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사정권이 고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 기본자산과 <부산일보> < MBC> <부산MBC> 운영권을 강탈했다는 사실을 직간접으로 증명하는 사례는 많다.
김씨의 장남인 김영구 전 조선견직 회장을 비롯한 유족들과 부일장학회, 부산일보 및 MBC, 부산MBC 관계자들의 증언이 대표적이다. 또 강탈과 정수장학회 설립과정의 진상을 밝히는데 참조가 될 만한 각종 문서들도 공개돼 있다.
이 문서들은 '자명 김지태선생 전기간행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행한 평전 <문항라 저고리는 비에 젖지 않았다>에 모두 공개돼 있다. 권근술 <한겨레> 전 사장이 대표위원으로 참여한 전기간행위원회는 장남 김영구씨, 3남 김영주씨를 비롯 김형윤, 이문수, 이상룡씨 등이 참여했다.
중앙정보부 강탈과정 적극 개입 시사 자료도
그중 1962년 당시 김씨를 조사, 구속했던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 박용기 대령이 1년여 뒤 김씨에게 보낸 사죄 편지는 강탈과정에 중앙정보부가 깊숙이 개입됐음을 직접 보여준다.
박 대령은 1963년 김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회실정을 알았다면 김 사장님과 저와의 관계가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 당시 그렇게 조종한 인간들에게 휩쓸려들지도 않았으리라고 믿습니다"라며 김씨 구속과 재산포기 각서를 받는 과정에 권력세력의 배후가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또 김씨가 1971년 7월 26일 김현철 5.16장학회 이사장 앞으로 진정서 형식의 문서로 부산일보와 부산MBC를 비롯해 MBC 지방국을 다시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씨는 자신이 재산포기 각서를 쓴 경위를 상세하게 덧붙였다. 당시 세 언론사는 경영난으로 방매한다는 소문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시기이다.
김씨는 5.16장학회에서 아무 응답이 없자 같은 해 8월 7일 김현철 이사장 앞으로 다시 진정서를 보냈다. 김씨는 "1962년 계엄사령부 법무관실에서 고원증씨가 미리 작성한 양도서류에 날인을 강요당해, 쇠고랑을 찬 손으로 본의 아닌 날인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은 부산 사회의 민심과 여론을 보아 절대로 제3자에게 매각하는 일이 없도록 강조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부산일보 전 임원들은 1988년 10월 '부산일보 등의 소유권 원상회복'을 국회에 청원하기도 했다. 그 청원서에는 김영삼, 이기택, 정상구, 서석재, 최형우, 박관용, 정재문, 김광일, 문정수, 김정수, 김정길, 노무현, 허재홍 등 부산 출신 국회의원 전원이 소개의원으로 서명 날인했다. 당시는 부산일보 노조의 편집권 독립투쟁으로 부산일보 경영권 양도 문제가 다시 제기됐던 때이다.
1993년 3월에는 김씨의 장남 김영구 전 조선견직 회장과 3남 김영우 전 삼화고무 회장이 유족을 대표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선친의 명예회복과 부일장학회 이름 회복, 이사진 선임권 회복 등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정부 출범 후 제출된 이 탄원서에서 유족들은 "선친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서라도 정수장학회의 이름을 부일장학회로 바꾸고 장학회의 이사선임권을 유족에게 돌려달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5개 문서의 전문이다.
■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 박용기가 1963년 고 김지태씨 앞으로 보낸 편지
김 사장님! 김 사장님에게 필을 드니 무어라고 먼저 필두를 돌려썼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니, 저 자신 그 당시가 정말 꿈같기만 합니다. 좀더 사회경험과 사회 실정을 알았다면 김 사장님과 저와의 관계가 그렇게 될리는 만무하였으며, 그 당시 그렇게 조종한 인간들에게 휩쓸려 들지도 않았으리라고 믿습니다.
군대 생활 17년간 일선 지구만 헤맨 탓인가 싶습니다. 저 자신 그같은 불구의 몸으로 있다가 나온 후, 김 사장님을 직접 상면하여 과거지사를 사죄할까 했으나 너무나 죄송스러워 접근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며칠 전 비원 파티장소에서 조시형 의원을 상면하여 김 사장님께서는 저에게 대하여 나쁜 인상이 아니란 것을 듣고 용기를 얻어 일필을 들었습니다.
사람이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몸, 저 자신 김 사장님과 언제든지 한번 상면할 기회를 얻어 지난 과거지사이기는 하나 마음 속 자신 이야기라도 한번 하였으면 하는 생각 태산 같습니다. 후일 상면의 기회를 바라면서 영감님의 건투를 소원하겠습니다.
■ 고 김지태씨가 1971년 7월 26일 김현철 5.16장학회 이사장 김현철 앞으로 보낸 진정서
본인의 소유이던 한국문화방송주식회사를 비롯하여 부산일보사, 부산문화방송, 부일장학회(기본 재산 : 부산 시내 토지 10만 평, 현 시가 약 50억원) 등을 관리함에 있어서 장학 사업을 비롯하여 신문방송 사업으로 국가 사회에 공헌함이 지대함을 심사(深謝)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최근 경영난으로 부산일보사와 부산문화방송국을 비롯하여 지방국을 방매한다는 소문이 사회에 떠돌게 된 것을 심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하여 세론이나 정부의 논란도 있으니 사회의 공기인 언론사업체를 상품처럼 방매한다는 비난의 여론상 중지하는 것이 숭고한 오일륙장학회의 현명하신 처사인 줄로 사료합니다. 만약 경영이 곤란하시면 외람하오나, 창설자의 책임감에서 본인이 인수하여 경영개선으로 과거와 같이 활발히 운영하여 국가 사회에 이바지함으로써 오일륙장학회의 정신이 영구히 계속될 것입니다.
이로써 부산일보사 및 부산문화방송에 대한 창설자 본인과 오일륙장학회간에 어색한 여론도 해소될 것이오니 신속히 선처하시기를 경망(敬望)하나이다. 경백(敬白) 이상.
■ 고 김지태씨가 1971년 8월 7일 김현철 5.16장학회 이사장 김현철 앞으로 다시 보낸 편지
1971년 7월 26일자 진정서에 대하여는 그간 배려중(配慮中)인 줄 사료하오나 참고 자료로서 사건 당시의 경위서와 당시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이었던 박용기씨의 서신을 첨부하여 추가 제출하오니 신중히 검토하시어 민주사회의 공정한 처리를 바라며 그 결과를 1971년 8월 15일까지 답하여 주시기 경망하나이다. 경백. 1971년 8월 7일 김지태
1. 1962년 당시 중앙정보부 부산월 20일 지부장 박용기씨에 의하여 본인이 부산형무소에 투옥되어 군재(軍裁)의 공판이 진행 중, 동년 6년 20일 계엄사령부 법무관실에서 고원증씨가 미리 작성한 양도서률르 지참하여 날인을 강요당하고, 쇠고랑을 찬 손으로서 본의아닌 날인을 하게 되었음.
2. 그후 1963년 본인 사건을 일으킨 박용기씨로부터 "그 당시 조종한 인간들에게 휩쓸려 저질렀다"는 사과의 서신을 받고 참 억울하였으나 본인은 시종일관 침묵을 지켜왔던 것입니다.
3. 그러나 본건이 국회의사록에 남아 있고, 금년 6월 오일륙장학회의 동아일보 지상 해명서와 금번 방매설 등으로 또 다시 불미스러운 사회여론이 재발하였으니 오일륙장학회의 명예와 본인의 신변에 대한 어색한 여론을 진정시키고자 진정서를 제출한 것입니다.
4. 본건이 정계나 사회의 물의 없이 조용히 처리되기를 바라며 특히 부산일보 및 부산문화방송은 부산 사회의 민심과 여론을 보아 절대로 제3자에게 방매함이 없도록 재차 강조하는 바입니다.
■ 부산일보사 전 임원들이 1988년 10월 국회에 낸 '부산일보 등의 소유권 원상회복' 청원서
저희는 부산일보사에서 근무하다 1962년 동사가 오일륙장학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언론계를 떠나야 했던 불우한 전직 언론인과 사원입니다. 1960년 사일구 혁명 당시만 해도 부산일보는 부산문화방송과 함께 자유당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국민의 알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는 용기 있는 신문이었고, 당시의 발행인 김지태 사장 역시 가장 존경받는 언론 기업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김지태 사장이 옥중에서 쇠고랑 찬 손으로 정치군인들이 내민 양도증서에 날임함으로써, 1948년 이래 자신이 14년간 심혈을 기울여 키워온 부산일보사와, 만 4년 동안 막대한 사재를 들여 가까스로 궤도에 올려놓은 한국문화방송과 부산문화방송은 재단법인 5.16장학회로 넘어간 것입니다. 저희들이 부산일보사와 문화방송을 놓고 굳이 '정치적 장물'이라는 험한 표현을 쓰는 것도 이런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5.16 장학회가 제5공화국이 들어선 후 슬그머니 이름만 재단법인 정수장학회로 바꾸고는 그 '장물'을 주인에게 되돌려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안타까운 마음으로 부산일보사의 파행을 가까이서 지켜본 우리들은 부산일보사와 한국문화방송 및 부산문화방송 그리고 부일장학회 기본 재산인 토지 10만 평을 원래의 주인인 김지태 씨의 유족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사리요, 민주화를 표방하는 이 시대의 정의라고 믿습니다.
다만 이제는 고인이 된 김지태 씨의 유가족들이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 그리고 부산 시민에 대한 고인의 애정과 헌신의 높은 뜻을 기려 장학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정수장학회를 부일장학회로 바꿀 것과 이 장학회의 이사 선임권을 되돌려줄 것만을 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족들의 이러한 뜻은 일찍이 부일장학회를 만들어 장학사업을 통한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실천한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기도 하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저희들은 국회가 유족들의 이 갸륵한 뜻을 받아들여 가능한 가까운 시일안에 부산일보사와 두 방송사를 유족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우리 시대의 정의를 실현하고 고인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 고 김지태씨 장남 김영구씨와 3남 김영우씨가 유족을 대표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
저희 진정인들은 30여년 전, 5.16 쿠데타를 일으킨 정치군인에게 우리나라 민간 상업방송의 효시인 부산문화방송과 한국문화방송, 그리고 해방 직후 지역언론 시대를 선도한 부산일보사를 강탈당한 고 자명 김지태 회장의 유족들입니다. 선친께서 이른바 5.16혁명 주체들에게 이들 신문과 방송을 빼앗긴 사건은 이제는 구시대의 비사도, 잊혀진 과거사도 아닙니다.
국민들이 다 아는 이 천만부당한 불법은, 그러나 30년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세 번이나 바뀌었어도 여전히 바로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적 장물'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선친의 피와 땀의 결정이 아직도 그들의 손아귀에 있는 이 불의를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까.
저희들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똑똑히 기억합니다. 5.16 직전, 당시 선친께서 발행인으로 계시던 부산일보사의 황용주 주필을 통해 혁명주체가 요구해온 거사자금을 거절한 일, 그 이듬해 이들이 선친을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7년을 구형해 놓고는 신문 방송에서 손을 떼라고 협박한 일, 결국 함께 구속된 아내와 부하직원들의 고초를 보다 못해 쇠고랑 찬 손으로 도장을 찍어주고 곧바로 공소취하로 풀려난 그 끔찍한 굴욕과 수모를 말입니다.
그 신문 방송의 재정적 바탕이자 당시로서는 놀랄 만한 규모의 장학사업의 원천이었던 '부일장학회'가 슬그머니 '5.16장학회'로 바뀌고, 그것이 다시 '정수장학회'로 둔갑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가소로운 위장과 그 뒤에 숨은 권력의 농간이 가능했던 어두운 시대의 초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친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열한 해가 지났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신문 방송을 되찾는 일에 무심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하시던 임종의 유언이, 그리고 그 유언을 아직도 지키지 못한 회환이 자식들의 가슴을 칩니다.
또 여러 차례 산업훈장을 받은 경제인으로서, 2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지방 언론과 체육을 이끌던 언론인, 체육인으로서 전환기 한국사회에 작지 않은 발자국을 남긴 고인에 대한 역사의 보답이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당시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 부일장학회에 재직했던 간부 사원들이 지난 88년 '부산일보사 등의 소유권 원상회복에 관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도, 특히 지금은 대통령이 되신 당시의 김영삼 총재를 비롯하여 박관용, 최형우, 이기택 의원 등 열세 분이 흔쾌히 청원서의 '소개 의원'이 되어 주신 것도 참을 수 없는 불의한 시대에 대한 공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와 같은 군사문화의 독버섯이 문명시대의 밝은 햇살 아래서도 버젓이 살아 있다는 것은 오늘의 시대정신을 모독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저희들은 믿습니다.
저희 진정인들의 바램은 소박하지만 분명합니다. 선친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서라도 부산일보사와 부산문화방송의 주식을 불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를 일찍이 고인이 이름 지으신대로 '부일장학회'로 바꾸고, 이 장학회의 이사 선임권을 유족들에게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신문 방송의 경영권을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줌으로써 강압에 찢긴 정의와 진실을 복원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한국문화방송이 후신인 주식회사 문화방송에 대해서도 선친의 뜻이 전해질 수 있도록 저희 유족들에게 경영 참여의 길을 터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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