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맷돌과 홍두깨로 만든 콩국수 맛을 따라 갈까"

아내가 만든 콩국수는 장모님이 만들어 주신 그 맛이 안 납니다

등록 2004.08.13 21:04수정 2004.08.1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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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라면 뭐든지 좋아하는 내 식성을 아이들도 꼭 빼 닮았습니다. 그래서 국수가 밥상에 올려지는 날이면 모두들 좋아합니다. 가까운 시장에서 사온 국수 삶아 멸치 국물에 말아먹는 국수도 맛있고, 아내가 직접 반죽을 해서 밀어 만든 칼국수도 좋습니다. 잔치 때 주는 국수처럼 특별한 고명이 들어가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국수를 다 먹고 나중에 밥을 말아먹어도 괜찮지요.


여름이 되면 입맛을 당기는 게 콩국수입니다. 특히 장모님이 해주시던 콩국수 맛은 최고입니다. 장모님은 사위가 좋아한다며 노란 콩을 삶아 맷돌에 갈고, 밀가루를 반죽해서 국수를 만들어 콩국수를 준비하고는 빨리 오라고 전화 하셨지요.

딸과 사위 그리고 외손자들이 콩국수를 먹는 사이 장모님은 감자를 갈아 만든 감자전을 부쳐 밥상에 올려 주셨습니다. 더운 여름에 불 옆에서 감자전을 부치시는 장모님은 땀을 많이 흘리셨습니다.

이기원
아내는 저녁에 콩국수를 만든다며 콩을 물에 담갔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해서 국수를 뽑아낸다고 녹즙기를 꺼냈습니다. 예전처럼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를 이용해 밀어 칼로써는 것이 아니라 반죽을 녹즙기에 집어넣고 누르면 국수가 뽑혀 나옵니다.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얇아질 때가지 밀어서 칼로 썰어 국수를 만들던 것에 비하면 참 편한 방법이지요.

콩을 불에 불려 껍질을 까고 삶아낸 다음 믹서로 갈아 콩물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맷돌로 갈아 만들던 것이지요. 맷돌 아가리에 삶은 콩을 물과 함께 넣고 돌리면 옆구리로 하얀 콩물이 줄줄 흘러나왔지요. 힘들여 맷돌 돌려 만들던 것에 비하면 거저먹기나 다름없지요.

이기원
국수를 삶아 건져내서 그릇에 담고 콩 물을 넉넉하게 채워 넣으니 콩국수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밥상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일만 남았습니다. 두 아들 녀석이 입맛을 다시며 앉았습니다. 젓가락을 들어 국수를 집어 올리는 걸 보니 즐거움이 가득한 표정입니다. 시원한 콩국수 덕에 매일 저녁 찾아드는 열대야의 더위도 잠시 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만들어준 콩국수는 장모님이 만들어주시던 콩국수 맛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아내가 특별히 음식 솜씨가 뒤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믹서로 갈아낸 콩과 녹즙기로 뽑아 올린 면발로 만든 콩국수가 맷돌에 갈아낸 콩과 홍두깨로 밀어 칼로 썰어내 만든 콩국수 맛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짬을 내어 장모님께 전화를 드려야겠습니다. 그러면 장모님은 맷돌과 홍두깨를 준비하실 겁니다. 예년 여름처럼 올해도 장모님은 콩국수에 가득 담긴 행복을 우리 가족에게 베풀어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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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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