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정상에 희귀 동식물의 보고가...

[천성산 현장보고 ①] 내원사 계곡에서 화엄벌까지

등록 2004.08.07 15:52수정 2004.08.1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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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천성산 정상에 넓게 펼쳐져있는 화엄벌, 울타리 안쪽이 습지보호구역이다 .

천성산 정상에 넓게 펼쳐져있는 화엄벌, 울타리 안쪽이 습지보호구역이다 . ⓒ 오마이뉴스 안현주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이 청와대 앞에서 고속철 공사중단을 촉구하며 40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재평가 실시와 함께 현재 항고심이 진행중인 '도롱뇽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이라도 공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천성산이 과연 어떤 산이길래 비구니 스님이 목숨을 걸고 보존을 주장하고 있는가. <오마이뉴스>는 지난 5일, 6일 이틀간에 걸쳐 취재진을 천성산 현지에 파견, 생태계 실태 등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였다. 이번 취재에는 밀양대 조경학과 최송현 교수와 천성산대책위 박현호 간사가 동행했다... 편집자 주


내원사 계곡에서 천성산 꼭대기 화엄벌까지 걸었다. 올 여름 피서철의 절정인 8월 첫째 주말을 하루 앞둔 6일, 평일 아침부터 내원사계곡은 피서객들로 붐볐다. 가뭄이 계속되면서 바위 틈 사이에 물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물 속에서 온갖 시름 다 버리고 노는 피서객들을 뒤로 하고 산으로 올랐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은 화엄벌에 30차례나 올랐다고 하는 박현호씨의 안내를 받았다. 내원사 경내에 들어서니 비구니 스님들도 보이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 가람 내 방사(坊舍)에 앉아 경전을 외우며 여름나기를 하는 모양이다.

천성산 등산은 내원사 공양간과 대나무밭을 지나면서 시작됐다. 일반인은 잘 이용하지 않는 길이다. 스님들이 공부하다 잠시 바람 쐬러 가는 등산로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보니 내원사는 보이지 않는다. 높은 데서 내원사 전경을 보고 싶었지만 나뭇잎이 취재팀과 내원사 사이를 가로막았다.

등산로는 한 사람이 지나기도 비좁을 정도다. 한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밤새 만들어졌는지, 선명하게 보이는 거미줄을 헤치며 취재진은 걷기 시작했다. 등산로 중간에 두더지가 지나간 자국이 여러번 관찰됐다.

헉헉거리면서 오르는데 매미가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불러 심심하지는 않았다. 내원사 바로 위쪽에는 소나무숲이었는데 한참을 오른 뒤 주변을 보니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잎이 넓은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열병하듯 서 있다.


산 중턱 사용하지도 않은 임도

원효대사의 전설이 깃든 천성산

천성산(千星山)은 '제2의 금강산'이라 부를 정도로 경관이 빼어난 산이다. 가지산도립공원 내에 있는 해발 922m로, 동쪽은 양산시 웅상읍, 서쪽은 양산시 상북면에 접해 있다. 신라 때 원효대사가 천 명의 스님을 이끌고 이 곳에서 설법을 가르쳐 모두 성인으로 만들었다는 유래가 있다.

이곳은 크게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천성산과 정족산, 원효산이 그것이다. 이를 모두 묶어 천성산이라 부른다. 넓게 보면 천상산에는 무제치늪과 화엄늪뿐 아니라 밀밭늪 등 많은 고층습지가 있다.

천성산 일대에는 희귀 동식물이 많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월에는 법기수원지에서 천연기념물인 원앙이 74마리나 발견되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산 중턱을 지나니 넓은 임도(임산물의 운반과 산림의 경영관리상 필요하여 만든 도로)가 나왔다. 사용하지 않는 임도다. 박현호씨는 "임도 개설공사가 지율 스님께서 천성산 지킴이로 나서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지율 스님은 지난 2000년 임도 개설공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반대운동을 벌였고, 끝내 공사를 막아냈다.


거기서 30여분 남짓 올라갔다. 푸른 잎이 무성한 철쭉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나무 밑둥이 검게 탄 흔적들이 나왔다. 올 봄에 난 산불의 흔적이 계절을 뛰어넘어 남아 있었다. 지난해 태풍 '매미'로 쓰러진 나무들도 이제는 누런색으로 변해 있었다.

축 늘어진 소나무 가지를 피해 올라섰더니 푸른 광장이 펼쳐졌다. 바로 화엄벌이다. 답답하던 가슴이 확 뚫렸다. "어떻게 산 정상에 저렇게 넓은 벌판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에 한들거렸고, 잠자리가 날아다녔다.

화엄벌은 신라 때 원효대사가 1천명의 승려에게 화엄경을 강설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1천명의 승려가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산 이름을 '천성산'이라 부른다. 산 정상에 서니 원효대사가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 천성산 ‘화엄늪 습지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는 식물과 곤충들.

천성산 ‘화엄늪 습지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는 식물과 곤충들. ⓒ 오마이뉴스 안현주

화엄늪에 이탄층 형성... 희귀식물 자라

화엄벌 중간에는 산습지 화엄늪이 있다. 이 곳에 늪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는 불과 몇 년 전이다. 환경부는 2002년 2월 '화엄늪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했고, 안내판도 세워 보호하고 있다. 감시초소도 두고 있으나 이날 취재진이 올라갔을 때 초소는 비어 있었다.

화엄늪에는 이탄(泥炭)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탄층은 늪에 살던 식물들로 만들어진 흙갈색의 퇴적물을 말한다. 취재진은 화엄늪 전체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보호구역이라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입구에 난 길에서 몇 발짝만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억새풀숲 사이를 지나니 산짐승의 발자국 흔적이 보였다. 그 사이로 노루나 사슴이 뛰놀다가 목을 축이고도 남을 만큼의 물이 흘렀다.

기록에 의하면 화엄늪은 천성산 정산부임에도 푹신한 이탄층 틈으로 용천수가 뿜어나오고 다양한 식생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억새군락 사이에는 은난초를 비롯해 미꾸라지, 고마리, 족도리풀, 물매화 등이 있다. 고층 습지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과 이삭귀개, 쑥부쟁이도 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통발과 이삭귀개 역시 식충식물인데 이맘 때쯤 자줏색 또는 푸른색 꽃을 피운다. 우리나라에는 8종의 식충식물이 있는데 이곳에서 상당수를 발견할 수 있고, 이들은 멸종위기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천성산대책위 간사인 박현호씨는 "1997년 산림청이 발표한 멸종위기식물이거나 희귀동식물거래방지협약 대상 종들도 있어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화엄늪의 용천수가 흐르는 물웅덩이에는 수중동물을 잡아먹는 물자라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이날 취재진의 눈에 띄지 않았다. 화엄벌 바로 위에는 공군부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일부 철수한 상태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 내원사 계곡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도롱뇽 유생.

내원사 계곡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도롱뇽 유생. ⓒ 오마이뉴스 안현주

피서객 피해 바위틈에 숨는 도롱뇽

일부 몰지각한 등산객들은 늪 안으로 들어가 희귀식물을 채취한다고 한다. 취재진은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산을 내려왔다. 매미소리가 더 요란하게 들렸다. 매미가 합창하며 "사람들아, 더 이상 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한 산악회에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아니온 듯 가시옵소서'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오면서, 그 말의 의미가 자꾸만 되새겨졌다.

내원사 공양간을 지나려다 주지 혜등 스님과 마주쳤다. "이 더운 날씨에 어떻게 올라갔다 오느냐"면서 수박을 내놓았다. 한달 넘게 청와대 앞에서 고속철도 공사중단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지율 스님에 대해 물었다.

"지율 스님 때문에 걱정이 많죠"라고 물었더니, 혜등 스님은 "이제는 걱정도 안해요, 내 말도 안 듣고 하는데 왜 걱정해요"라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원사 계곡에서 도롱뇽을 만났다. 올챙이가 성체로 변해가는 도롱뇽이었다. KTX측의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는 천성산에는 없다고 했던 도롱뇽이 바위틈 사이에서 피서객을 피해 숨어 있었다.

내원사 계곡 입구 철망에는 조그마한 펼침막이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천성산이 아파요, 고속철도 관통 마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펼침막이 내걸린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빛이 바랬지만, '천성산이 아프다'는 말은 절규로 느껴졌다.

a 천성산 화엄벌.

천성산 화엄벌. ⓒ 오마이뉴스 안현주



1인시위·3보1배 등 고행 지속... 현재 청와대 앞 40여일째 단식
천성산 사수를 위한 지율스님의 목숨 건 저항

▲ 지율 스님
천성산 내원사 지율스님은 일명 '도롱뇽 스님'으로 불린다. 3년 가까이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노선변경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얻게 된 애칭이다.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터널 공사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1년 말 해당 구간의 붕괴 위험이 높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부터였다. 그동안 94년 실시된 환경영향평가의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던 시민·종교단체들은 이후 부산·서울 등지에서 1인시위·삼보일배·토론회 등을 통해 해당 구간 통과의 문제점을 적극 알리기 시작했다.

문제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해당 구간에 대한 공사 중지와 전면 재검토 약속을 선거공약으로 채택하면서부터 불거졌다. 이 약속은 참여정부 출범 10개월 만에 '공약(公約) 아닌 공약(空約)'임이 드러나 지금까지 천성산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로 남아있다.

이 과정에서 지율 스님은 그야말로 '목숨 건 저항'으로 천성산 지키기에 나선다. 1인시위, 3보1배, 3000배, 수십일 간의 단식 농성 등의 고행을 통해 지율 스님은 천성산 지키기 최후의 보루 역할을 담당해 왔다.

현재 지율스님은 해당 구간에 대한 공사 중단과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요구하며 지난 6월 30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작년 2월초 28일간의 단식, 그해 10월 초 45일간의 단식에 이어 세 번째 단식농성이다. 폭염 속에서 8일 현재 41일째이다.

작년 10월 15일 지율 스님 등 대책위 관계자들은 천성산에 서식하는 '꼬리치레 도롱뇽'을 대신해서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을 상대로 '고속철 천성산 관통구간 공사 착공금지 가처분신청서'를 부산지법에 제출했지만 올 4월 1심에서 패소,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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