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문(왼쪽), 이기민 자매박도
갑자기 집안에 생기가 돌았다. 옆집 노씨 아주머니도 아이들 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이들을 반겨 맞았다. 그러면서 이제는 사람 사는 동네 같다고 좋아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니 '오뉴월의 손님'이라기보다는 산에서 내려온 요정처럼 예쁘고 귀여웠다.
일찍 결혼해서 자녀를 빨리 키워 일찌감치 며느리 사위를 본 친구들이 이즈음 손녀 손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얘기가 빈 말이 아닐 듯했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부모에게 빨리 손자 손녀를 안겨드리는 일이라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닐 게다.
어린 시절은 시골에서 자라야
사실 내가 사는 동네뿐 아니라, 산골 마을에는 아이들을 보기가 드물다. 집집마다 노인들만 한둘이 사는 집이 대부분이다. 어쩌다가 내 집에 놀러온 이도 노인이요, 논밭에 일하는 이도 노인들뿐이다.
지난해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 마을의 맹사성 고택에 갔을 때, 집을 지키는 종손은 당신이 예순 아홉인데도 동네에서 제일 젊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세 가구도 모두 여섯이 사는데 50대 이후다.
시골에 젊은이들이 드물다 보니 어린 아이들을 볼 수가 없다. 노씨 아주머니는 "마당 빨랫줄에 갓난애 기저귀 널린 걸 본 적이 한참 되었다"고 그 새 달라진 세태를 푸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옛 어른들이 "아이들이 있어야 웃을 일이 있다"고 말씀하신 바, 마을에 아이들이 없으니 웃을 일도 별로 없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내 집 마당의 잡초도 아이들이 뛰놀면 이렇게 무성히 자라지 못할 텐데, 올 들어 세 번이나 뽑아줘도 며칠만 지나면 풀밭이라 이즈음에는 내가 손들고 잡초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시골 인구, 특히 젊은이와 아이들이 격감하다보니 마을에는 활기가 없고 초등학교들이 문 닫는 곳이 해마다 속출하고 있다.
현재 운영되는 시골 초등학교도 전교생이 20, 30년 전보다 3, 4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온갖 특별 교실이 다 생겨났다. 그래도 학생들이 해마다 줄어서 곧 문을 닫아야 할 형편에 이른 학교도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