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즐거움을 아쉬워하는 '닭의장풀'

내게로 다가온 꽃들(73)

등록 2004.08.13 21:21수정 2004.08.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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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뜨거운 햇살이 한창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면 따가운 햇살을 친구로 삼아 피어나는 꽃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여름 꽃 중에서 시원하게 생긴 꽃을 꼽으라면 나는 '닭의장풀'을 꼽을 것입니다.

일단 생김새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고, 줄기도 대나무처럼 쭉쭉 뻗어 시원하고, 이파리도 날카로운 듯 부드러운 예리하지만 사람의 손을 베는 일이 없고, 꽃잎도 세 장입니다. 두 장인데 무슨 소리냐구요? 아래 반투명색의 작은 것, 그것도 꽃잎이랍니다.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을 얻은 내력은 닭장근처에서 많이 자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냄새는 나지만 닭똥이 거름으로 얼마나 좋은지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은 아십니다. 계분이라고 해서 옛날에는 양계장마다 쌓아두었다가 팔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사다가 잡초와 짚 같은 것들을 잘 썰어서 섞어 발효를 시킨 후에 거름으로 사용하면 그 이상의 비료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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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옛날 집에는 대개 마당 한 구석에 닭장이나 토끼장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닭똥과 토끼 똥을 먹고 신나게 자라던 풀들 중에 이 닭의장풀이 있었던 것이죠. 닭장 근처에서 자라던 꽃이라고 그 이름을 붙여 준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꽃과 이파리의 모양을 종합해서 보면 마치 수탉이 회를 치는 듯도 하고, 꽃잎 모양이 닭의 벼슬을 닮기도 했습니다. 이래저래 '닭'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을 것입니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닭의장풀을 기르면서 꽃이 피는 대나무라고 하며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흔하디 흔한 꽃이라도 가만히 살펴보면 예쁜 구석이 있고, 그 매력에 빠져들면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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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닭의장풀의 다른 이름 중에서 닭과 관계 있는 것은 닭의밑씻개, 닭의꼬꼬가 있으며 다른 이름은 수부초, 압식초, 압자채, 달개비, 로초, 람화초, 압척초 등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참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흔하면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꽃인가 봅니다.

닭의장풀의 꽃말은 '짧았던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꽃이 피고 하루면 시들어 버리는 꽃, 따가운 햇살을 벗삼아 피면서도 햇살이 너무 뜨거우면 한 나절을 버티지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꽃이니 '짧았던 즐거움'인가 봅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도 '즐거움'의 묘미를 안고 살아가는 꽃이라 생각하니 우리네 인생도 어쩌면 그렇게 짧은 것인데, 온갖 근심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에 무거운 마음에 우울함이 더해집니다.

'사랑하면서 살기도 짧은 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살기도 짧은 인생이기에 아름다운 일들을 하며 살아가기도 바쁜데 온갖 헛된 망령 같은 것들이 우리들을 사로잡습니다. 인생은 쌓아둘 수가 없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것이니 하루하루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소중한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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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봄과 여름에는 연한 잎과 줄기를 삶아 나물로도 먹고, 여름에는 줄기와 잎을 말렸다가 차(茶) 대용으로 끓여 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일명 '달개비차' 아니면 '닭의장풀차'라고 부르면 되겠지요. 풀 전체가 한방에서 종기를 치료하는데 사용된다고 하니 닭의장풀을 차로 다려먹으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종양 같은 것들도 다 씻겨 나가지 않을까요?

이렇게 우리 민가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전해지는 이야기 없는 것이 못내 서운합니다. 물론 누군가 만들면 그것이 닭의장풀의 얘기가 되어 구전될 수도 있을 것이고, 꽃말이 되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들에 있는 닭의장풀은 꽃을 잘도 피우는데 집의 돌담 곁에 있는 닭의장풀은 무성하기만 하고 꽃을 피우지 않더군요. 아마도 햇살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는데 무성하게만 자라니 작은 텃밭까지 침범할 것 같아서 대충 뽑아서 밭 한 켠에 거름이나 할 요량으로 쌓아두었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리고 뽑힌 닭의장풀에서 다시 뿌리가 내리고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원래의 자리에 있던 것들보다도 더 많은 꽃을 피우더군요. 생명을 위협 당함으로 더 강인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조건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꽃을 피우는 것, 더 처절하게 살아가는 것이 들꽃의 세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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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닭의장풀의 꽃 색깔은 파랑색이 강한 것과 보라색이 강한 것, 그리고 흰색이 있습니다. 주로 많은 것은 파랑색이 강한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보라색이 강한 것이고 흰색은 희귀하기도 하지만 한방에서는 다른 닭의장풀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분명 어린 시절에는 보았던 아련한 기억이 있는데 아직 하얀 닭의장풀을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습니다. 담고 싶다고 다 담을 수 있으면 꽃을 찾아다니는 묘미도 덜하겠지요.

밤새워 뒤척였습니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뜬눈으로 설렘으로 밤을 지새우고 맞이한 여명
붉디붉은 햇살에 그만 화들짝 피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
소리로만 느낄 수 있었던 수많은 것들
바람, 파도소리, 새소리, 나비들의 나폴거리는 소리
까르르 웃는 개구쟁이들이 웃음소리
그들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을 다 간직하기도 전에
하루가 저 산 너머로 붉은 눈물을 흘리며 지고 있습니다
짧/은/즐/거/움/
그러나 진정 행복했습니다.

<자작시-닭의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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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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