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생은 사월 초파일에나 하는 거야"

[이 여름을 시원하게] 논 물 보다 물고기 잡던 날의 추억

등록 2004.08.05 19:10수정 2005.08.1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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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툰 정광숙

여름철 아버지의 하루 일과는 논물 보러 가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논에 물이 알맞게 채워져 있는지, 밤새 벼가 병을 하지는 않는지 등등을 살펴보는 것이지요. 논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몸은 이슬로 후줄근히 젖어 있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되면 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논물을 보러 가곤 했습니다. 잠이 덜 깨어 연신 하품을 하다가도 논둑길로 접어들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풀잎이며 벼 포기에 매달렸던 이슬이 발이며 다리의 맨살에 감기면서 찬 기운이 온 몸에 퍼지기 때문이지요. 논둑길을 가로질러 쳐 놓은 거미줄에도 이슬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었습니다.

논에는 벼만 사는 게 아닙니다. 물방개며 개구리도 살고 있습니다. 우렁이도 있고 물길 따라 들어온 붕어, 미꾸라지 메기 등 물고기가 살기도 합니다. 벼 포기에는 메뚜기며 여치 방아깨비 등이 살고 있습니다. 거미는 거미줄을 쳐 놓고 걸리기만 해라 벼르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논둑길을 걸어도 아버지처럼 논물이나 벼의 상태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주로 논에 사는 생명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물방개를 잡아 만지작거리며 놀기도 하고, 이슬에 젖어 제대로 날지 못하는 물잠자리를 잡기도 했습니다.

물방개의 다리는 억세고 날카로운데 잘못하면 손가락이 찔려 피가 나기도 합니다. 이슬에 젖은 물잠자리를 날려 보려고 허공에 던져 보아도 녀석은 제대로 날지 못하고 논두렁 아래로 곤두박질칩니다.

운이 좋은 날은 물고기를 잡기도 합니다. 논두렁을 걷다보면 논물을 가르며 지나가는 물고기가 보입니다. 물고기가 논 가운데로 가버리면 잡을 길이 없습니다. 벼 포기를 헤집고 쫓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한두 마리 보이는 물고기는 잡지 않고 그냥 둡니다. 때로는 논두렁 가까이에 모여 있는 물고기를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녀석들을 보면 살그머니 앉아 두 손으로 잡아 올립니다.


초등학교 삼 학년 여름방학이었습니다. 그날도 아버지를 따라 논둑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 보니 논에서 푸드득 소리가 연이어 들렸습니다. 바보 같은 비둘기가 논에 빠져 길을 잃고 허둥대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벼 포기를 헤치고 소리가 나는 곳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내는 건 비둘기가 아니라 물고기였습니다. 수없이 많은 물고기들이 서로 뒤엉켜 연신 푸드득 푸드득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많은 물고기가 바글대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놀란 나는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아부지, 여기 물고기 엄청나게 많다."

앞서 가던 아버지가 다가와 그 광경을 보시고는 내 등을 떠밀었습니다.

"얼른 집에 가서 빠께스(양동이를 어릴 땐 그렇게 불렀지요) 가지고 와."

아버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간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달렸습니다. 빨리 갔다 오지 않으면 그 물고기가 다 도망갈 거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간 내 눈에 먼저 띈 것은 세숫대야였습니다. 마음이 급한 나는 양동이 대신 세숫대야를 들고 논으로 뛰어왔습니다. 아버지는 세숫대야에 물을 반쯤 채우고 물고기를 잡아서 담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있어야 물고기가 튀어 나가지 않기 때문이지요. 아버지 뒤를 따라 나도 논으로 들어가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가지고 나와 세숫대야에 담았습니다.

한참 뒤에 세숫대야에 물고기가 가득 담겼습니다. 손바닥만한 붕어에서 시작해서 팔뚝만한 메기에 이르기까지 많이도 잡았습니다. 세숫대야에 가득 담긴 물고기를 보니 저절로 신이 났습니다. 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십니다.

"아침부터 횡재했다. 매운탕 끓여 동네잔치 해도 되겠는 걸."

물고기를 집으로 가지고 가면 아버지와 마주앉아 배를 따서 깨끗이 씻어 놓을 겁니다. 어머니는 가마솥 걸어 놓고 고추장 듬뿍 풀고 밀가루에 버무린 물고기를 넣고 파와 고추 썰어 넣고 마늘 다져 넣은 뒤 장작불로 오랜 시간 끓일 것입니다. 친구들과 마주앉아 매운탕 먹으며 온갖 자랑을 늘어놓을 생각을 하니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렸습니다.

무겁다며 말리는 아버지의 말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고기가 가득 담긴 세숫대야를 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걸 집에까지 들고 가야 자랑거리가 더 생긴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아버지 걱정대로 꽤나 무거웠습니다. 꼬불꼬불하고 좁다란 논두렁길은 맨몸으로도 중심 잡기 어려운 길이었지요.

무겁긴 했지만 조심조심 논두렁길은 잘 통과했습니다.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길은 도랑을 따라 이어진 길입니다. 논두렁처럼 좁고 꼬불꼬불한 길은 아닙니다. 두 사람 정도는 스쳐 지나갈 정도의 넓이였습니다. 일직선은 아니지만 논두렁길에 비하면 제법 곧은 길이지요. 이 길을 지나 마을 쪽으로 조금 올라서면 우리 집이 나옵니다.

길의 너비에 비례해서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빨리 가서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숫대야에 담긴 물고기가 출렁대기 시작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물고기가 쏟아질 거 같다는 생각에 잠시 주춤댔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벌어졌습니다. 출렁대던 세숫대야가 기울어 물고기가 쏟아지고 그 바람에 몸의 균형마저 잃어버린 나는 도랑 속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물론 세숫대야도 거꾸로 물 속에 처박혔습니다. 그 많은 물고기는 도랑물을 타고 빠르게 흩어졌습니다. 말 그대로 물 만난 고기가 되어 신명나게 도망친 것이지요.

뒤따라오시던 아버지가 놀라 물에 빠진 나를 일으키고 떠내려가는 세숫대야를 건졌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변해버린 아들 녀석 다친 데 없나 살피시던 아버지는 어느 순간 허망하게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한 말씀 하셨지요.

"이 녀석아, 방생은 사월 초파일에나 하는 거야."

그 때에 아버지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동네잔치를 해도 될 만큼 많이 잡은 물고기를 순식간에 놓쳐버린 죄의식에 짓눌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방생이란 말뜻도 모르던 시절입니다.

맥없이 아버지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젖은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섞여 흐르는 눈물이라 아버지는 내가 울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 날은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멱 감으러 가자고 재촉해도 꿈쩍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땀이 줄줄 흘러도 더운 줄 몰랐습니다.

지금도 논두렁길을 걷다 보면 그날의 일이 떠오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돌아보면 아름다운 기억이 되어 돌아옵니다. 거기에다 그럴 듯한 자기 합리화의 변명까지 덧붙이고 보면 뜻 깊은 방생이었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내 손으로 그 많은 목숨을 건져낸 적이 그 뒤로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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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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