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고, 공짜 물놀이 반나절

손자 같은 조카 데리고 찾아간 성내천

등록 2004.08.05 14:16수정 2004.08.0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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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 차가 열 살이 넘는 막내 여동생이 있다. 나이 40이 다 되어 결혼을 하였을 때만 해도 행복한 가정을 꾸밀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여동생은 늦게 한 결혼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5살과 3살의 건강한 아들 둘을 낳았다. 50이 넘은 나는 요즘 손자 같은 조카들의 재롱을 보는 재미에 늦둥이라도 하나 더 낳아 길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지난 8월 1일, 큰 조카 용준이가 전화를 하여 혀 짧은 소리로 "삼촌! 우리 해수욕장 데려다 주라"고 하였다. 어찌나 귀엽고, 보고 싶던지 "그럼 엄마랑 아빠랑 삼촌 집에 와"라고 말했었다. 그 전화 통화가 끝난 후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인터폰에 조카 녀석들 소리가 들렸다. 조카들 성화에 못 이겨, 동생 내외는 에어컨이 시원찮은 자동차를 두고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거여역에서 내려 우리 집까지 왔다.


우리 집은 걸어서 한 5분 거리에 성내천이 있다. 최근 송파구에서 지하철 5호선 지하와 인근 동아일보 사옥 지하에서 지하수를 끌어올려 인공 물놀이 장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이곳을 해수욕장이라고 속일 요량으로 얘기한 것이다.

성내천 물놀이 장을 찾아간 것이 오후 3시쯤이다. 그곳에는 조그만 나무 그늘이라도 있는 곳은 미리 나온 동네 아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른바 우리의 해수욕(?)은 하천부지 한 귀퉁이에 돗자리를 깔고 시작되었다.

성내천에 해운대 해수욕장(?)

a 지하철 5호선에서 분출되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바위구멍으로 뿜어져 나오게 만든 분수의 수온은 섭씨 18도로 발을 담그면 으시시하다.

지하철 5호선에서 분출되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바위구멍으로 뿜어져 나오게 만든 분수의 수온은 섭씨 18도로 발을 담그면 으시시하다. ⓒ 양동정

해수욕장을 한번도 가보지 않고, TV에서만 본 적이 있는 조카들은 "삼촌 여기가 해수욕장이야?"하며 물었다. 조카들은 많은 사람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하 깊은 곳에서 분출되는 차가운 물로 만든 작은 분수에서 쏟아지는 물을 손에 적셔보던 조카들은 물이 아이스크림처럼 차다고 놀란다.

조카들은 처음 물을 만질 때, 행여 옷에 물이 튈까 조심하더니 한두 방울 옷이 젖자 아예 물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입술이 새파래져서 물장구를 치는 조카들은 마냥 신났다.


또한 지하수로 만든 벽천은 폭포처럼 생겼다. 그 아래는 물 깊이가 낮아 옷을 입은 채로 폭포물을 맞는 어린이들이 많다. 이 아래서 노는 아이들도 마냥 즐거워한다.

벽천 아래로 약 20미터 내려가면, 성내천 둔치에 약 10미터의 폭과 깊이가 50센티 정도 되는 어린이 물놀이장이 있다. 그곳도 지하수를 끌어들여 만든 어린이 물놀이장이라 깊지 않아 안전하고, 물이 깨끗하여 많은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물놀이를 할 수 있다. 마치 TV 속의 해운대 해수욕장을 성내천에 옮겨놓은 것 같다.


좋아하던 아이스크림도 이따가 먹겠단다

a 인근 동아일보 사옥 지하에서 분출되는 지하수로 만든 벽천(폭포) 또한  수온이 섭씨21도로 어린이 들의 인기놀이 장소다

인근 동아일보 사옥 지하에서 분출되는 지하수로 만든 벽천(폭포) 또한 수온이 섭씨21도로 어린이 들의 인기놀이 장소다 ⓒ 양동정

오랜만에 조카들에게 인심을 쓰겠다고 아이스크림을 샀다. 조카들에게 "먹고 놀라"고 했으나 녀석들은 "이따가 먹겠다"며 물 속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놀이시설이 없는 도심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뭣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반나절 정도 신나게 놀고 온 조카 녀석이 "삼촌! 오늘 삼촌 집에서 자고가면 안돼?"라고 묻는다. 나는 "내일 아빠 출근해야 하니, 오늘은 가고 다음주에 다시 와라"했더니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늦게 가정을 꾸린 동생 가족의 도심 속 반나절 피서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a 지하수 만으로 만든 어린이 물놀이 장은 해운대 해수욕장을 서울에 옮겨놓은 것으로 착각 할 정도로 사람이 많고 수온이 섭씨19도로 매우 시원하다.

지하수 만으로 만든 어린이 물놀이 장은 해운대 해수욕장을 서울에 옮겨놓은 것으로 착각 할 정도로 사람이 많고 수온이 섭씨19도로 매우 시원하다.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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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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