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플라자의 맥도날드 식당에서 일하는 멕시코 이주 노동자 엔리케씨홍은택
다가가서 몇 마디 대화를 이어나면서 그가 시간당 8달러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필자가 놀라는 표정으로 꽤 많이 받는다고 말하니까 아홉 손가락을 펴면서 지금까지 9년 동안 일해 왔는데 그게 뭐 많으냐고 말했다. 그는 올해 65세다. 그의 바람은 앞으로도 계속 안정적으로 청소하는 것이다. 북미 대륙의 맥도날드에는 노조가 없다. 그리고 지금 기자가 둘러보고 있는 본사에는 노조 결성을 와해시키는 기동타격대가 있다.
햄버거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자. 이 아름다운 호수에 연한 그림 같은 햄버거 대학이 맥도날드 제품과 직원을 표준화시키는 역할을 해왔지만 맥도날드가 주도해온 마케팅의 혁신에 기여한 흔적은 많지 않다.
판매량을 늘리는 고전적인 마케팅 방법은 한 개의 값에 두 개를 팔면서 한 개 값을 살짝 올리는 것이었다. 이 방법을 쓰면 옷이나 책, 가구 등 어떤 제품도 판매량이 늘었다. 하지만 음식에는 소용이 없었다. 한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제한돼 있어서 그런 탓도 있지만 근본 원인은 딴 데 있었다.
극장의 수입은 팝콘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팝콘의 판매 마진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60년대 극장 체인 밸러밴(Balaban)에서 일하던 데이비드 왈러스타인(David Wallerstein)은 팝콘 판매가 부진한 원인을 분석했다. 한 상자 값으로 두 상자를 준다고 해도 사람들은 손사래를 저었다.
왜 그럴까. 그는 어느 날 사람들이 두 상자를 쥐면 너무 탐욕스러워 보이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 한 상자로 만들어 버리는 게 어떨까. 그는 팝콘 상자를 두 배로 크게 만든 점보 사이즈 팝콘을 내놓은 뒤 가격은 조금만 올려서 내놓았다.
그렇게 첫 주가 지난 뒤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왈러스타인은 스스로도 놀랐다. 팝콘 판매량이 는 것은 물론이고 코카콜라와 같은 탄산음료의 판매도 급증했다. 팝콘을 많이 먹으면 짜니까 음료수도 자연 많이 먹게 된다. 음료수의 판매 마진도 팝콘만큼 크기 때문에 마케팅 효과는 두 배가 아니라 거의 4배가 됐다.
맥도날드로 이직한 왈러스타인은 그 경험을 되살려 70년대 초 큰 사이즈의 프렌치 프라이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다. 레이 크록마저도 사람들이 프렌치 프라이를 더 먹길 원하면 두 통을 시킬텐데 굳이 큰 사이즈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왈러스타인은 사람들이 프렌치 프라이 통의 바닥까지 긁어서 먹는 것을 보면 분명 더 먹길 원하지만 새로 한 통을 주문하지 않는 심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맥도날드가 마지 못해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자 프렌치 프라이를 내놓았다. 사이즈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맥도날드 성공의 비결은 '슈퍼사이징'
1960년대 피츠버그에 있는 맥도날드의 점주였던 짐 델리가티(Jim Delligatti)가 햄버거 두 개를 붙여서 만든 빅 맥도 비슷한 마케팅 개념이었다. 먹으면 더 들어가게 돼 있는 게 '위대한' 배의 속성이다. 그렇게 한번 대자로 사이즈를 확대해 놓으니까 점점 더 들어갔다.
1960년대 200 칼로리였던 프렌치 프라이가 70년대말에는 320, 90년대 중반에는 450에서 90년대 후반 540 지금은 610 칼로리까지 치솟았다. 그동안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던 미국인의 비율은 인구의 25%에서 지금은 과반수가 넘는 61%로 올라갔다.
아마 인류 역사상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한 나라 국민의 체형이 집단적으로 비틀린 경우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지 패스트 푸드의 문제만은 아니다.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혁신은 세트메뉴의 개발. 버밍햄 맥도날드의 점주였던 맥스 쿠퍼(Max Cooper)의 작품이다. 가격을 더 이상 내릴 수도, 비용을 더 이상 줄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윤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매출을 늘리는 것이다.
극장이 팝콘으로 돈을 벌듯이 햄버거 식당은 음료수와 프라이로 돈을 번다. 햄버거를 팔아서 남는 돈은 얼마 안된다. 1975년 쿠퍼는 햄버거를 판매 마진이 높은 음료수, 프라이와 한 꾸러미로 파는 게 어떨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표준화와 통일성을 중시하는 맥도날드 본사는 그의 파격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독립기념일을 기해 빅 맥과 음료수, 프라이를 결합한 콤보 메뉴를 내놓았다. 대히트였다. 지금은 모든 맥도날드, 그리고 버거킹과 웬디스와 같은 다른 패스트 푸드 체인도 모두 세트 메뉴를 쓰고 있다.
이 변화를 미국 패스트 푸드 업계에서는 '수퍼사이징(supersizing)'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 중 하나만 먹던 사람도 세트 메뉴를 선택한다. 햄버거와 프라이 두 개를 따로 사는 것보다 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세트 메뉴를 고른다. 그렇게 점심을 먹었다고 해서 저녁을 거르지는 않으니까 칼로리 섭취량은 비약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콤보 메뉴나 빅 맥은 물론 생선 샌드위치(Filet-o-Fish)와 에그 맥머핀(Egg McMuffin), 아침 식사메뉴도 모두 본사가 아닌, 한 가맹점에서 개발돼 효과가 입증된 뒤 본사를 통해 전 가맹점으로 확산됐다.
내친 김에 맥도날드의 메뉴에 대해 한 가지만 더 얘기하고 넘어가자. 치킨 너게츠다. 이 제품은 밑에서가 아니라 위에서 내려간 상의하달식의 개발 과정을 거쳤다.
1979년 레이 크록으로부터 회장직을 넘겨받은 레이크 프레드의 주인공 터너는 육류 납품회사였던 키스톤 푸드(Keystone Foods)의 간부를 불러서 엄지 손톱 크기의 뼈가 없는 닭고기 제품을 개발해보라고 제안했다. 당시는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방이 적은 닭고기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을 때였다.
닭고기 상품화의 필요성을 일찍 깨달은 터너 회장의 제안에 따라 키스톤사의 실험실은 맥도날드 소속 과학자들과 협력해 6개월 만에 맥너게츠를 개발해냈다. 맥너게츠가 대성공할 가능성이 보이자 맥도날드는 공급을 늘리기 위해 최대 닭 가공회사인 타이슨(Tyson)사를 끌어들였다. 타이슨은 가슴만 비대한 새로운 닭 품종을 개발해, '미스터 맥도날드'라고 명명했다.
맥너게츠의 공식 데뷰는 1983년. 맥도날드는 단번에 미국 내에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다음으로 큰 닭고기 구매회사가 됐고, 그 이후 9년만인 1992년 미국 내에서 소비되는 육류 중 닭이 소를 처음으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건강에 더 좋은 것으로 보였던 맥너게츠의 지방산 분포가 닭고기보다는 소고기에 가깝다는 하버드대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 온스당 너게츠에 포함된 지방은 햄버거에 비해 두 배나 되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어쨌든 폭증하는 닭고기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해 닭을 대량생산하는 체제가 들어섰다. 그러자 언제나 대량생산시대가 되면 그렇듯 닭을 키우던 농가들은 기업농에 밀려 폐가가 돼버렸다. 이미 패스트 푸드 햄버거의 등장에 따라 소고기 수요가 늘면서 목축업도 대기업화되고 미국의 영원한 상징인 카우보이들이 거의 멸종지경이 이르게 된 것에 이은 미 농가의 또 다른 타격이었다.
수요가 늘어날수록 그 물건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생활이 오히려 궁핍해진다는 것은 역설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본주의적 역설이다. 에릭 슐로서는 이것을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에 빗대 설명했다. 합성의 오류는 개인적으로는 타당한 행동을 모두가 다 같이 할 경우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될 때 쓰인다. 혼잡한 콘서트에서 자기만 잘 보려고 일어서면 모두 다 일어서 모두가 다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게 비근한 예다. 저축을 장려해서 모두 저축만 하고 소비를 안 하면 경제가 망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슐로서는 미국 농민들이 서로 더 싼 가격에 더 많은 농산물을 더 빨리 생산하려고 경쟁하다 보니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모두가 죽게 되고 대기업만 살아남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합성의 오류로 설명하는 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방치해두면 독점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는 자본주의의 내재된 특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맥도날드가 세계 최대의 패스트 푸드 회사가 된 것은 바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가맹점의 독립적인 실험을 허용하고 수용할 줄 아는 유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서의 맥도날드에 대한 평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맥도날드 성장에 따른 다른 부문의 희생이 너무나 크다. 그 일차적인 대가는 미국인들이 갈수록 비만해지는 몸으로 치르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에 파묻힌 맥도날드 캠퍼스에서 피폐화되는 농촌과 획일화되는 식성과 문화, 산처럼 커지는 미국인의 체형이 잘 보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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