이야기 한 토막만 들려주세요.
"등잔을 수집하러 인사동에 자주 들리곤 했었어요. 그러면 인사동 골동품점의 주인들은 싼 등잔만 찾는 내게 '등잔박사 왔구먼'하고 비아냥대곤 했습니다. 한 번은 흙이 묻은 허름한 등잔 하나를 발견하고 얼만지 물으니 '아 그거, 500원만 내슈'라고 했어요. 집에 가져와 닦고 또 닦고 지금 '아름다움 속의 등잔'에 비싸게 산 것 옆에 나란히 전시돼 있지요."

a 아름다움 속의 등잔들

아름다움 속의 등잔들 ⓒ 김영조

관장님은 연세가 많으신데도 정정한 모습으로 할 말이 참 많은 듯했습니다. 등잔에는 어떤 민속품에도 없는 아름다움이 있는데 이 등잔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옛날엔 등잔불 밑에서 할머니에게 들었던 옛날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 하면서 긴긴 겨울밤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겨울밤은 깜깜하고 차가웠지만 등잔불 밑은 언제나 훈훈했다고 말합니다.

또 등잔에는 아름다움이 있고, 역사성이 있으며, 이야기가 있고, 철학이 있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관장님은 "가슴에 불이 꺼지면 오장육부가 깜깜해지고, 눈이 어두워진다. 따라서 가슴엔 늘 불을 켜고 살아야 한다"라고 강조하십니다. 한 일본인 관광객이 "등잔엔 양지와 음지가 같이 있는 철학이 있는 물건"이라고 했다고 귀띔해 줍니다.

한 번은 관람객이 어떤 등잔이 가장 좋은지 물었는데 관장님은 그 관람객을 밖으로 끌고나와 등잔 앞에서 그 얘길 하면 안 된다고 했답니다. 비교하면 다른 등잔이 섭섭해 할 수 있으며, 모든 등잔의 가치는 똑같다고 생각한다는 뜻이었습니다. 500원에 산 목등잔을 양반이 썼던 비싼 용머리등잔 옆에 나란히 놓은 관장님의 뜻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등잔걸이나 등잔받침 밑바탕은 우묵하게 패어져 있을 뿐 별로 치장을 하지 않는데 받침 주변에 화사한 연잎 무늬 조각이 있고, 중앙부에는 '부귀다남(富貴多男)'이라는 네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는 등잔이 있습니다. 관장님은 이 등잔을 보고 1천 번을 '부귀다남'이라고 외쳐보다가 결국 '부귀는 다 남의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등잔박물관에 가면 한 가지 덤이 있습니다. 지하 문화공간에 현재 '세계인간가족전'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관장님 부부가 세계를 다니면서 인간사진을 찍은 전시회입니다. 여기엔 관장님의 인간과 평화이야기가 넘쳐납니다. 모습만 다를 뿐 다 같은 인간인 세계인이 함께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잔잔한 호소가 들려옵니다. 문화공간 들머리에 있는 오래된 장승도 한참동안 나의 시선을 붙들고 말았습니다.

a 박물관의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정원

박물관의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정원 ⓒ 김영조

하영삼 경성대 교수에 따르면 한자 '主(주)'자는 갑골문에서 불이 타오르는 등잔불의 심지를 그렸다가 소전체(小篆:중국 진시황 때 이사가 만든 십체서의 하나)에서는 아랫부분에 등잔대가 더해져 지금처럼 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지'가 '主'의 원래 뜻이며, 심지는 등잔불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가운데'라는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슴에 등잔불을 켠다는 것은 자기 중심을 가지고 산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또 '머리는 차게 가슴은 뜨겁게'라고 했는데 등잔불을 켜둠으로써 가슴은 늘 뜨거운 채로 있게 되지 않을까요? 또 옛날이야기의 맹인처럼 나를 위한 등잔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앞길을 밝힐 수 것이면 더 좋겠네요.

그런데 그 등잔에 필요한 기름은 돈도, 명망도, 맛있는 음식이어서도 안 됩니다. 오로지 사랑만이 가슴 속의 등잔을 보듬어낼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득할 때 내 가슴 속의 등잔은 언제나 환하게 켜있을 것입니다. 우리 이 사랑의 등잔을 하나 가지러 등잔박물관에 가보지 않을래요?

욕심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도종환의 '등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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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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