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건물의 딱딱함은 언제나 위협적이다!조미영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닌 탓에 심신이 피곤했지만,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도시를 살펴보기로 하고 안내 책자를 펼쳤는데 내용은 달랑 반쪽!
"네덜란드 정부기관이 모인 행정중심지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던 이준 열사 묘소가 있다. 볼거리로는 미니어처 마을 마두로담이 있다."
이 정도로 요약 가능하다.
벌써, 오후를 훌쩍 넘긴 시간이라 멀리 갈 수는 없고 근처로 나갔다.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블록을 빠져나와 길을 건너니 상가가 보인다. 좁은 골목길과 오래된 건물들이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닮았다.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이며 여유가 생긴다.
현대식 고층 건물들 사이에만 가면 경직되는 내 몸의 습성 탓이다. 그러나 이미 상가는 문 닫을 준비로 분주하고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는 게 나을 듯싶다. 발걸음을 돌려 숙소 근처 슈퍼마켓으로 갔다.
초과된 호텔비용 때문에 간단한 요깃거리로 저녁을 해결할 생각이다. 유령도시처럼 썰렁하던 이 곳 거리가 깔끔한 정장차림의 사람들로 분주하다. 퇴근시간이 되어 건물을 빠져 나온 직장인들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여의도 같다. 순간 너무도 편안한 차림에 가방을 멘 내 모습이 건물유리에 투영되어 보였는데 이때처럼 어색한 느낌이 든 것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