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 TV고치다 짜릿한 경험하다

드라이버는 뒷문까지 날아가고 내 몸은 내동댕이쳐졌다

등록 2004.08.11 01:24수정 2004.08.1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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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이 우리집에 들어온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두 집 들어온 다른 집과 비교하면 5년이나 늦었으니 마지막으로 마지못해 들여 놓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 때까지는 옆집을 전전하며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별 불편함과 불만이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어머니는 맘 편히 두 다리 쭉 펴고 TV 한번 보질 못하고 세상을 뜨셨다. 이도 불쌍한 축에 든다면 억지일까?

아버지가 반대하셨지만 어머니도 자식들이 성장하는 데 지장을 받을까 봐 활동 사진이 집에 들어오는 걸 막으셨다. 움직이는 ‘가짜세상 이야기’를 한사코 들여 놓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만 조금 거들었다면 좀 더 일찍 들여와 집안 분위기가 약간은 전환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형들과 누나가 서울에서 매달 부치는 한달치 돈이면 사고도 남을 것을 끝까지 버티시니 우리들은 ‘T'자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공부해라”는 한마디 듣기 싫어 골방에 갖혀 있는 게 더 나았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론 막내딸과 무료함을 달랠 방법이 없었던지 TV를 사셨다. 5학년 딸아이의 집요한 성화에는 당신도 어쩔 수 없었는가 보다. 중학교 3학년 가을에 드디어 우리 집에도 흑백 문명이 침투했다. 흑백 세상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친해질 시간도 길게 갖지 않고 아쉬움을 뒤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몇 달 후 고향집을 떠나 담양 창평으로 향해야 했다.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고교 생활이 이어졌다. 자취를 하다 보니 지각을 밥 먹듯이 했다. 어서 방학만 되기를 기다린 1학기 성적은 형편없었다.


‘그래, 이번 방학 때는 원 없이 볼 거야.’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집은 황량했다. 소위 ‘나간 집구석’이 되었다. 일감도 현저히 줄어들어 있으니 게으름 피우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던 차 텔레비전에 흠뻑 빠져 더운 여름을 지내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이라 생각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고1 방학. 차부에서 내려 집으로 내달렸다. 집에 도착해 방으로 들어가 보니 덩그마니 TV 문이 닫혀있다. 다리가 유난히 긴 TV는 윗목에 전선이 꽂힌 채로 놓여 있었고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듯 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었다.

‘어, 이상허네?’

분명 동생이 있고 잠시 내려와 있던 누나가 집에 있는데도 TV를 본 흔적이 없었다. TV를 켜보았다. “지지직” 소리도 없고 굵은 우박 알갱이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먹통이었다.

“에잇, 이거 뭐야! 오는 날이 장날이네….”

연장통을 뒤져 보았다. 2주에 한번 집에 왔을 때마다 보았던 드라이버를 찾았다. 바로 마루 한쪽에 뒹굴고 있어 금방 찾았다. 푸르스름한 뿔에 덮인 드라이버 손잡이는 두께가 보통이 아니었고 길이는 20cm가 넘었다. 어찌나 굵고 단단하던지 대개 쇳덩이를 펼 때나 단단히 고정된 부위를 풀 때 쓰던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TV를 앞으로 꺼내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서 들기란 쉽지 않은 무게여서 발을 하나씩 옮겨 틈바구니를 냈다. 뒷문을 풀었다. 브라운관 주변이 까맣게 타 있다. 걸레로 먼지와 그을음을 한번 스윽 닦아 주었다. 한쪽으론 몇 번이나 전파사에서 보았던 납땜 판때기가 점점이 박혀 있었다.

‘그래, 아저씨들은 저기다 드라이버를 몇 번 대 보고 단박에 고치더란 말이야.’ 무작정 따라서 해보기로 했다.

우리집 큰방은 남의 방 크기에 쪽방을 하나 덧댄 집이라 옆으로 길이가 무척 길었다. TV 뒷면을 뒤뜰 쪽으로 향하게 해 놓고는 드라이버를 손에 들었다. 이윽고 납땜이 된 곳에 드라이버 끝을 한번씩 대가며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점검해 나갔다.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8월의 여름이었는데도 어찌나 골몰했던지. 찍고 찍고 또 찍어 옮겨가며 점에 갖다 대 보았다. 처음엔 전원이 꽂혀 있었다. 뽑고도 해 보고 꽂아서도 해 보았다. 별 변화가 없었다. 반복하면서 내 스스로 패턴을 까먹고 드라이버를 갖다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1시간여 지났을까. 어느 순간! 두 손으로 잡고 있던 드라이버가 내 손을 강하게 때리더니 5m나 되는 뒤 안 문살로 휘익 날아가 버렸다. 내 몸뚱아리는 TV에서 1.5m나 떨어진 곳까지 밀려나 벌러덩 나가 떨어졌다. 폭풍을 맞은 상황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감전사는 당하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워메, 뒤질뻔 했구먼. 휴~”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원인을 찾아야 한다.

“뭔 일이지? 아니 왜 드라이버 끝을 잡고 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느냔 말이여?”

집에 전기가 들어온 이후로 퓨즈가 나가면 곧바로 달려가 계량기 앞에 사다리를 놓고 두꺼비통을 열어 퓨즈를 갈아 끼우던 나다. 또한 전원을 차단하지 않고도 선을 따와 다른 데로 전기를 빼내는 실력을 갖춘 내가 이런 일을 당한다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닌 수 없다. 영문을 모르고 넋이 나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더군다나 두랄루민 퓨즈가 떨어지면 얇은 전선을 풀어 연결도 하고 담배 종이와 은박 껌 종이로도 퓨즈를 만들어 며칠은 아무 탈 없이 전기를 쓸 수 있도록 고치는 실력파가 말이다.

머리가 쭈뼛 서고 싸늘한 오한이 밀려 왔다가 식은땀이 흘렀다. 다시는 접근하기 두려워 TV 뒷문을 대충 닫아 원위치 시킬 마음으로 드라이버를 찾았다.

아뿔싸!

뒷문에 꽂힌 드라이버를 뽑아보고는 또 한번 놀랐다. 글쎄, 드라이버 심은 온전한데 손잡이 플라스틱 끝부분이 사람 잡으려고 만들어 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긴 철심에 손잡이 부분이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데 꽁지 부분이 완전히 막히지 않고 둥그렇게 노출되어 있는 게 아닌가!

브라운관 전자총을 건드린 것도 문제지만 드라이버 끝이 문제여서 곧바로 손에 전기가 전달되어 강한 압력으로 내 손을 때린 것이었다. 행여 드라이버가 나를 강하게 치며 튀지 않았던들 그 고압에 난 온몸이 타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또 한번 목숨부지의 순간을 안도하며 뒷문을 잠갔다. 그러고 나서 TV를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국산은 때리거나 차면 말을 듣는다고 했을 때니까. 창피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20여년이 지난 오늘 처음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차라리 들여 놓지 말 일이었다.

전기에 감전되면 자릿자릿하다 던가? 찌릿찌릿 하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짜릿하기도 하다. 찌리릿 220V만 맞아도 피가 멎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살 맛 나지 않을 때 한번 맞으면 죽을 맛이 싸악 가시는 전기 이젠 겁이 먼저 난다. 전기는 위험한 것이다. 절대 함부로 다룰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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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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