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명창 '김옥심'을 아시나요?

전설적인 소리꾼 김옥심 계승자, 남혜숙· 유명순 음반 나와

등록 2004.07.26 16:53수정 2004.07.2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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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재야명창 남혜숙, 유명순의 국악세계" 음반 표지

"재야명창 남혜숙, 유명순의 국악세계" 음반 표지 ⓒ 신나라

지난 2002년 7월 언론에 '인간문화재 선정 비리의혹 수사착수'라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됐다.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 신성해야할 인간문화재 선정에 무슨 비리가 있었다는 것일까?

내용을 들여다보면 검찰이 문화재청이 2002년 6월 18일에 지정예고한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김숙자류의도 살풀이춤)의 심사과정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일보>에는 '인간문화재 제도 개선을'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왔다.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인간문화재) 선정을 둘러싼 잡음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보유자 지정 제도 및 운영 실태를 전면 재검토하자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전통문화인은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전통문화인 대부분은 항간에 떠도는 금품로비, 연줄심사 등 의혹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이 올해 5월 19일 개최한 ‘무형문화재 제도 운영 효율화 및 보존, 전승 활성화 워크숍’에서는 그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형문화재 기, 예능 보유자의 허술한 관리 체계를 비롯, 각 종목 전수교육조교 및 이수자 등 보유자 후보의 인, 지정 과정의 개선 필요성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인간문화재 지정 과정에서의 문제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고, 초야에 묻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초야에 묻힌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경기민요의 전설적인 소리꾼 김옥심(1925~1988)이다.

옥구슬 굴러가는 듯하다고 하여 방울목이라 불리던 김옥심은 일제강점기 말기와 해방 이후 최고의 소리꾼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김옥심은 그렇게 인정받았지만, 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한 재야명창으로 1988년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났다.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 김옥심. 그는 영원한 재야명창으로 잊혀진 하나의 전설로만 남아 있어야 하는 걸까? 오로지 인간문화재로 지정을 받아야만 인정되고, 인간문화재 계보소리만 전승 가치로 인정받는 오늘의 사회현실은 우리를 그토록 감동시켰던 김옥심 계열의 소리를 거부하는 비극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김옥심의 유일한 제자였던 남혜숙(62), 유명순(63) 명창을 통해 김옥심의 혼을 잇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인간문화재 지정받은 사람에게만 제자들이 몰리는 세태 속에서도 끝까지 김옥심의 곁을 지키고, 어머니 모시듯 따르며, 체계적인 소리 공부를 한 두 사람의 음반이 이번에 신나라(대표 정문교)를 통해 발매되었다.


김옥심은 문화재 지정에서 탈락된 직후 줄서기의 세태를 보면서 남혜숙, 유명순에게 다른 스승을 찾아가 배울 것을 권유했지만 끝까지 그 두 사람은 김옥심의 곁을 지켰다. 그야말로 의리의 제자들이다. 그들은 김옥심에게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부터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함께 살며, 소리소문을 듣고 찾아온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힘쓰고 있다.

남혜숙과 유명순은 김옥심에게서 12잡가, 시조, 가사, 서도잡가, 휘모리잡가, 산타령 등을 배웠다. 남혜숙의 목구성은 서도음색이 묻어나는 특징이 있으며, ‘소춘향가’를 잘 부르고, 덜미청(덜미소리: 판소리나 잡가의 창법에서, 크고 높은 소리를 배 속에서 바로 위로 뽑아내는 소리)으로 굴리는 소리는 김옥심 못지않은 기교가 있다는 평을 듣는다.

반면 유명순의 목은 판소리의 영향을 받아 시원시원하고, 초기명창처럼 자연적인 단단한 소리를 낸다는 평을 듣지만 애절함은 남혜숙보다는 덜하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들은 예순 중반의 나이여서 목이 많이 쇠한데다가 김옥심으로부터 배운 잡가 일부와 목 쓰는 법을 잊어버려 예전처럼 맑고 높은 소리를 낼 수 없다. 그러나 김옥심에게서 배운 속청(세청(細聽), 속소리 : 주로 서울·경기 지방 정통 음악의 여창(女唱)에 쓰는 창법의 하나. 비단실을 뽑아내는 듯한 가느다란 목소리를 말한다)쓰는 법, 혹은 덜미청 사용하는 기교 등을 여전히 짚어낸다.

이 음반에 수록된 곡은 ‘소춘향가’, ‘집장가’, ‘제비가’, ‘장기타령’, ‘금강산타령’, ‘영변가’, ‘제전’, ‘육칠월 흐린 날’, ‘회심곡’, ‘탑돌이’ 등의 10곡이 있다. 그런데 두 분은 어째서 김옥심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가볍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 김옥심 선생에게서 소리를 배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창배 선생님께 소리를 배우러 갔다가 김옥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선생님의 소리를 듣고 그만 푹 빠져버렸어요. 그 뒤 김옥심 선생님의 소리에만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한눈 팔 수 없을 만큼 선생님의 소리는 너무 좋았어요. 타고난 목이란 감탄사만 절로 나왔습니다. 저희는 감히 흉내 내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 김옥심 선생이 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는데도 곁을 떠나지 않으셨는데.
"저희는 그저 선생님의 소리가 좋아서 배운 것이기 때문에 곁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저 선생님의 소리를 배우고 싶었을 뿐이지 다른 욕심은 없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처럼 보살펴주시는 정에 저희는 엄마라며 따랐었으니까요.”

두 분은 오로지 소리에만 그것도 김옥심의 소리에만 욕심이 있을 뿐 다른 명망이나 돈에는 초월한 분인 듯하다. 그저 선생님의 소리가 좋아서, 어머니처럼 보살펴준 정이 좋아서 그랬을 뿐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신나라는 돈도 되지 않을 이 음반을 왜 내게 되었을까? 자못 궁금증이 생기는 대목이다. 자본주의 논리에 충실한 기업의 생리상 이 음반의 발매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신나라는 일제강점기 때 나온 SP음반을 꾸준히 계속 내놓고 있다. 신나라는 돈은 안 되더라도 값어치 있는 음반은 놓치지 않고 내놓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신나라 이태규 상무이사에게 왜 이 음반을 내게 됐는지 물었다.

- 어떻게 이런 잊혀져가는 분들의 음반을 내게 되었나요? 돈은 안 될 텐데요.
"신나라도 물론 기업이니까 돈을 벌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음반사를 하고 있는 이상 기념비적인 음반을 발매하는 것은 정말 의미가 있죠. 특히 국악계에도 실력있는 분들이 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해 재야음악인으로 묻혀 고통 속에서 사는 경우를 많이 보았고, 우리 신나라는 그 소리를 보존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임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이었던 김옥심의 소리는 아니더라도 그 소리의 맥을 잇는 남혜숙, 유명순의 소리세계를 담아두는 것은 정말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이런 음반을 계속 낼 계획인지요.
"물론입니다. 이 사업은 정말 값어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간문화재 지정은 받지 못하고 잊혀졌어도 실력있는 국악인들을 발굴하여 소개해 나갈 계획입니다. 인간문화재의 지정은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꼭 지정받아야 할 사람이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문화재의 지정이 한 국악인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르겠지만 이런 음반의 제작이야말로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 그것이 그분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씻어주고 달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명창의 소리가 이 시대에 전승되는 다른 소리들과 다를지도 모른다. 지금 판소리 명창들의 소리가 90년대 초반 전설적인 5명창의 소리와 많이 다른 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두 명창의 소리는 오히려 초기명창들의 소리와 더 가깝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전승체계에 좀 더 가까이 있다는 남혜숙, 유명순 소리를 듣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소리에 다가가는 의미있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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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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