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기업도시, 기업 아닌 '공공주도'로 이뤄져"

[토론회] 기업도시와 경제정의...건교부 관료 등도 참여

등록 2004.07.30 20:40수정 2004.07.3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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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30일 오후 민주노총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업도시와 경제정의' 토론회. 조명래 단국대 교수(가운데)는 이날 토론회에서 전경련의 주장과는 달리 성공한 기업도시는 공공주도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30일 오후 민주노총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업도시와 경제정의' 토론회. 조명래 단국대 교수(가운데)는 이날 토론회에서 전경련의 주장과는 달리 성공한 기업도시는 공공주도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전경련이 원용하는 해외 기업도시 사례들은 근본적으로 잘못됐거나 아전인수격으로 해석되고 있다."

도시 및 지역학을 전공한 조명래 단국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30일 민주노총과 대안연대가 마련한 '기업도시와 경제정의'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 참석해, 전경련의 기업도시 추진방안에 대해 이같이 일갈했다.

전경련은 기업주도의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해 일본의 도요타시, 스웨덴 시스타 사이언스시티, 프랑스의 소피아앙티폴리스 등을 모범 기업도시 모델로 들었는데, 이들 도시 대부분이 민관 협력 혹은 지방자치단체 등 관(官) 주도로 건설됐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8일 전경련이 주최한 ‘기업도시 건설을 위한 기업과 지자체의 협력모델 방안'이라는 토론회에서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업도시가 성공하려면 기업중심의 자발적인 개발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기업도시 추진 방식, 전경련 주장과 정반대..."공공 주도로 건설됐다"

하지만 조 교수가 전경련이 원용한 기업도시들을 실증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도시는 처음부터 공공부문이 건설을 주도했고, 탈규제 방식도 아니었다고 한다. 도요타시의 경우 도요타 자동차의 유치과정에서 무려 6년 동안이나 지역주민의 반발에 부닥쳐 공동체 원리에 따라 난제들을 풀어나갔다고 그는 설명했다.

프랑스의 '소피아앙티폴리스'도 마찬가지. 조 교수에 따르면 유토피아 이론가(라피테 파리국립공과대 교수)의 제안을 기반으로 시작된 소피아앙티폴리스 건설은 지역상공회의소와 민관협력기구가 주도를 했고,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가 조건부 지원을 내세워 적극 개입했다고 한다. 조 교수는 "소피아앙티폴리스가 탄력을 받으면서 발전하게 된 것은 중앙정부가 적극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전경련이 모범 모델로 제시한 스웨덴의 '시스타사이언스파크' 또한 스톡홀름의 인구가 줄어들자 기업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톡홀름 시가 주도해서 만든 시라고 했다.

조명래 교수는 "이처럼 전경련이 얘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인프라와 토지는 적극적으로 공공기관이 개발했다"며 "전경련이 여태까지 얘기해온 것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전경련의 주장과는 달리 기업도시의 조성이 중앙정부나 민관협력 시스템에 의해 주도됐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변창흠 세종대 교수도 동의했다. 변 교수는 국내 산업도시와 일본의 도요타시, 핀란드의 울루시 등을 비교분석했더니 전경련의 주장처럼 기업도시의 계획, 개발, 소유, 운영 등 전권을 기업이 도맡는 경우는 한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성공적인 기업도시의 특성은 기업과 주민이 도시발전의 역사를 공유하고 주민의 자치가 중심되는 것 등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며 "도시의 소유가 아닌 협력적 운영, 기업의 지역사회를 위한 기여 등을 이들 기업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기업도시'는 전근대적 용어..."디트로이트 등 기업도시 대부분 녹슨 도시로 전락"

'기업도시'(company town)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전근대적'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기도 했다. 조명래 교수는 기업도시의 정의에 대해 "포디즘(Fordism,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 수직적 기업 네트워크를 갖는 생산활동이 집적된 도시를 기업도시라고 한다"며 기업도시라는 개념에 가장 적합한 대표적인 도시가 미국의 디트로이트라고 말했다.

그는 전경련이 모범 사례로 드는 도시들은 학계에서는 마셜리언 신산업지구, 테크노폴리스, 인텔리전트 지역, 사이언스파크 등으로 불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이들 기업도시들은 대부분 사양길을 걸었고 녹슨 도시로 전락했다"면서 "그런 한물간 개념을 가지고 시대를 앞서가는 정책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배근 건국대 교수도 "기업도시 개념은 상당히 낡은 개념"이라며 "최근에는 기업도시라는 것이 추진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업도시 건설비용 조달할 기업 있나" 가능성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도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업도시 논의 자체가 '거품'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와 관심을 모았다. 당장 기업도시 건설에 투입돼야 할 재원, 수십조원을 조달할 만한 '역량'을 가진 기업이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전경련 쪽이 제시하고 있는 500만평 규모의 기업도시를 건설하려면 준농림지 평균지가(20만원)를 기준으로 할 때 토지수용비용만 1조원, 이후 개발비용에는 28조원 가량을 쏟아 부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기업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기업도시 추진이 가능한 것인가를 따져볼 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며 "오히려 전경련이 제시한 문안을 보면, 기업도시 논의를 규제철폐 등 우리 사회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풀어가려는 수단으로 삼는 것 같다"고 전경련의 기업도시 제안 의도에 의구심을 피력했다.

그는 "출자총액제한제도나 노동유연성 강화 등은 기업도시 차원이 아니라 국민적 대타협의 차원 속에서 제기돼야 한다"며 "기업들의 불만을 우회적으로 반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도시 논의의 이면에는 재벌에 대한 전면적인 규제철폐 의도가 숨어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혹을 근거로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삼성과 정부의 유착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 소장은 "기업도시라는 것은 전경련, 특히 삼성경제연구소의 프로젝트라고 본다"고 못박은 뒤, "나도 대기업 구조본에 있는 임원들을 만나지만 삼성 관계자 이외에 다른 기업도시에 우호적인 임원은 한명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기업도시 만드는데 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완화해야 하고 부채비율을 왜 400%까지 늘려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며 "기업도시는 궁극적으로는 재벌 규제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기 위한 재계의 일관된 노력"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건교부 "기업도시 졸속 추진, 부정할 수도 없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박광서 건교부 신도시기획과장도 참석했는데, 그는 이 자리에서 기업도시 특별법 마련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에 일부 동의해 눈길을 끌었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 과장은 "발제자가 건교부가 기업도시를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했는데, 상황을 보면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다"며 졸속 추진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자신의 발제문에 명시된 '기업도시 500만평 개발시 투자 18조원, 일자리 15만개 창출'의 근거를 제시해 달라는 질문이 나왔을 때 "전경련이 제시했을 때 15만개 일자리 창출한다는 것으로 참고로 넣었다, 확인해야 한다"고 답할 정도였다.

박 과장은 기업도시 추진원칙과 관련 "중앙정부와 민간, 지방정부 등 여러 주체들이 서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우리도 그런 입장에 있다"며 전경련쪽의 기업주도 건설 제안을 전면 수용하지는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또한 기업도시 건설로 발생하게 될 개발이익 환수 문제에 대해서는 "도로나 상하수도 등 국가가 부담해 왔던 인프라에 기업이 어느 정도 참여하도록 의무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개발이익의 기업독점을 허용하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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