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행복 메일 집배원이 되다

서울성심여고 서승원 교사, 홈페이지를 통한 제자사랑 실천

등록 2004.08.16 10:11수정 2004.08.1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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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승원 교사와 제자들

서승원 교사와 제자들 ⓒ 권윤영

“인기 있는 교사가 되기 보다는 존경 받는 교사가 되고 싶고, 학생 위에 서기보다는 그들 옆에 설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또한 학생들이 가지는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교사이고 싶습니다.”

교사가 제자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그중 서울 성심여고에 재직 중인 서승원(34) 교사의 제자 사랑 방법은 독특하다.

그는 ‘Happy Daily’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교사가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다면 흔히들 교과 관련 내용을 담은 홈페이지라고 생각하기 쉬울 터. 하지만 그의 홈페이지는 그가 가르치는 교과목인 컴퓨터와 별 다른 상관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Happy Daily‘는 학생들에게 행복을 전달하기 위한 내용과 학교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홈페이지다. 서 교사가 홈페이지를 운영한 것은 6년 전. 현재의 모습으로 홈페이지 개편을 하고, 새 단장을 한 것은 지난해 6월이다. 그는 지난해 많은 사람들에게 메일을 발송하기 위해 회원제로 모습을 바꾸기도 했다.

a 그는 홈페이지를 통해 제자 사랑을 실천한다.

그는 홈페이지를 통해 제자 사랑을 실천한다. ⓒ 권윤영

“가르치던 학생들이 매년 졸업할 때면 ‘조회, 종례, 수업 중에 좋은 이야기를 해 줬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늘 남습니다. 아이들이 졸업을 한 후에도 모교 선생님이 보내 주는 좋은 글을 읽고 세상에 대한 정을 느끼고 행복해 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어요.”

홈페이지 회원수는 어느덧 770여명. 서 교사는 일주일에 한번씩 ‘행복한 교사 서승원이 전해 드리는 행복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메일을 발송하고 있다. 행복 메일 안에는 좋은 글과 그가 느끼는 행복에 대한 단상, 학교 소식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홈페이지에는 그가 틈틈이 모아둔 좋은 글이 담겨있는 공간, 그가 지도교사로 있는 컴퓨터 동아리 학생들의 게시판, 자유게시판과 비밀게시판도 존재한다. 컴퓨터 관련 자료나 여러 사진을 올려 놓는 공간도 있지만 가장 인기 코너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적어 놓는 ‘성심야사’와 교단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단상들을 적어 놓는 ‘시인 죽이기’다.


좋은 글이나 글의 소재는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찾는다. 자신의 홈페이지를 시간 나는 틈틈이 관리하고 학생들의 글에는 일일이 리플을 달아 주는 정성을 쏟고 있다. 간혹 “홈페이지만 붙들고 있느냐”고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그의 뜻을 존중해 주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학기 초 수업을 시작할 때 학생들에게 제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 주면서 좋은 글을 일주일에 한번씩 보내주겠다고 말하죠.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학생들이 실제로 메일을 받아보고는 무척이나 좋아하더라고요.”


그가 보내준 글들을 모두 모아두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홈페이지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뜨겁다. 홈페이지 회원의 대부분은 성심여고 학생이지만 꾸준히 일반인들의 가입도 늘고 있다. 그의 학교 학생이든 타 학교 학생이든, 일반인이든 가리지 않고 그의 행복메일은 날아든다.

a 그의 별명은 영화 주인공 슈렉. 학생들에게 슈렉 선생님이라고 불린다.

그의 별명은 영화 주인공 슈렉. 학생들에게 슈렉 선생님이라고 불린다. ⓒ 권윤영

자연스레 그가 느끼는 보람도 크다. 비밀게시판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은 학생이 “선생님이 계셔서 마음 놓고 이야기 할 사람이 생겼다”고 할 때나 자살을 생각했던 학생이 자신 때문에 마음을 돌려 먹었다고 이야기를 전해 올 때가 바로 그 순간. 졸업생이 “선생님이 보내 주시는 글을 늘 잘 읽고 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해줄 때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어떤 사람은 인터넷 검색 중 우연히 제 인터넷에 들어왔어요. 인터넷상에서 몇 번 대화도 나누고 행복 메일도 받아보던 그 사람이 어느 날 자신도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조언도 해주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눴는데 올해 임용고시에 합격했다고 전화가 왔더군요. 제게는 이 홈페이지가 사람을 만드는 홈페이지라는 믿음도 있답니다.”

서 교사는 언젠가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을 모아 책으로 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끝 인사말로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전한다. 이는 서 교사가 모든 메일과 리플의 끝에 첨가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사랑 듬뿍 실은 그의 행복메일은 쉬지 않고 배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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